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하위 20%’ ‘컷오프’ 통보에 거센 반발, 친문 중심 집단행동 가능성도…낙천자들 향후 진로 촉각
#현역 의원 거센 반발
2월 22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서울 마포갑 △서울 동작을 △경기 의정부을 △경기 광명을을 ‘전략 지역구’로 지정했다. 이곳 현역은 각각 노웅래(4선·마포갑) 이수진(초선·동작을) 김민철(초선·의정부을) 양기대(초선·광명을) 의원이다. 전략 지역구로 지정되면 전략공관위가 공천을 결정하는 만큼 노웅래 이수진 김민철 의원을 포함, 해당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예비후보 모두 컷오프(공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양기대 의원 지역구는 전략 경선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 경선은 대상자 수나 방식을 기존 기준과 달리 정하는 것을 뜻한다. 오래전부터 경기 광명을 출마를 준비해온 양이원영 의원(비례)은 컷오프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수진 양이원영 의원은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당내 강경파 초선 모임 ‘처럼회’ 소속인 만큼 친명계로 분류돼왔으나 고배를 마셨다. 다만 양이 의원은 “전략 지역구인 경기 광주을에서 기존 예비후보 4명 중 3명이 경선을 한다”며 “경기 광명을이 전략 지역구로 지정됐지만, 예비후보가 컷오프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수진 의원은 컷오프에 반발하며 탈당을 선언했다. 이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욕과 비리, 모함으로 얼룩진 현재의 당 지도부의 결정에 분노를 넘어 안타까움까지 느낀다”며 “리더의 최대 덕목은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다. 리더십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고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를 직격했다. 이어 “지난주 백현동 판결을 보면서 이 대표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노웅래 의원은 공관위 결정에 항의하며 당대표 회의실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뇌물수수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노 의원은 “금품 관련 재판을 받는 게 저 혼자가 아닌데, 이 지역만 전략 지역으로 한다는 건 명백히 고무줄 잣대”라며 “이건 공천 전횡이고 공천 독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특별당규 원칙과 기준, 기존 당규, 공관위 규정 모두에 위배되는 밀실·불법 전략 지역 지정발표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현역 의원 하위 20%’ 통보를 받은 의원들도 거세게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인 김영주 국회부의장(4선·서울 영등포갑)은 2월 19일 탈당을 선언했다. 김 부의장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저에 대한 하위 20% 통보는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당으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하고 상징적인 사례”라며 “민주당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이재명을 지키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SNS에서도 “‘친문학살’을 목적으로 한 정치적 평가가 아니라면 하위 20%에 대한 정성평가를 공개하면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영주 부의장을 비롯해 △박용진(재선·서울 강북갑) △송갑석(재선·광주 서구갑) △김한정(재선·경기 남양주을) △박영순(초선·대전 대덕) △윤영찬(초선·경기 성남시중원구) 의원 등 6명이 하위 20% 통보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박용진 김한정 박영순 윤영찬 의원은 ‘하위 10%’, 김영주 송갑석 의원은 ‘하위 20%’다. 박용진 김한정 의원은 공관위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기각당했다.
#친문계 집단행동 나서나
2월 21일 의원총회에서 홍영표 송갑석 윤영찬 전해철 이인영 등 친문계 의원들은 현역 의원 하위 20% 평가, 여론조사 등 공천 관련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홍 의원은 의원총회 직후 “이 대표의 사당화를 위한 공천을 해선 안 된다”며 “특히 정체불명의 여론조사라든지, 도저히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하위 20%’에 대해 정확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가에선 비명계 의원들이 친문계를 중심으로 집단행동에 돌입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2월 20일 전해철 윤영찬 등 문재인 정부 장관, 청와대 출신 의원들이 비공개 오찬 회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날 홍영표 등 친문계 일부 의원들도 비공개 만찬을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의 불공정 공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알려졌다. 박영순 의원은 “(비명계 집단행동 등) 필요하면 모든 일은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들도 공천 논란에 우려를 표하며 친문계 반발에 힘을 실었다. 2월 21일 정세균 김부겸 전 총리는 “이재명 대표가 여러 번 강조했던 시스템 공천, 민주적 원칙과 객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이 대표가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이어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총선 승리에 기여하는 역할을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갈등 진화에 나섰다. 2월 22일 홍 원내대표가 당내 불공정 공천 논란에 대해 “하나가 돼도 모자란 시점에 (국민께) 실망을 주고 있어 대단히 송구하다”고 밝혔다. 전날인 21일 의원총회에서도 밀실 공천 논란 등에 대해서 “지도부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말하며 비공식 여론조사 재발 방지 등을 약속하며 총선 승리를 위해 당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는 각종 논란에 대해 정면돌파를 택했다. 2월 22일 이 대표는 국회 본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각에서 제기된 사퇴 요구에 대해 “툭 하면 사퇴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고 일축했다. 현역 의원이 제외된 여론조사에 대해선 “필요에 따라 여러 조사가 있을 텐데, 개별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일상적으로 해오던 정당 내 조사업무인데 과도하고 예민하게 생각해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최근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당내 반발에 대해선 “민주당은 시스템에 따라 합리적 기준으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골라내고 있는 중”이라며 “약간의 진통,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이라고 생각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공천 파열음은 이재명 대표의 ‘사천 논란’을 시작으로 점차 확대돼왔다. 2월 13일 이 대표가 조정식 사무총장, 김병기 수석사무부총장, 정성호 의원 등 지도부 및 측근들과 비공개 심야 회의를 열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 자리에서 노웅래 기동민 이수진(비례) 의원 등 재판을 받는 중인 현역 의원들의 컷오프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밀실 사천’ 논란이 불거졌다.
민주당 지도부는 사실무근이라고 입장을 냈다. 하지만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은 ‘밀실 사천’ 논란을 인정하며 수습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임 위원장은 이 대표의 비공개 심야 회의서 컷오프 거론된 현역 의원과 통화에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정체불명의 여론조사는 공천 불공정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최근 이인영(서울 구로갑) 홍영표(인천 부평을) 송갑석(광주 서구갑) 설훈(경기 부천을) 등 비명계 지역구에서 현역 의원을 배제한 여론조사가 실시된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당 지도부와 공관위는 해당 여론조사를 돌린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2월 21일 조정식 사무총장은 의원총회서 대체로 당에서 했다고 사실을 인정했다.
컷오프된 문학진 전 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경기도팀’이라는 비선 조직이 여론조사를 돌리며 공천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2월 21일 문 전 의원은 “정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 행위인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의 공식 라인이 아닌 ‘경기도팀’이라는 비선(이외에도 몇 개의 팀이 더 있다)에서 ‘적합도 조사’를 빙자하여 수치를 조작, 당대표에게 직보하고, 당대표가 이를 제시하며 특정 후보들에게 불출마를 종용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친문 vs 친명’ 계파 갈등 트리거가 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험지인 송파갑 지역구로 출마해달라는 민주당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 2월 21일 임 전 실장은 전략선거구인 서울 중구·성동갑 출마를 고수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2016 분당사태 재연? 민주당 ‘친문 vs 친명’ 공천 혈투, 올 게 왔다).
#공천 반발 의원들 향후 진로는?
국민의힘은 김영주 국회부의장을 접촉하며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2월 20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 김 부의장의 회의 주재 방식을 거론하면서 “김 부의장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분인 걸로 기억한다”고 호평했다. 국민의힘이 영등포갑 공천을 확정하지 않은 만큼 이상민 의원에 이어 김 부의장 영입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등에서도 김 부의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러자 민주당은 급하게 수습에 나섰다. 홍익표 원내대표가 김교흥 의원과 함께 김 부의장을 찾아가 탈당을 만류했다.
이수진 의원은 2월 22일 탈당 기자회견 이후 제3지대 입당이나 무소속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 다른 당에 가는 것은 생각 안 했지만, 동작을이 민주 당원들에게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지금부터 고민해보겠다”며 “주민과 당원분들이 승리의 길을 위해 뛰어달라고 하면 그분들의 애정과 노력을 지키고 존중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주민들 요청이 있으면 무소속 등으로라도 출마하겠다는 취지다.
현역 의원 하위 20% 통보는 사실상 컷오프에 해당한다. ‘하위 10%’는 경선 득표의 30%를, ‘하위 20%’는 20%를 각각 감산하는 페널티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박용진 의원은 친명계 원외 인사인 정봉주 이승훈 예비후보와 3인 경선을 치른다. 김한정 의원은 친명계 김병주 의원(비례)과 2인 경선을 치른다. 윤영찬 의원은 친명계 이수진 의원(비례)과 2인 경합을 벌인다.
제3지대는 민주당 공천 갈등을 발판삼아 이삭줍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2월 22일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공천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 비명계 의원들을 향해 “새로운미래에 합류해주시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위 20% 평가를 받은 민주당 현역 의원들을 접촉하고 있냐’는 질문에 “물론이다”며 “어떤 분은 합류 가능성을 강하게 말씀하신 분도 있다”고 말했다.
2월 21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양당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형태의 공천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고, 만약 낙천 이유가 불합리한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