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컷오프 줄이고 ‘난제’ 텃밭 지연전략, 잡음 최소화…‘한동훈 세력’ 구축 여부 관전 포인트
#무소음·무진동 공천
2023년 말 PK(부산·경남) 중진 의원이자 친윤 핵심으로 불려온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이 불출마 선언을 하고 PK의 또 다른 3선 하태경 의원이 국민의힘 텃밭 부산 해운대갑을 떠나 험지로 가겠다는 선언을 했을 때와는 다른 세상이 됐다.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도 재임 당시 친윤 또는 중진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통한 ‘희생’을 앞세웠지만 그런 목소리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 쑥 들어가 버렸다.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둔 2월 말로 바짝 다가섰지만 과거 같으면 다수 쏟아졌을 컷오프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2월 21일 현역의원 평가에서 ‘하위 10%’로 분류된 대상자들에 대해 컷오프가 통보됐지만 그 숫자는 공관위 계획보다 적었다.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듯 명단 발표도 하지 않는 ‘깜깜이’였다.
당초 공관위는 4개 권역별 교체지수 평가 결과 하위 10%에 해당하는 컷오프 대상 현역 지역구 의원을 7명으로 정했었다. 공관위에 따르면 1권역 강남 3구를 제외한 서울·인천·경기·전북과 2권역 대전·충북·충남에서 각각 1명이, 3권역 서울 송파·강원·PK(부산·울산·경남)에서는 3명이, 4권역 서울 강남·서초·TK(대구·경북)에서는 2명이 각각 컷오프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7명 중에는 당의 요청에 따라 지역구를 옮긴 의원에다 다가오는 총선 불출마 입장을 확정한 재선의 김희국 의원(경북 군위·의성·청송·영덕)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실제 컷오프 규모는 3~4명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4년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현역 컷오프 규모(19명)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전체 국민의힘 지역구 의원이 90명인 점을 감안하면 컷오프 비율은 불과 4%대에 머무른다.
국민의힘이 스스로 양지라 부르는 영남에선 현역 의원들의 단수공천도 줄을 잇는 중이다. 장제원 하태경 의원 행보와 엇갈리는 장면이다. 우선 경남에서는 ‘친윤(친윤석열)’ 윤한홍 의원, 김기현 지도부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냈던 박대출 의원(진주갑), 수석대변인을 맡았던 강민국 의원(진주을)이 단수공천됐다. 윤영석(양산갑) 서일준(거제) 최형두(창원 마산합포) 의원도 단수공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단독 신청자였던 정점식 의원(통영·고성)도 공천이 확정됐다.
경북에서는 사무총장을 지냈던 이만희(영천·청도) 정희용(고령·성주·칠곡) 의원이 단수공천자로 결정됐다. 대구에서는 윤재옥(달서을) 원내대표와 경제부총리를 지낸 추경호(달성) 의원이 단수공천자 명단에 포함됐다.
2월 21일 기준 공천 신청자가 있는 지역구 242곳 중 현역 의원의 단수공천을 확정한 곳은 무려 36곳에 이른다. 이에 대한 비판이 불거지자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현역 의원 중 무조건 물갈이하는 게 아니고, 지역구 관리를 철저히 열심히 한 분들은 당연히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이 교체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경선 지역으로 확정된 곳에서도 다수의 현역 의원들이 살아남아 경선 링 위에 올라가있다. 3선 이상 지역구 의원들만 해도 비록 페널티를 받지만 다수가 경선을 치를 수 있게 됐다. PK의 이헌승(부산 부산진을) 조경태(사하을), TK 주호영(대구 수성갑) 김상훈(서구), 충청권 정우택(충북 청주상당) 이종배(충주) 박덕흠(보은·옥천·영동·괴산), 그리고 울산의 김기현(울산 남구을) 의원이다.
페널티가 있지만 다선 의원들이 경선에서 절대 유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가점을 받더라도 정치 신인들이 현역 의원들의 인지도를 좀처럼 따라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현역 교체 비율이 역대 최저가 될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역대 보수 정당 계열은 TK 등 최대 지지기반에서부터의 대폭 물갈이를 통해 혁신 이미지를 심어왔다. TK만 해도 매번 총선 때마다 60% 안팎의 교체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완전히 다른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시도에 대비해 현역들 눈치를 보고 있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텃밭은 전격전보단 지연전
공천 발표가 곧 당선 확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국민의힘 텃밭 공천은 전격전 대신 지연전술이 펼쳐지고 있다. 이 역시 공천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국민의힘이 4권역으로 분류한 최대 지지기반 서울 강남권과 TK를 살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이곳의 많은 지역구에 대해 공천관리위원회는 심사 보류 결정을 내렸다.
특히 용산 출신들이 대거 나온 TK는 최종 공천 발표가 상당 기간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명구 전 국정기획비서관, 허성우 전 국민제안비서관 등 복수의 용산 출신 후보가 이름을 올린 경북 구미을이나 조지연 전 행정관이 나온 경북 경산도 보류 지역인데 공관위의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지지기반에서의 공천 늦추기는 보수정당 전통이기도 했고 이미 예견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는 반응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이 공천 탈락한 현역 의원들을 영입할 수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선거 경험이 많은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맹물 공천이다. 감동이 없다 등의 비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정치는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면도 있지만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경쟁 세력을 보면서 뛰어야하는 상대적 전술도 가져야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내 비주류에 대해 거침없이 낙천의 칼을 휘두르면서 당이 심각한 내홍을 입고 있는데 여당은 안정 구도 속에서 변화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
#친한 세력 등장하나
정가에선 한 위원장이 이번 공천을 통해 얼마나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에도 관심이 높다. 국민의힘 텃밭이자 5선인 서병수 의원이 당의 험지 출마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자리가 빈 부산 부산진구갑 선거구에서는 초등학교 평교사 출신 정성국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이 단수공천을 받았다. 정석국 후보는 ‘친윤’으로 불리며 공천이 유력시됐던 박성훈 전 해양수산부 차관을 제쳤다.
정 후보는 한 위원장이 주도한 국민의힘 영입 1호 인사다. 그가 부산시 경제부시장·대통령실 국정기획 비서관·해양수산부 차관이라는 화려한 경력의 박 전 차관을 제친 것은 이변으로 꼽힌다.
한 위원장이 내세운 안정적인 시스템 공천 기조와는 다소 결이 다른 정 후보의 발탁 공천이 나오자 당 내부는 시끄러워졌다. 이수원 원영섭 후보 등 낙천자들이 강력 반발한 것이다. 이들은 무소속 출마 불사 의사까지 내비치며 “비대위가 평가 결과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초 비례대표 공천이 유력시됐던 영입 인사 고동진 전 삼성전자 대표는 서울 강남권으로 투입될 가능성도 커졌다. 진양혜 전 방송인과 사격선수 출신 진종오 씨 등의 영입 인사들도 지역구 배치 가능성이 점쳐진다.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례 위성정당 대표로 현역 의원이 아닌 당직자를 내정한 것도 세력 확장 시도로 읽힌다. 비례 정당에 대한 비대위원장의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공천관리위원회의 김현아 전 의원에 대한 경기 고양정 단수공천 결정을 한 위원장이 2월 22일, 하루 만에 뒤집은 것도 정치권에서는 세력 확대 차원으로 풀이한다. 한 위원장이 공관위 의결을 보류하고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김 전 의원 사례가 처음이었다.
2월 21일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에 휩싸인 김현아 전 의원 단수공천 결정 뒤 친윤(친윤석열) 핵심이자 공관위원인 이철규 의원은 “(당내 조사에서) 문제가 될 만 한 건 발견되지 않았기에 승리할 수 있는 후보자로 판단해 포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이 의원 말을 돌려세우며 “우리 스스로 분명하고 자신 있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면서 전격 재검토를 지시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한 위원장은 총선 승리를 이끌고 나아가서 차기 대선에 대비, 자신의 위치를 굳혀야하는 입장에 있는데 이런 전제 위에서 계산된 행동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