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환 40홈런, 원태인 10승 목표…김재환 재도약 ‘절치부심’
#2000년생 노시환
한화 이글스 노시환은 지난해 홈런 31개를 때려내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자신의 롤 모델인 13년 선배 최정(SSG 랜더스)과 시즌 중반부터 치열한 홈런 레이스를 펼친 끝에 생애 첫 홈런왕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처음으로 30홈런 고지를 넘어서면서 29개의 최정을 제쳤다. 한화 소속 선수가 홈런왕에 오른 건 2008년의 김태균 이후 15년 만이었다. 수차례 "최정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해온 노시환에게는 감격스러운 결과였다.
노시환은 또 정규시즌 동안 101타점을 쌓아올려 타점왕 타이틀까지 손에 넣었다. 타율도 3할에 육박(0.298)해 흠잡을 데 없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11일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 3루수 부문에서 총 291표 중 245표(84.2%)를 휩쓸어 최정(16표)을 제치고 데뷔 후 처음으로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2022년까지 '유망주'로 분류됐던 그가 마침내 KBO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1억 3100만 원이었던 그의 연봉은 올해 3억 500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인상액이 2억 1900만 원, 인상률이 167%다.
노시환은 한화 밖에서도 빛났다.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 4번 타자로 맹활약해 금메달의 주역이 됐다. 시즌 종료 후엔 다시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대회 베스트 9 1루수 부문에 뽑히는 성과를 올렸다.
그런 그는 2024년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즌"으로 꼽았다. 올해가 정든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치르는 마지막 시즌이기 때문이다. 경남고 출신인 노시환은 2019년 신인 2차 1라운드에서 한화의 지명을 받은 뒤 5년간 '대전의 거포'로 차근차근 성장했다. 한화는 내년 시즌부터 신축 구장을 홈으로 쓴다. 노시환은 "그동안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올해는 꼭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우고 이 구장과 작별하고 싶다"며 "2023년에 홈런 31개를 쳤으니 내년엔 40홈런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노시환에게 40홈런은 큰 의미가 있다. 역대 한화 선수 중 40홈런 고지를 밟은 타자는 단 두 명뿐이다. 1992년 장종훈이 홈런 41개를 때려 KBO리그 역대 최초의 40홈런 기록을 세웠고, 1999년엔 특급 외국인 선수 댄 로마이어가 45개의 아치를 그렸다. 노시환이 40홈런 고지를 밟으면 장종훈 이후 32년 만에 한화 국내 선수의 새 역사를 쓰게 된다. 노시환은 "주변에서 2024년은 용의 해이니, 목표를 크게 잡고 더 높이 도약하라고 격려해주셨다"라며 "팬들과 함께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내고 싶다"고 다짐했다. 또 "내가 40홈런을 치면 그만큼 한화의 가을야구 진출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며 "올해는 꼭 포스트시즌을 치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실제로 한화 타자의 40홈런과 팀 성적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장종훈의 41홈런이 나온 1992년, 한화의 전신 빙그레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2위였던 해태(현 KIA) 타이거즈를 10.5경기 차로 제치고 당시 프로야구 최다승 신기록(81승)까지 세웠다. 한국시리즈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밀리며 준우승했지만, 한화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즌 중 하나였다. 로마이어가 45홈런을 친 1999년엔 한화가 그토록 염원하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양대리그 체제였던 그해, 한화는 매직리그 2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라간 뒤 롯데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1패를 거둬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92년은 한화의 마지막 정규시즌 우승, 1999년은 한화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기록으로 각각 남아있다. 노시환이 현 홈구장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40홈런' 원년으로 삼은 진짜 이유다.
노시환은 겨우내 고향인 부산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량을 늘리고, 몸의 균형을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한화의 스프링캠프가 한창인 호주 멜버른에서 본격적인 기술 훈련을 시작했다. '내 어깨에 팀의 명운이 달렸다'는 4번 타자의 책임감이 그를 더 정진하게 만든다. 노시환은 "그동안 가을야구를 하지 못해 팬들께 죄송한 마음이 컸다. 올해는 꼭 가을야구를 하겠다"고 했다.
#2000년생 원태인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은 지난해 그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11월 APBC까지 잇달아 태극마크를 달았다. WBC에선 3경기 4와 3분의 1이닝, 아시안게임에선 2경기 10이닝, APBC에선 1경기 5이닝을 각각 소화했다. 그 사이 삼성 소속으로 정규시즌 26경기에 선발 등판해 팀 국내 투수들 중 가장 많은 150이닝을 던졌다. 그 자신도 "한 시즌에 국제 대회를 세 번 나간 선수가 또 있었을까 싶다. 1년 내내 야구를 하는 기분이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며 웃어 보였다.
실제로 원태인은 지난 1년간 어마어마한 항공사 마일리지를 쌓았다. 특히 1~3월에는 개인 훈련을 한 미국 플로리다, 팀 스프링캠프가 열린 일본 오키나와, WBC 대표팀이 캠프를 차린 미국 애리조나, WBC 대회가 열린 일본 도쿄를 오가느라 두 달 새 태평양을 네 번이나 가로질렀다. 9~11월에도 한국과 중국 항저우, 다시 도쿄를 오가며 쉴 틈 없는 3개월을 보냈다. 피곤하고 어려운 미션이었고, "원태인이 국가대표팀을 위해 너무 혹사를 당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그만큼 그의 존재감을 재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세 번의 대표팀은 선발 기준이 모두 달랐다. 그 안에 모두 원태인이 포함됐다는 건, 그만큼 한국 야구가 그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그는 "나도 걱정했다. 혹시 나도 모르게 몸을 다쳤을까 봐 노심초사하기도 했다"면서도 "국가대표는 늘 영광스러운 자리다. 몸은 힘들어도 기분은 항상 좋았다"고 돌이켰다.
유비무환이다. 원태인은 지난 연말 대구의 대형병원에서 몸 전체를 검사하는 '메디컬 체크'를 받았다. 다행히 부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정밀 검진에서 아픈 곳 없이 깨끗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오히려 2022시즌 종료 후 검진을 받았을 때보다 몸 상태보다 더 좋아졌다는 소견을 들었다"며 "그래도 몸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했다. 더는 체력소모를 하지 않고 부상의 위험도 줄이기 위해 이번 겨울 개인훈련은 미국이 아닌 국내에서 진행했다. 그는 "2023년엔 너무 많이 이동했다. 2024년은 아픈 곳 없이 안전하게 한 시즌을 보내고 싶어 국내에서 차분하게 몸을 만들었다"고 했다.
원태인은 용띠 해인 올해 팀과 함께 비상을 꿈꾼다. 그는 지난해 승운이 따르지 않아 7승(평균자책점 3.24)을 거두는 데 그쳤다. 타선이 약하고 불펜도 불안한 팀 전력상 승수를 쌓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삼성이 뒷문을 강화했다. KT 위즈 마무리 투수였던 김재윤을 4년 58억 원에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했고,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불펜 FA 임창민도 2년 8억 원에 데려왔다. 원태인은 "2024시즌엔 팀에 플러스 요인이 많은 것 같다. 팀 전력이 좋아진 만큼 나도 내 역할에 더 집중해서 풀타임 선발 투수로 제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또 "용띠 해인 만큼 부상 없이 최고의 한 해를 보내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며 "다치지 않는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 목표는 10승이다. 내가 10승을 하면 삼성의 가을야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1988년생 김재환
두산 베어스 김재환은 용띠 해를 앞둔 올겨울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지난 시즌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굳은 각오로 무장했다. 그는 2018년 KBO리그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을 수상한 강타자다. 그해 홈런 44개, 133타점을 기록해 '잠실 홈런왕'에 올랐다. 2021시즌이 끝난 뒤엔 두산과 4년 총액 115억 원에 계약해 팀 간판 타자의 위상을 인정 받았다. 그러나 지난 시즌 타율 0.220, 홈런 10개, 46타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주전으로 자리 잡은 2016년 이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최근 수년간 홈런 수가 2020년 30개→2021년 27개→2022년 23개로 점점 줄긴 했지만, 지난 시즌엔 그 하락 폭이 눈에 띄게 컸다. 두산 왕조의 주역인 4번 타자 김재환이 두 자릿수 홈런을 간신히 채우고 시즌을 마치면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고민이 깊었던 김재환은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부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주전 선수 대부분이 빠진 이천 마무리 캠프에 합류해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했다. KBO리그 역대 최고 홈런타자였던 이승엽 두산 감독도 김재환의 조력자로 나섰다. 이 감독은 "지난 한 시즌 내내 김재환과 주고 받은 대화보다 마무리캠프 3주간 나눈 얘기가 더 많았던 것 같다"며 "김재환도 고민을 털어놨고, 나도 함께 문제를 진단했다. 확실히 성과가 눈에 보였다"고 말했다. 김재환도 "감독님께서 열정적으로 나를 가르쳐주셨다. 감독님과 나눈 대화 내용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김재환은 마무리 캠프에서 강도 높은 반복 훈련을 소화했다. 이 감독은 "무척 힘들어하면서도 잘 견뎌내는 의지가 느껴졌다. 선수에게 훈련량이 전부는 아니지만, 몸이 좋은 자세를 기억하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며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동안 김재환을 괴롭혔던 안 좋았던 기억도 사라졌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재환은 마무리 캠프가 끝난 뒤에도 쉬지 않았다. 일주일도 안 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개인 훈련을 떠났다.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활약했던 강정호의 야구 아카데미에서 한 달간 타격 훈련을 했다. 자신과 동갑내기인 손아섭(NC)이 지난겨울 강정호와 비시즌 훈련을 함께한 뒤 슬럼프를 탈출하고 타격왕에 오른 점을 눈여겨봤다. 팀 동료 양의지의 소개로 강정호와 연락이 닿았고, 비활동기간인 12월 휴식기를 반납한 채 LA에서 타격 훈련에 열중했다. 김재환은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잘 배우고 왔다. 이 말에 많은 의미가 담겼다"며 "미국에 다녀온 성과가 나오려면 아직 (개막까지) 2개월 넘게 남았지만, 지금은 일단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또 "최근 6시즌 가운데 좋았던 3년과 안 좋았던 3년의 차이점이 뭔지 확인했다. 좋았을 땐 이래서 좋았고, 안 좋았을 땐 이래서 안 좋았다는 걸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때마침 김재환에게는 반가운 변화가 찾아온다. KBO리그는 올해부터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기로 했다. 김재환은 당겨치는 거포형 왼손 타자라 그동안 수비 시프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재환이 타석에 서면, 많은 팀이 내야수를 우익수 앞까지 후진 배치하는 극단적 시프트를 강행했다. 김재환은 강한 안타성 타구가 '외야에 있던' 내야수에게 여러 차례 잡히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시프트를 피해 다른 곳으로 타구를 보내려다 오히려 장점을 잃어버리는 부작용도 따랐다. 김재환은 "수비 시프트로 손해를 많이 봤다. 변화를 주기 위해 짧게 밀어치려는 시도를 했는데, 그러다 밸런스가 무너져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곤 했다"며 "잠실 타석에 서면 (시프트 때문에) '어디로 쳐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단 (시프트가 금지돼) 기분 좋지만, 앞으로 더 공을 잘 맞혀야 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재환의 재도약은 그 자신뿐 아니라 두산이 가장 바라는 소망 중 하나다. 이승엽 감독은 "김재환은 지금 간절하다. 팀에서 자신의 비중을 잘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계속 철저히 준비해 예전처럼 단단한 상태로 시즌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양의지는 "김재환의 부진은 지난해로 끝일 것 같다. 재환이의 부활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믿음을 보였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