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 후원업체로부터 금품 수수 의혹…야구계 지탄 속 수표 건넨 점 등 의문점도
KIA 구단은 물론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스프링캠프를 치르기 위해 호주 전지훈련지로 떠나기 직전에 터진 사태에 야구인들은 아연실색했다. 김 전 감독은 구단 후원업체로부터 대가성이 없는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총 액수가 1억 원대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2022년과 2023년 KIA 구단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단장-감독-후원업체의 ‘잘못된 만남’
2021년 11월 24일 KIA 타이거즈는 당시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이던 장정석 전 키움 히어로즈 감독을 신임 단장으로 선임한다. 감독 경험에다 프런트 경력을 갖춘 장 전 감독은 KIA의 신임 단장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2021년 12월 5일 KIA는 김종국 수석코치를 경질된 맷 윌리엄스 감독을 이을 제10대 감독에 앉힌다. 계약 기간은 3년, 계약금은 3억, 연봉은 2억 5000만 원이었다. 김종국 감독은 KIA에서 선수 생활 은퇴 후 주루코치, 작전코치, 수석코치 등 다양한 코치직을 역임하며 높은 평가를 받은 덕분에 김성한 이후 무려 21년 만에 타이거즈 원클럽맨으로 사령탑에 올랐다.
2021시즌 종료 후의 KIA는 이화원 대표, 조계현 단장, 맷 윌리엄스 감독이 모두 옷을 벗게 되면서 격변의 시간을 맞이했다. 대표이사와 단장은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동반 사의를 표명했고, 윌리엄스 감독은 상호 합의하에 계약 해지 수순을 밟았다. KIA는 대표, 단장, 감독이 한꺼번에 교체되면서 기대와 우려를 안고 2022시즌을 맞이했다.
2022년 8월 14일 KIA는 한 커피 업체와의 후원 협약을 발표한다. 14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후원 협약식에는 A 업체의 회장과 대표, 당시 장정석 단장이 참석했다. 이후 A 업체는 KIA 구단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유니폼 견장 및 펜스 광고 외에도 챔피언스필드 외야 좌측과 우측 담장에 걸려 있는 홈런존(200만 원), 주간 MVP(100만 원), 주간 수비상(100만 원) 등을 수여했다. 명절 때면 선수단에 10만 원 상당의 커피세트를 돌렸고, 팬들은 물론 예비 신인들, 협력사 직원들까지 챙겼다. A 업체는 후원에만 그치지 않았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 연중 이용이 가능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 오픈을 위해 공사를 벌이며 2024시즌을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1월 28일. KIA 구단은 “김종국 감독을 직무정지 조치를 내리기로 결정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다음 날에는 ‘품위손상행위’로 김종국 감독을 계약 해지 했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야구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더욱이 포수 박동원(LG)과 계약 연장 협상 중 ‘뒷돈 요구 논란’으로 2023년 3월에 해임된 장정석 전 단장이 이 사건으로 같이 조사받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선수에게 뒷돈을 요구해 KIA 단장에서 해임된 장정석 전 단장과 김종국 전 감독에게 배임 수재 혐의를 적용해 1월 2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영장 전담 부장판사가 “방어권 보장 필요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해 서울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구속영장에는 ‘김 전 감독이 2022년 7월 원정 경기가 열린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100만 원짜리 수표 60장, 6000만 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즉 A 업체가 당시 단장과 감독이었던 두 사람에게 견장 광고 체결과 계약 유지에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으로 뒷돈을 건넸다는 게 검찰의 시선이다.
#청탁과 격려금 그 미묘한 경계
후원사 A 업체의 모기업은 토목, 건축공사, 주택건설 및 분양, 임대업 등을 목적사업으로 둔 부동산개발 업체다. 파주운정신도시와 지식산업센터 개발사업을 연달아 추진하면서 최근 몇 년간 국내 부동산개발 업계에서 주목받는 시행사로 급성장했다. 모기업의 대표이사는 류 아무개이고 실질적인 지배는 창업주 김 아무개 회장 일가가 맡고 있다. 후원사 A 업체 대표인 김 아무개는 김 회장의 딸이다.
전북 익산 출생인 김 회장은 1959년생으로 해태-KIA 타이거즈 열혈 팬으로 알려졌다. 2022년 8월 KIA 구단과의 후원 협약식에 나타난 김 회장은 장정석 전 단장에게 자신이 익산 출신이고 타이거즈 팬이라고 소개했다.
김 전 감독은 검찰 조사를 받은 직후 구단과의 면담을 통해 A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대가성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대가성이 아니라고 하기엔 액수가 너무 크다.
야구인들은 김종국 전 감독의 행동에 대해 다양한 의문점을 나타냈다. 지금은 야인으로 머무는 B 전 감독은 “야구 감독과 구단 후원 업체 사장과의 만남이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친분 정도에 따라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감독이 되기 전부터 알았던 사람이 구단에 후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낸다면 가볍게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지인 중에 의사나 병원장 등이 있다면 야구장에 자신의 병원 광고를 넣고 싶다고 할 수는 있지 않겠나. 그 일로 만나서 술을 마시거나 골프 정도는 칠 수 있겠지만 구단에 광고를 넣으려고 감독을 통해 청탁한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감독이 구단에 그 업체 관련해서 좋게 말해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감독의 권유로 후원업체를 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KIA는 지방 팀이다. 지방 팀은 서울과 달리 후원 업체를 구하는 입장이다. 즉 갑이 아닌 을의 입장이 되기 마련인데 견장이나 다른 광고를 위해 감독한테 청탁해서 그 광고를 따낸다는 걸 납득하기 어려웠다.”
B 전 감독은 김 전 감독이 A 업체로 받은 돈이 수표였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그 돈의 성격이 청탁성 뇌물이었다면 수표로 줄 수 있겠나. 부동산개발 사업을 하는 회장이 그 정도로 계산이 서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다. 김 전 감독이 억대의 돈을 받은 건 분명 지탄받을 일이지만 청탁으로 받았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선 다소 의문이 남는다.”
KIA와 인연이 있는 야구인 C 씨도 B 전 감독과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구단의 견장 광고는 감독의 권한 밖이다. 보통 마케팅 부서나 그룹 본사에서 업무를 담당하는데 후원 업체 관련해선 마케팅 팀에서 선정해 그룹에 보고하는 형식이다. KIA가 이전에도 광고 비리 건으로 차장급 이상이 해임된 적이 있었지만 감독이 권한을 행사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검찰 측에서 주장하는 대로 견장 광고 등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대가성으로 감독한테 돈을 건네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고 사적 영역에선 형님, 동생할 수 있는 관계인 데다 그 ‘형님’이 돈 많은 회사 창업주라면 선수들 회식이나 코치들과 골프나 치라고 격려금 형식으로 몇 차례에 걸쳐 돈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김 전 감독의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야구인 D 씨는 “프로야구 감독 자리가 대한민국에 10개밖에 없는데 그 하나의 자리를 차지한 김 전 감독이 야구인을 욕보이는 행동을 저질렀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KIA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면서 시즌 내내 KIA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야구장 주변에는 ‘핑계만 많은 무능력한 감독, 초보라서가 아니라 자질이 부족한 것입니다’란 내용의 현수막까지 걸렸을 정도다. 시즌 종료 후 구단은 김 전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일부 팬들의 원성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구단은 김 전 감독의 유임을 결정했다. 가까스로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하고 2024시즌을 준비하며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있는데 장 전 단장 해임 후 1년 만에 감독이 해임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선수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이 금품 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장 전 단장은 현재 프로팀에서 야구하는 아들이 있다. 김 전 감독한테도 그를 따르는 후배들과 제자들이 많다. 과연 그들한테 도덕적인 잣대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