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선거제로도 총선 승리 판단, 국민의힘 “의회독재”…연대 범위·후보 선정·순번 배치 등 난제 수두룩
이재명 대표는 2월 5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연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준연동제는 불완전하지만 소중한 한걸음”이라며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4·10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 결정 주도권을 쥔 이 대표가 비례대표 배분 방식과 관련해 사실상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를 선언했다.
준연동형제를 유지할 경우 위성정당 문제가 남는다. 국민의힘은 이미 위성정당 ‘국민의미래’ 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신고하는 등 창당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 대표 역시 “위성정당금지법을 거부한 여당은 이미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총선 승리를 탈취하려 한다”며 “안타깝지만 여당의 위성정당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인정했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정권 심판과 역사의 전진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위성정당 반칙에 대응하면서 준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비례정당을 준비하겠다”며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을 구축해 민주당의 승리, 국민의 승리를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결정을 내리자 민주당은 일사천리로 총선 준비에 들어갔다. 2월 6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 대표가 선언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 및 범야권 준위성정당 창당 방침을 만장일치로 추인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의총 결과에 대해 “현 제도인 연동형 비례정당을 바탕으로 통합비례정당을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 윤석열 정부 심판을 위해 함께하는 모든 정당, 정치단체들과 뜻을 모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병립형제 회귀안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 대표가 지난 2023년 11월 28일 본인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선거는 승부인데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발언한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이 대표가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한 이후, 준연동형제 유지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이 비례대표 선거제 방식을 두고 의총에서 격론을 벌여도 결론이 나지 않아, 전당원 투표까지 검토했다. 지도부가 논의 끝에 모든 결정을 이 대표에게 위임하기로 했다”며 “병립형은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퇴행 결정에 이 대표 혼자 책임을 지는 것은 부담이 너무 크다. 그러다보니 이 대표가 모든 권한을 위임 받았을 때 준연동형 유지로 결과가 나오겠구나 전망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친명계’에서는 마지막까지도 총선 승리를 위해선 병립형 비례제 회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시민사회 재야 원로들이 이 대표 앞에서 사실상 드러눕듯이 하며 준연동형제 유지를 외쳤다고 한다. 병립형제로 돌아가면 차기 대선에서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이 대표의 마음이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재명 대표가 고심 끝에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 및 범야권 준위성정당 창당을 결정할 수 있었던 데는, 현행 선거제로도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야권 관계자는 “이 대표는 총선에서 민주당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이 대표 스스로도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준연동형제 유지를 결정했다면 승리에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는 3지대 현주소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미래,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 등 제3지대 정당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급락해 한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실시한 총선 패널조사를 보면 비례대표 투표의향에서 제3지대 신당에 대한 표심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지난 1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2차 패널조사에서 신당에 대한 표심은 모두 27%(이준석 신당 11%, 용혜인 신당 10%, 이낙연 신당 5%, 금태섭·류호정 신당 1%)에 달했다. 그런데 1월 30일부터 2월 3일까지 진행된 3차 패널조사에서는 16%(개혁신당 9%, 개혁미래당 3%, 개혁연합신당 2%, 새로운선택 2%)로 줄어들었다. 3주 만에 11%포인트(p) 급락했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각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제3지대 정당의 존재감이 미미하면 결국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이 의석수를 나눠 갖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재명 대표의 선언에 국민의힘은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허를 찔렸다는 반응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표 발표 당일 “오늘 아침까지도 대부분 (이 대표가) 권역별 비례제를 발표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냐”며 “왜 5000만 명 국민이 이재명 대표 한 명의 기분과 눈치를 살펴야 하냐. 한 사람의 의사에 모두가 집중해야 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서울 경동시장에서도 “원래 선거제는 합의다. 아직 국민의힘은 협의를 준 적이 없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재옥 원내대표 역시 2월 6일 민주당을 향해 “운동권과 개딸 선거 연합으로 당대표 방탄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며, 압도적 다수당에 의해 ‘입법 폭주’로 얼룩진 최악의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이 운동권 정당들과 손잡고 ‘의회 독재’를 계속해 나가겠다는 선언”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의 이런 반응에 ‘친명계’의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병립형이든 선거법을 개정하려면 국민의힘 합의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이 선거제 합의에 응하지 않은 것도 총선 국면에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라고 본다. 그런데 이 대표가 현행 선거제에 따라 4월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한 것일 뿐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개정 사안이 없는데 뭘 합의하겠다는 것이냐”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이미 위성정당 창당에 들어갔다. 본인들은 만들면서 민주당이 범야권 준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은 왜 비판하는지 모르겠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꼬집었다.
4·10 총선까지 이 대표와 민주당 앞에는 수많은 과제가 놓여있다. 민주개혁 통합형 비례정당을 띄우기 위해서는 연대 범위, 비례 후보 선정, 순번 배치, 지역구 연대 등을 논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 세력들 간 갈등도 불가피하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4년 전 민주당이 했던 위성정당과 통합비례정당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면서도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방침은 없다고 전했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벌써부터 새진보연합 녹색정의당 등 범야권 정당들이 각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조국신당·송영길신당 가능성도 있다. 그럼 비례후보를 어떻게 공천하고 순번을 어떤 기준으로 배치할 것인가로 격론이 벌어질 것이다. 여기에 더해 지역구 연대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총선 기간 내내 잡음이 나올 것이다. 이를 이 대표와 민주당이 민주개혁진보진영 ‘맏이’로서 제대로 조율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녹색정의당 한 관계자는 “현재 제3지대 정당들의 지지율이 별로 높지 않다. 지지율이 높아야 자기 목소리를 내고 주어진 몫을 요구할 수 있다. 지금 지지율로 민주당과 연대하지 않고 따로 나가서 선거를 치르면 의석수를 얻기 쉽지 않은 정당이 많다. 지금은 본인들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려 민주당에 엄포를 놓고 있지만, 결국 민주당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