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실에 텐트·매트리스 마련, 식후 50분 ‘쿨쿨’…노화 방지 산업 대대적 투자 등 ‘실버경제’ 공식 도입
2024년 1월 17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2023년 말 기준 인구 현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의 인구는 14억 967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말에 비해 208만 명 줄어든 수치다. 중국의 인구는 2022년 61년 만에 전년 대비 줄었는데, 2년 연속 이런 흐름은 이어졌다. 2022년엔 2021년에 비해 85만 명 줄었는데, 감소폭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출생 수는 2022년보다 54만 명 줄어든 902만 명에 불과했다. 2년 연속 1000만 명을 밑돌았다. 2023년 사망자 수는 1100만 명이었다. 인구 증가율은 마이너스(-) 1.48%였다. 전체 인구 중 남성은 7억 2032만 명, 여성은 6억 8935만 명이었다. 연령별로는 16~59세가 61.3%, 60세 이상이 21.1%로 그 뒤를 이었다.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가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결과다.
저출산 폐해가 가장 잘 나타나는 분야 중 하나는 교육이다.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자녀를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들도 선행 학습을 받으려 과외를 한다. 이를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자녀가 한 명인 가정이 대부분이기에 다른 선택은 없다. 이는 치열한 입시 경쟁과 취업난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둘째 낳기’를 장려하고 있지만 거의 소용이 없어 보인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초등생 낮잠 재우기’ 정책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추진됐다. 아이들에게 ‘수면권’을 보장해준다는 취지다. 2023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선 초등학생들에게 점심 휴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교육부에 건의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2023년 12월 초등학생들의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하고, 이를 위해 학교 운영과 시설 장비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장성 첸탕구는 전국에서 처음 ‘점심 수면시간’을 위한 기준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최대 50분 누워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는 침대와 수납장, 난방, 환기시설 등을 구비해야 한다. 첸탕구는 1월 16일 현장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했다.
우선 첸탕구는 570만 위안(10억 6000만 원)을 투자해 5만 7000명의 초등학생들이 편하게 잘 수 있는 시설을 갖추기로 했다. 취침 전 독서와 음악 듣기, 기상 후 체조, 침구 정리 등 수면을 위한 과정도 설계했다.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텐트, 매트리스, 수면실 등 다양한 공간을 마련했다. 수면은 강제가 아니다. 원하지 않는 학생은 별도의 교실에서 원하는 취미를 할 수 있다.
초등학생 ‘수면 정책’이 저출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1월 17일 국무원이 발표한 ‘실버경제 발전 및 노인복지 증진에 관한 의견’은 초고령화를 대비한 조치다. 이번 발표는 중국이 ‘실버경제’라는 명칭을 공식 문서에 사용한 첫 번째 사례다. 당국이 초고령화 문제를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버경제 발전 조치는 4개 분야, 26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엔 노인들을 위한 의료 시스템, 문화, 취업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국무원 측은 “노인들이 중국 경제의 성과를 공유하고, 또 행복한 노후를 누릴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국은 노인을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닌, 적극적인 경제 주체로서 역할을 부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무원은 베이징, 톈진, 광둥 등 10개에 실버경제 공업단지를 배치할 예정이다. 실버경제 관련 기업에 혜택을 많이 줘, 유망한 기업들을 육성하기로 했다. 또한 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스마트 프로젝트’를 도입한다. 노인들에게 생소한 스마트 기술 교육도 병행한다. 국무원은 노인들을 위한 전용 ‘실버 전자 상거래 플랫폼’도 오픈한다고도 밝혔다.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의료 및 요양 서비스 분야에도 최첨단 차세대 기술을 적극 적용한다. 스마트 케어를 담당하는 로봇을 양로원 등에 배치하고, 원격 치료와 모바일 건강진단 등을 확대하는 방식 등이다. 보청기, 교정기, 지팡이 등과 같은 보조 기구도 무상 업그레이드를 해준다. 스마트 휠체어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번 조치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항목은 이른바 ‘청춘으로 돌아가자’였다. 국무원은 노화 방지 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계획이다. 피부, 모발을 비롯한 인체 전반의 노화를 늦추기 위한 유전자 기술과 재생 의학 등이 그 대상이다. 또한 ‘레트로 투어’ ‘청춘 투어’ 등의 관광 상품을 늘려 노인들에게 옛 시절의 추억을 느끼게 해준다는 목표다.
국무원 측은 “1960년대생들이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이들의 특징은 건강한 노후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소비를 할 준비가 돼 있다. 이들은 소비의 새로운 주역이 될 것이다. 실버 경제는 획기적인 발전 기회를 맞이했다”면서 “건강한 노후는 전 생애주기의 건강한 삶과 직결돼 있다. 당국 차원에서 연구 개발을 늘리고 시장을 표준화해서 원하는 노후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국무원은 발표한 실버경제 조치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크게 네 가지를 꼽았다. 우선 실버 집단의 소득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은퇴 후 소득수준이 크게 떨어지지 않도록 연금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두 번째는 노인들 간 소득 분배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특히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는 향후 당국이 개선해야 할 시급한 문제다.
세 번째는 보육 서비스의 적극적인 개발이다. 현재 많은 중국인들은 자신의 자녀를 부모님에게 맡긴다. 이는 건강한 노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노인들의 소비를 가로막는 ‘디지털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더 이상 ‘취약계층’이 되지 않도록 하는 환경 구성에 모든 기관들이 총력전을 펼칠 방침이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