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변준형-오재현 가드진 합격점…라건아와 재계약? 귀화선수 물색? 농구협회 ‘발등의 불’
#젊어진 대표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8강에서 탈락하며 철저한 실패를 경험한 대표팀은 세대교체 필요성이 감지됐다. 베테랑 가드 김선형을 포함해 핵심 슈터 전성현, 대표팀 붙박이 빅맨 이승현 등이 명단에서 제외됐다. 모두 30대 중반을 넘어서거나 향해 가는 베테랑들이다. 다만 부상을 입은 자원도 있기에 향후 복귀 가능성도 있다.
이들의 빈자리는 1990년대 후반 태어난 영건들이 대거 채웠다. 1999년생 오재현과 KBL 신인 박무빈은 생애 최초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이외에도 오재현과 동갑내기인 이정현, 이우석, 하윤기 등이 대표팀 주축을 이뤘다.
대표팀의 세대교체는 볼핸들러 포지션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기존 김선형을 포함해 아시안게임에서 홀로 분전했던 허훈도 부상으로 빠졌다. 장신 볼핸들러 자원 최준용은 당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 오랜만에 복귀를 알렸으나 소집 직전 부상으로 교체됐다. 장기간 대표팀에서 주축 역할을 맡던 이들이 대거 빠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정현, 박무빈, 변준형, 오재현으로 구성된 가드진은 가능성 그 이상을 보였다. KBL 내 국내 선수 득점 1위(21.47점), 어시스트 전체 2위(6.66개), 스틸 2위(1.75개)를 기록 중인 이정현은 호주전에서 한때 접전을 이끌어냈다.
호주는 지난 아시아컵 2개 대회를 연속 우승한 세계랭킹 4위의 강호다. 높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는 상대인 호주에 4쿼터 시작 지점까지 앞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정현과 변준형 등 가드 자원의 분전이 한몫했다. 이들은 각각 9득점씩 올렸고 스틸 5개를 합작했다.
대표팀 새내기 오재현도 KBL 무대에서 증명한 수비력으로 향후 활용 전망을 밝게 했다. 대표팀 첫 발탁임에도 호주를 상대로 10분가량 소화하며 스틸과 블록 1개씩 기록했다.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헌은 덤이었다.
#작별 고한 라건아
격차가 큰 태국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이후 대표팀에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역사상 최초 귀화선수였던 라건아가 6년간의 활약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떠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표팀 마지막 경기였다"며 "외국선수 최초로 나라를 대표해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런 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에 평생 감사하며 살겠다"고 전했다.
라건아는 이번 대회 역시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했다. 강팀 호주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다 4쿼터에서 경기가 급격히 기울어진 데는 라건아의 존재감이 컸다. 그는 팀 내 유일하게 30분 이상 소화하며 21득점 1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하지만 4쿼터 들어 파울 4개째를 범하며 코트에서 물러나자 호주는 코트를 지배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라건아는 지난 6년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아시아 최고 수준의 빅맨으로서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나서는 대회마다 팀을 이끄는 활약을 펼쳤다. 2019 FIBA 농구 월드컵에서조차 경기당 평균 득점 23점, 리바운드 12.8개로 대회 전체 득점 1위와 리바운드 1위에 오를 정도였다.
이 같은 기록을 남긴 라건아와 계약이 종료된 시점, 농구협회와 대표팀이 '포스트 라건아' 시대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라건아와 재계약, 또 다른 귀화 선수의 물색 등 선택지는 여러 가지다. 국제무대에서 귀화선수를 통한 국가대표팀의 전력 보강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가는 추세다.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도 여러 명의 귀화선수를 확보해 놓고 대표팀 상황에 따라 필요한 선수를 골라서 선발하고 있다. 대표팀은 먼저 현재 라건아의 향후 가치를 가늠하는 회의를 가질 전망이다.
대표팀과 농구협회의 이 같은 대처를 놓고 비판이 나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대응을 한다는 지적이다. 귀화선수를 놓고 벌어지는 특수한 계약 형태 탓에 재계약 또는 새로운 귀화선수 선발에 어려움이 따른다. 라건아 역시 농구협회와 라건아 둘 사이의 협의로만 대표팀 선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재정에 어려움이 있는 농구협회 탓에 라건아의 대표팀 수당 등은 그간 KBL 구단에서 부담해왔다. 농구협회가 다른 귀화선수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물주'를 찾아야 한다.
6년 전 라건아같이 특별귀화 요건을 갖춘 선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당시 라건아는 이미 KBL 무대에서 우승 3회, 외국인 MVP 수상 등 각종 농구계 업적을 남긴 선수였다.
2경기만 치르는 길지 않은 일정이었음에도 이번 역시 선수단에 대한 농구협회의 지원이 도마에 올랐다. 호주 원정길에서 선수들은 홍콩을 경유하는 등 이동하는 데 긴 시간을 들여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행기 좌석조차 비지니스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KBL 구단들의 지원을 받는 대표팀의 현실이 다시 한 번 비판을 받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