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때 만든 영상들 개인 유튜브에 공유…선관위 “게시는 가능하나 업적 홍보·선거운동은 안돼”
#원희룡TV에 국토부 제작 영상이…
2022년 4월 11일 원 전 장관 측이 운영하는 ‘원희룡TV’에 ‘국토교통부 장관 인선안 발표’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원 전 장관을 지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영상이 올라온 지 약 한 달이 지난 5월 16일 원 전 장관은 국토부 장관으로 공식 취임했다. 취임 이후 원희룡TV에 업로드된 영상과 국토부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영상의 내용이 겹치기 시작했다.
국토부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원희룡 특강’ 코너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상에 따르면 원 전 장관은 인터넷 강의를 하듯 국토부 현안을 설명했다. 앞서 원 전 장관은 2018년 11월부터 개인 유튜브 채널 ‘원희룡TV’를 운영했다. 21대 대선 당시 이 채널에서 ‘대장동 의혹’을 정리해 ‘대장동 1타 강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2022년 7월 17일 ‘원희룡 특강’ 첫 영상이 올라온 이후 25개의 영상이 올라와 있다. 원 전 장관 취임 이전에는 국토부가 장관의 이름을 딴 코너를 편성한 적이 없다. 원 전 장관이 물러난 후 이 코너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영상은 국토부 채널에 그대로 남아 있다.
원희룡 특강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영상은 2023년 7월 12일 올라온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아니다. 두물머리 교통난 해소 최적 노선 어디?’다. 당시 서울-양평 고속도로 강상면 종점안 노선 변경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이 불거졌는데, 이에 대해 원 장관이 직접 ‘양평고속도로 1타 강사’를 자처하며 반박한 내용이다.
원 전 장관은 2023년 10월 10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양평 고속도로 의혹이 제기되자 앞서 영상의 모습과 달리 “장관은 전문 지식이나 시뮬레이션을 직접 담당하는 게 아니라 신뢰성을 감독하는 자리”라며 “분석을 수행한 사람이 증인으로 채택돼 있으니 거기에 물어보라”고 즉답을 피했다. 이에 이소영 민주당 의원한테 “전문지식도 없이 ‘1타 강사’는 왜 하셨냐”는 질타를 받았다(관련기사 [단독] 정책 홍보냐 개인 홍보냐…총선 출마설 장관들 부처 영상 채널 분석).
국토부 공식 유튜브와 원희룡TV에 같은 영상이 동시에 올라온 적도 있었다. 2023년 9월 18일 ‘젤렌스키 만나고 왔습니다. 현지 전황과 재건사업 진행 상황에 대해 보고드립니다. [원희룡TV]’라는 제목의 영상이 업로드 됐다. 국토부 유튜브 채널을 보면 같은 날 제목만 다른, 같은 내용의 영상이 올라온 것을 볼 수 있다. 제목은 ‘리스트만 5000개?! 1,200조 규모 재건 사업 외교 통해 수주한다! | 원희룡 특강 25’다.
현재 원 전 장관 측은 국토부 채널 영상을 원희룡TV에 공유하고 있다. ‘스타트업과 커피챗’이라는 코너가 대표적인 사례다. 장관 재직 시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대담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들이다. 콘텐츠를 올린 주체는 국토교통부다. 부처에서 제작한 영상을 개인 유튜브 채널에 올린 셈이다. 2월 5일 기준 영상은 그대로 게시돼 있다.
#중앙선관위는 원론적 해석만
이러한 활동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 공직선거법 86조 1항 1호는 공무원 등이 소속 직원 또는 선거구민에게 이유를 불문하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관련 조항을 위반하면 부정선거운동죄를 물어 징역 3년 이하 또는 6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2023년 2월 20일 중앙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운용기준을 변경했다. 당초 선관위는 유튜브 등 지자체 개설 홈페이지에 노출되는 지자체장의 사진이나 영상이 초기화면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변경된 기준에 따르면 지자체장이 등장하는 콘텐츠의 내용을 심사한 후 판단하도록 했다.
원 전 장관과 유사한 사례에 대해 대구선관위는 단체장의 동영상 등을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 다수 게시하는 등 사실상 선거 홍보물화 하는 경우에는 여전히 제한돼야 하는 것으로 본다는 해석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경북 지역 언론 뉴스민에 따르면 대구선관위는 대구시가 공식 유튜브 채널에 홍준표 대구 시장 얼굴이 나오는 쇼트 콘텐츠를 다수 올린 것에 대해, 이 같은 해석을 내렸다. 해석이 나온 직후 대구시는 관련 콘텐츠를 내렸다. 당시 대구시 관계자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쇼트 콘텐츠를 삭제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참여연대 관계자는 “선거법에 지자체 공무원이 너무 자주 나오거나 업적 홍보 같은 게 너무 자주 나오면 문제가 있다고 돼 있다”며 “대구선관위에서는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 (콘텐츠를) 다수 게시하는 것은 제한될 수도 있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대구 참여연대에서) 고발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대구시에서 ‘개편됐다’며 영상을 내렸다”며 “(대구시 유튜브 채널에 대해) 저희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었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관련 내용을 중앙선관위에 서면 질의했다. 선관위는 이렇게 답했다.
“장관이 직무수행 일환으로 해당 부처의 명의로 개설된 유튜브 채널에 게시하는 정책홍보영상에 출연하는 것은 시기에 관계없이 공직선거법상 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후보자가 되려는 장관의 업적 홍보나 선거운동을 위한 내용이 부가되는 때에는 행위 주체 및 양태에 따라 같은 법 제9조, 제60조, 제85조, 제86조 등에 위반될 수 있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장관이 직무 수행의 하나로 국토부 유튜브 채널에 영상 출연하는 것은 공직선거법상 가능하고, 대신에 어떤 경우든 후보자가 될 수 있는 장관의 업적 홍보나 선거운동이 돼서는 안 된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원희룡TV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모르지만, 일단은 자신의 (활동이) 홍보가 되는 게 아니고, 같은 영상을 SNS에 게시하는 것만으로는 법에 위반되지 않을 걸로 보인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2월 6일 “영상 파일은 똑같을 것이다. 그게 원희룡 특강뿐만 아니라 수십 개 될 것이다. (국토부가) 제작 촬영을 하고 파일을 원희룡 TV 쪽에 공유를 해줬다. (원 전 장관) 보좌진들이 원희룡 TV 톤에 맞게끔 바꿔서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올라와 있는 국토부 제공 영상들은) 장관 재임 시절 올린 것이다. 퇴임 이후에 남아있는 것에 대해서는 금지해야 한다든지 이런 것을 확인해 본 것은 없다. (국토부 차원에서)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원 전 장관 관련 콘텐츠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쇼츠가 많고 (원 전 장관의) 얼굴이 나온 게 많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그럴 것으로 생각이 든다”며 “(하지만) 현장 횟수를 비교해 보면 현장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갔다”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정책적인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현장 일정을) 쇼츠나 영상으로 제작하자는 게 원칙이어서 건수도 많다”고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