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4만 명 마을에 대만 기업 TSMC 공장 들어서자 땅값 10배 폭등…덩달아 치솟는 물가·인건비에 ‘후덜덜’
34년 만에 일본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월 22일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 평균이 3만 9098엔을 기록, 1989년 12월 버블경제의 정점이었던 3만 8915엔을 넘어섰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에서 벗어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30년여 전 일본은 공전의 호경기로 들떠있었다. 회사원들은 돈다발 보너스에 함박웃음을 지었고, 졸업 예정자가 면접을 보러 가면 3만 엔의 교통비가 지급되던 시절이었다. 명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며 디스코장은 밤새 북적였다. ‘오늘보다 내일의 경기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갑은 쉽게 열려 내수 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반면 지금은 증시가 천장을 뚫고 있는데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무덤덤하다. 왜 그럴까.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나가하마 도시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예전 일본 기업들은 일본 내에서 돈을 많이 벌어들였기에 주가와 국내 경제가 연동됐다. 하지만, 지금의 기업들은 해외에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일본 증시가 올라도 경기가 체감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런 와중에 아이러니하게도 해외 기업이 진출해 호황을 누리는 일본 마을이 있다. 구마모토현의 기쿠요마치로, 인구 4만 3000명이 거주하는 시골이다. 아사히TV에 따르면 “대만 기업 TSMC가 기쿠요마치에 공장을 짓기 시작하면서 ‘반도체버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변화는 마을의 풍경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일례로 공장에서 가까운 하라미즈역이다. 이용객이 없어 한산했던 무인역이 지금은 도심과 별반 다름없는 러시아워가 형성된다. ‘체감경기의 바로미터’인 택시 업계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 택시기사는 “월 매출이 가볍게 100만 엔(약 886만 원)을 넘는 동료가 적지 않다”며 “편의점이나 술집 등 사소한 이동에도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기쿠요마치는 원래 농업이 번성해 마을 주변에는 널따란 논밭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속속 신축 아파트와 호텔이 들어서는 중이다. 현지 건축업 종사자는 “끊임없이 일이 들어온다”면서 “몇 천만 엔가량 수입이 올랐다”고 밝혔다. 주택지 평당 가격도 껑충 뛰었다. 지역 부동산회사에 따르면 “현재 평당 가격은 버블경제 시대에 버금가는 25만 엔”이라고 한다. 이 업체는 “공장 유치가 더 이어진다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35만 엔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젖소를 키우고 있는 낙농민은 “1800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평당 2만~3만 엔이었다”고 전했다. 작년 이맘때 10만 엔으로 올랐고, 지금은 평당 20만 엔으로 배가 됐다. 그는 “주변에서 100년에 한 번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땅을 팔아 건물을 지을 예정”이라고 했다. 목장보다 월세 수입을 거두며 사는 쪽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마을에 찾아온 공전의 호경기. 인건비도 비약적으로 상승해 고용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다. 식당 아르바이트 시급이 2000엔이 넘는 곳도 생겨났다. 2월 24일 준공식을 개최한 TSMC 제1공장은 올 연말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추가로 제2공장 건설도 결정돼 공장에서만 합계 3400명 이상의 고용이 전망된다. 더욱이 주변에는 소니그룹 등 반도체 관련 기업의 공장 집적도 예상된다. 인력난은 한층 격화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니 TSMC 공장 부지로 구마모토현의 농촌 마을이 선정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NHK에 따르면 “구마모토현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깨끗한 수자원이 풍부하다”고 한다. 여기에 반도체 부활을 노리는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배경이 됐다. 일본 정부는 대규모 보조금 지원책을 통해 TSMC의 일본 공장 유치에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규슈경제조사협회는 TSMC 공장 건설로 오는 2030년까지 20조 엔(약 177조 1020억 원)의 경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현지에서는 불안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주민은 “토지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뛰어 가뜩이나 고물가 시대에 걱정된다”고 말했다. “건설업자들은 일이 넘쳐나고 지주는 남아도는 토지를 팔면 되지만, 땅이 없는 서민 입장에서는 물가만 올라 생활이 더 빡빡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실제로 땅값 폭등의 여파로 월세가 3배가량 오르자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닫는 점포도 늘고 있다. 채소가게, 케이크가게, 라멘가게 등 규모는 작아도 오랫동안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점포들이다. 철거지에는 아파트가 들어설 것 같다.
여전히 지역 토박이들은 단독주택을 선호한다. 한 주민은 “10년 전에는 3000만 엔으로 정원이 딸린 주택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두 배 이상 올랐다. 집을 살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급격한 마을의 변모를 그저 불안하게 지켜볼 뿐이다. 땅을 팔아 부자가 된 주민도 분쟁은 속출한다. 형제, 친족 간의 재산 다툼이다. 후지TV는 “이럴 거면 팔지 말 걸 그랬다며 후회하는 농민도 있다”고 전했다.
후지TV의 가자마 신 논설위원은 “거품 같은 과열 현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며 “정부는 장밋빛 미래만을 떠들 것이 아니라 확실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TSMC의 구마모토 진출은 규모가 월등하게 크기 때문에 그만큼 변화와 속도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주민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
가자마 논설위원은 “앞으로 지방소득세라든지 주민세, 지방소비세 등이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자원을 사용해 주민들의 불안감 해소 및 인력 부족, 농지 감소, 환경 보전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지역의 종합적인 발전을 어떻게 이뤄낼지 정부와 지자체가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