가품 환불 절차 까다로운 경우도…개인 간 거래에 플랫폼 연대 책임 없어 거래 당사자도 주의 필요
A 씨는 지난 15일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를 통해 한 명품 브랜드 목도리를 22만 원에 구매했다. 결제는 이 플랫폼에 있는 안전결제 시스템, ‘번개페이’를 이용했다. 안전결제 시스템은 구매자가 먼저 플랫폼에 결제 금액을 입금한 뒤 제품을 판매자에게 받아 하자가 없는지 확인 하고 ‘거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그때 판매자에게 돈이 입금되는 방식이다.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판매자에게 입금되지 않는다. 구매자는 이 안전결제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상품 금액의 3.5%에 달하는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A 씨는 이 수수료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비대면’ 거래인 점을 감안해 안전결제 시스템으로 물건을 거래했다. 그런데 A 씨 주장에 따르면 받아본 목도리는 해당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되고 있는 정품과 색상도, 태그도 달랐다. A 씨는 “가품인 것 같다며 판매자에게 환불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번개장터 측에도 알렸으나 해당 명품 브랜드 회사에서 직접 가품 감정서를 받아와야 도와주겠다는 입장을 취했다”며 “해당 브랜드는 감정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이를 번개장터에 알렸더니 법인 감정서를 받아오라 했고, 일주일이라는 기한을 받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안전결제 서비스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던데, 그런 것에 비해 (소비자 보호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반면 판매자 입장에서 안전결제 서비스를 이용해 물건을 판매하려다가 곤혹을 치르는 일도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휴대폰을 판매했는데 구매자가 물건을 받아본 뒤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상 문제를 제기하며 수리비를 요구하거나 추가 가격 '네고(협상)'를 요구하는 일을 겪었다는 후기들을 온라인상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역시 구매자가 구매 확정 버튼을 눌러야 판매자에게 돈이 입금되는 점을 악용해 꼬투리를 잡아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면 거래시 구매자가 안전결제 서비스의 ‘입금 취소’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구매자가 판매자로부터 백화점 상품권 바코드 번호를 받은 뒤 입금 취소 버튼을 눌러버리고 잠적해 버린 사례도 있다.
안전결제 서비스에 속하는 ‘네이버페이’를 링크하는 척하며 상대를 속여 사기를 치는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방식이다. 부산에 거주하는 김 아무개 씨는 지난해 11월 번개장터에서 캠핑용 등유 난로를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연락했다가 네이버페이 안전결제로 거래를 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김 씨는 판매자가 보낸 네이버페이 링크를 누르고 들어가 수수료를 포함해 총 22만 2000원을 결제했다. 이후 추가 결제를 요청받고 나서 사기인 것을 직감하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직 결제 금액 전부를 돌려받지 못했다. 김 씨는 “지인을 통해 같은 판매자에게 거래 의사를 전했더니 똑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치려고 했다”며 “주변 지인이나 온라인을 통해 나와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았다”고 토로했다.
한국소비자원에서 2022년 발간한 ‘중고거래 플랫폼 소비자문제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 헬로마켓, 4대 중고거래 플랫폼 이용자들은 중고거래 플랫폼에 원하는 개선책으로 ‘안전결제 시스템 보완’ 등 거래 안전성 확보를 가장 최우선(응답자의 30%)으로 꼽았다. ‘불량 판매자 패널티 제공 등 이용자 필터링’이 28.7%, ‘전문 판매업자 차단’이 13.7%로 그 뒤를 이었다. 소비자원은 조사 대상 플랫폼 모두 안전결제 시스템과 이용자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이용자들은 그 기능에 대해 ‘불만족’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 관계자는 “다양한 품목이 전국구 단위에서 거래되는 만큼 비대면 거래에서도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신뢰하고 거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최우선 목표로 하며 지속적인 기술 투자와 시스템 구축을 해 나가고 있다”며 “거래 사기로 제재를 받은 이용자의 경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탈퇴를 제한하는 정책을 운영하는 등 단순 제재가 아닌 실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결제 서비스를 악용한 사기 사례가 지속되고 있어 방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고거래 플랫폼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고 소비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플랫폼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안전결제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해도 이를 이용한 또 다른 사기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면 추가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이를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 전자상거래법은 구매 청약 철회 등 관련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법은 사업자와 소비자 간 거래(B2C)를 적용 대상으로 하고 있고,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한 개인 간 거래(C2C)에는 적용이 어렵다. 또 전자상거래법은 개인 간 거래에서 플랫폼이 판매자의 성명‧전화번호 등 신원정보를 확인하고 거래 당사자에게 상대방 정보를 열람하는 방법을 규정하고 있으나 이 규정을 보다 구체화하고 명확히 한 내용이 담긴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안은 2021년 3월 입법 예고 후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또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자인 중고거래 플랫폼은 사전고지의무나 정보제공의무를 위반한 경우 등에 한해서만 책임지게 돼 있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현행법상으로는 플랫폼이 이용자 간 분쟁을 해결하거나 회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일반적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중고거래 플랫폼은 가품이나 거래 금지 품목 등이 유통되고 있는지 상시 모니터링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방조 등의 책임이 문제될 수 있으나, 이와 달리 회원들 간 개별적이고 사적인 거래에서까지 일반적인 연대 책임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전했다.
현행법이 이용자 보호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지만, 일각에선 회원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분쟁의 경우 이용자 각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산업의 발전이나 플랫폼 비용 등 측면에서 더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때문에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한 개인 간 거래시 소비자‧판매자 모두 일단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 관계자는 “채팅 중 외부 링크로 송금을 유도하는 경우 특히 주의를 당부한다. 거래를 위한 채팅도 앱 내에서 하는 게 안전하다”고 당부했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개인 카톡이나 전화, 문자 메시지는 지양하고 거래와 관련된 모든 대화를 플랫폼 내 채팅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며 “플랫폼 내 채팅을 통한 대화는 내역이 보존되기 때문에 증빙 자료로 사용이 가능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