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이정후 반려견도 스타 등극…개막전인 서울 시리즈 전 세계 야구팬이 주목
KBO리그 최고 타자 이정후(25)의 MLB 진출도 한국 야구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이정후는 역대 한국인 선수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 최고액 기록을 경신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일원이 됐다. 이정후의 매제인 고우석(25)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해 김하성(28)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겨울 내내 이들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됐던 만큼, 계약 이후의 얘깃거리도 풍성했다. 미국을 넘어 일본과 한국까지 연일 들썩거리게 한 이번 빅리그 스토브리그의 후일담을 모아봤다.
#오타니 '지급 유예' 조항 논란
누가 뭐래도 올겨울의 주인공은 투타를 겸업하는 슈퍼스타 오타니였다. 그는 지난달 10일 다저스와 10년 총액 7억 달러(약 9420억 원)에 사인해 전 세계 스포츠 단일 계약 역사상 최고액 기록을 다시 썼다. 특히 계약 총액의 97%에 해당하는 6억 8000만 달러(약 8972억 원)를 계약 기간 종료 후인 2034년부터 10년간 분할 지급받기로 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파격적인 '지급 유예' 조항이 급기야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법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생겼다.
AP 통신은 1월 10일(한국시간) "말리아 M. 코헨 캘리포니아주 감사관이 주 의회에 세법 변경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코헨 감사관은 "오타니가 연봉 수령 시점에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지 않으면 13.3%의 소득세와 1.1%의 주장애보험 관련 세금을 피하게 된다"며 "현행 제도는 세금 구조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의회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즉각적인 조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AP는 이와 관련해 "오타니는 현행 제도에서 세금 9800만 달러(약 1293억 원)를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계약을 한 빅리거들은 구단의 사치세(연봉 총액이 일정 금액을 초과한 팀에 부과하는 제재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종종 계약서에 지급 유예 조항을 포함한다. 다저스의 간판 외야수 무키 베츠도 2020년 다저스와 12년 3억 6500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총액의 33%에 해당하는 1억 15000만 달러를 나중에 받기로 했다. 다만 오타니의 계약은 지급 유예 금액의 비중이 유례없이 커 화제가 됐다. 오타니는 다저스가 자신의 비싼 '몸값'을 지불하느라 대형 FA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도록 먼저 이런 제안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입단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지금 당장 내가 돈을 적게 받더라도 구단이 재정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러나 당시 AP는 "캘리포니아 주세 13.3%는 미국에서 가장 높다. 오타니가 다저스와 계약 종료 후 다른 곳에 거주하면서 더 많은 돈을 받는다면,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짚었다. 디 애슬레틱은 "오타니는 광고와 마케팅, 스폰서십 등을 통해 야구 외적으로도 연간 5000만 달러가량 벌어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계약 기간 내 연봉이 많지 않더라도 그 아쉬움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며 '영리한 계약'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오타니·이정후 반려견도 스타
MLB를 들었다 놨다 하는 오타니의 인기 덕에 그의 반려견 '데코핀'까지 스타덤에 올랐다. 데코핀이 처음 관심을 받은 건 지난해 11월이다.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오타니는 일본에서 비대면 화상 인터뷰로 소감을 밝혔는데, 이때 반려견과 함께 등장해 하이파이브를 하며 수상을 자축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후 오타니 측이 반려견 이름을 비밀에 부친 채 '신비주의' 전략을 펼치자 "혹시 강아지에게 (오타니가 마음속으로 정한) 새 행선지 이름을 붙여준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이 때문에 오타니는 입단 기자회견에서 '반려견의 이름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았고, "원래 이름은 데코핀인데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서 '데코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웃으며 답했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이런 관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데코핀에게 미국 비자를 발급하는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물론 반려견은 미국 비자가 필요 없다. 강아지와 함께 미국을 방문할 때는 애완동물 건강증명서와 검역증명서를 지참하면 된다. 그러나 이매뉴얼 대사는 최근 일본 도쿄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방문한 오타니에게 데코핀의 사진을 넣어 제작한 가짜 비자 패널을 선물했다는 후문이다. 데코핀의 여권번호는 지난 시즌 오타니가 받은 MVP상과 강아지(puppy)라는 단어를 합성해 '000MVPUP000'으로 붙였고, 컨트롤 번호는 '000GOODBOY000'(굿 보이)이라고 적었다. 오타니는 다저스와의 계약을 축하하는 미국대사의 깜짝 이벤트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저스의 '숙적'인 샌프란시스코는 이에 지지 않고 새 리드오프 이정후의 반려견 '까오'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정후의 입단식이 끝난 뒤 구단 공식 소셜미디어(SNS)에 까오의 사진 여러 장을 함께 올렸다. 또 이정후가 직접 관리하는 까오의 SNS를 태그하면서 "그가 '플러스 원'과 함께 온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을 것"이라는 농담을 덧붙였다.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까오에게도 빨리 유니폼을 입혀달라" "까오가 오타니의 반려견보다 훨씬 귀엽다" "이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우리 팀의 마스코트가 됐으면 좋겠다" 등의 댓글을 달며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이틀 뒤에는 MLB 사무국 공식 SNS까지 이정후와 까오의 사진을 올리면서 "MLB 반려견 세계에 새로 합류한 이정후의 강아지 까오를 소개한다"는 글을 남겼다. 이정후는 계약을 마치고 귀국한 뒤 "구단에서 1년에 두 번 정도 '반려견의 날' 행사가 있다고 하더라. 나도 반려견이 있다고 하니 소개해줬다"고 웃어 보였다.
#고우석-이정후 대결에 쏠린 관심
샌프란시스코 이정후와 샌디에이고 고우석의 남다른 인연은 미국 현지에서도 화제였다. 1998년생 동갑내기인 둘은 학창시절부터 경쟁 상대였다. 이정후가 휘문고, 고우석이 충암고를 졸업한 터라 맞대결할 경기도 많았다. 이정후는 "우석이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경쟁했다. 우석이의 강속구를 쳐야만 이길 수 있어서 피칭 머신 스피드를 빠르게 맞춰놓고 훈련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프로에 와서도 그랬다. 이정후는 키움 히어로즈, 고우석은 LG 트윈스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해 나란히 양 팀 간판 선수로 성장했다. 통산 11차례 맞붙었고, 이정후가 고우석 상대 타율 0.333, 1타점, 1볼넷을 기록했다. 출루율은 0.364, 장타율은 0.333이었다.
그라운드 안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대결을 펼친 둘은 경기장 밖에선 서로의 집을 오갈 정도로 남다른 우정을 쌓았다. 그러다 고우석이 이정후의 여동생 이가현 씨와 가까워졌고, 지난해 1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동시에 고우석은 이정후의 매제이자 이종범 전 LG 코치의 사위가 됐다. '가족'을 이룬 둘은 한날한시에 MLB 포스팅에 나서 '빅리그 진출'이라는 큰 꿈에도 나란히 도전했다. 이정후가 일찌감치 샌프란시스코와 계약했고, 고우석도 포스팅 기한 마감 7분을 앞두고 극적으로 샌디에이고와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MLB닷컴은 "고우석은 최근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 1300만 달러에 계약한 중견수 이정후의 매제다. 샌디에이고도 그 계약 전에 이정후 영입을 추진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샌디에이고와 샌프란시스코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속한 라이벌 팀이다. MLB에선 같은 지구 팀끼리 한 시즌에 13경기씩 맞붙는다. 당장 샌프란시스코의 정규시즌 개막전 상대가 샌디에이고다. 3월 29일부터 4월 1일까지 샌디에이고의 홈구장 펫코파크에서 4연전을 치른다. 이후 4월 6~8일, 9월 7~9일, 9월 14~16일에 세 번의 3연전이 더 기다리고 있다. 샌디에이고에는 이정후와 친분이 깊은 김하성도 뛰고 있다. MLB 전광판에 김하성, 이정후, 고우석의 이름이 나란히 뜨는 기념비적인 장면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고우석은 "계약 후 정후에게 연락처를 물어봐서 하성이 형께 먼저 연락드렸다. 형이 '축하한다'고 해주셨다"며 "외국으로 가서 야구하게 됐는데, 같은 리그에서 뛰었고 국가대표 팀에서도 만났던 선배가 있다는 게 마음에 안정이 된다"고 반겼다.
고우석은 역시 같은 지구 팀인 다저스와도 자주 만나게 된다. 특히 고우석과 오타니와의 투타 맞대결은 일본 매체들이 더 기대하는 모양새다. 고우석은 지난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하다 'WBC에서 오타니와 맞붙게 된다면 어떻게 대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그는 "던질 곳이 없다면, (차라리) 안 아픈 곳에 맞혀서 내보내겠다"고 답했다. 오타니가 그만큼 까다로운 타자라는 존중의 의미이자 악의 없는 농담이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고의로 몸에 맞는 공을 던지겠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했다. 이 때문에 당시 일본 언론이 비판적인 보도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닛칸스포츠는 고우석의 샌디에이고행 가능성이 알려지자 "그는 오타니에게 고의로 사구를 던지겠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던 선수"라고 재차 언급했다. 주니치 스포츠는 "고의 사구 발언을 한 한국 투수 고우석이 샌디에이고와 계약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3월 개막전에서 오타니와 만날 수도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 시리즈, 관심은 높은데…
3월 20일과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다저스와 샌디에이고의 MLB 정규시즌 개막 2연전(서울 시리즈)은 오타니의 다저스 입단과 함께 전 세계 야구팬이 주목하는 '빅 매치'로 격상됐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여행을 가서라도 봐야 할 2024년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로 서울 시리즈를 꼽으면서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오타니를 서울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직접 관람하기 위해) 여권 갱신을 할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고 썼다. 특히 한국과 일본 양국에선 벌써부터 폭발적인 관심이 몰리고 있다. 오타니의 다저스 이적 후 첫 경기, 오타니와 샌디에이고 선발 다르빗슈 유의 투타 맞대결, 야마모토·고우석·마쓰이 유키(샌디에이고)의 빅리그 데뷔전이 모두 성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하성과 고우석, 오타니와 야마모토가 각각 샌디에이고와 다저스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장면은 한국과 일본 야구팬 모두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MLB 사무국이 1월 11일 발표한 올 시즌 경기 일정에 따르면, 서울 시리즈는 한국시간으로 오후 7시 5분에 시작한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는 오전 6시 5분, 서부 시간으로는 오전 3시 5분이다.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 된다. 고척돔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은 MLB 사무국의 요청에 따라 내·외야 인조 잔디를 걷어내고 마운드·펜스·클럽하우스 시설을 보수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릴 빅리그 개막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저스 구단은 1월 12일 구단 SNS에 고척돔 외관 사진과 내부 공사 장면, 개막전 홍보 영상이 담긴 경기장 내부 전광판, 다저스 모자와 응원 도구를 든 한국 야구팬들의 모습을 소개한 뒤 "곧 만나요, 서울!"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옥에 티가 있다면, 고척돔 관중석 규모다. 고척돔은 만원 관중이 1만 6744명으로 국내 프로야구장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한다. 한국과 일본 야구팬들의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러나 3월 중순의 날씨 변수를 고려하면, '지붕이 있는' 고척돔이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다. 포브스는 "두 경기 티켓은 1월 말부터 판매되는데, 표가 많지 않으니 서둘러 구매해야 한다"고 썼다. 일본 TV 아사히는 "역사적인 개막전 관람을 위해 벌써부터 여행사에 (한국 여행) 문의전화가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한국 투어는 미국까지 가는 것보다 경비가 저렴하지만, 정작 경기 티켓값이 급등할 수도 있다"는 여행사 관계자의 코멘트를 전했다. 도쿄스포츠도 "두 경기를 향한 관심은 점점 뜨거워지지만, 구장 수용인원이 적어 티켓 쟁탈전이 불가피하다"며 "다르빗슈조차 난감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르빗슈는 "구장이 작아 표를 구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벌써 티켓을 부탁하는 지인들의 연락이 오고 있다"며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이정후가 처음으로 '전국 방송'을 탈 경기는 6월 2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기는 MLB 사무국이 미국 야구 역사의 한 축이었던 흑인리그(니그로리그)에 헌정하는 게임이다. 경기 장소는 1910년 건립된 앨라배마주 버밍엄의 릭우드 필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야구장이다. 이정후는 이 구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MLB 경기에 출전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기회를 잡았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