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촌 이상부터 허용’ 국민 4명 중 3명 반대…혼인의 자유와 달라진 시대상 반영 목소리도
#근친혼 뜨거운 감자 된 까닭
‘근친혼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헌법과 관습 사이의 해묵은 논쟁이다. 기름을 끼얹은 건 2023년 11월 법무부로부터 연구 용역을 맡은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혼인 금지 범위를 4촌 이내 혈족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다. 근친혼 범위 축소 관련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5촌 당숙과 결혼한다니, 막장 드라마와 다름없다” “그동안 혼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해왔다” “이해는 가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5촌 이상 혈족과의 결혼은) 어려울 것 같다” 등 다양한 의견을 드러냈다.
2022년 10월 헌법재판소의 ‘8촌 이내 혼인무효’ 조항(민법 815조)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24년 12월 31일까지는 개정안을 입법해야 한다. 헌재 결정의 발단이 된 사건은 2017년 소아과 의사 A 씨가 6촌 여동생 B 씨에게 제기한 혼인무효 소송이었다. A 씨와 B 씨는 6촌 사이(A 씨의 조모와 B 씨의 조부가 남매)인 걸 알면서도 2011년부터 미국 플로리다에서 동거하며 6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2016년 대전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A 씨가 변심해 “어차피 6촌 결혼은 원천 무효”라며 B 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B 씨는 “사회적 약자인 나를 상대로 A 씨가 축출이혼(유책 배우자가 무책 배우자를 쫓아내는 것)을 시도했다”고 항의했지만, 대구가정법원 상주지원 1심과 대구가정법원 2심은 모두 혼인을 무효로 판결했다. 2018년 B 씨는 8촌 이내 금혼 및 혼인무효 조항이 부당하다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8촌 이내 혼인을 ‘무효’로 정한 민법 815조 2항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쉽게 말해, 8촌 이내 혈족 간의 결혼을 금지한 건 옳지만, 이미 한 결혼을 국가나 제3자의 목소리에 따라 일괄적으로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치는 것(무효)은 과하다는 취지다.
현재 합법적으로 혼인이 가능한 촌수는 법적으로 남남인 9촌부터다. 예컨대 ‘고조할아버지의 친형제의 증손주’나 ‘증조할아버지의 친형제의 손주의 손주’가 9촌이다. 4촌 이내로 혼인 금지 범위를 줄이면, 5촌 사이인 당숙(아버지의 사촌형제)이나 이종질(이모의 손주)과 결혼할 수 있게 된다. 즉, 사촌이 사돈이 되거나 당숙이 남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얼마나 많은 ‘합법 커플’이 탄생할지는 미지수다. 지금도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고, 근친혼은 당사자들이 침묵하는 데다 사실혼 관계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 5일까지 24년 동안 민원정보분석시스템에 근친혼 관련 키워드로 접수된 민원은 51건이었다. 1년에 2건꼴이다.
#“혼인의 자유” vs “인륜 무너져”
법무부는 2023년 11월 28일부터 12월 6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3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방식의 여론조사를 한 결과, 근친혼 금지 범위에 대해 75%의 응답자가 ‘현행과 같은 8촌 이내’를 꼽았다고 3월 11일 밝혔다. ‘6촌 이내’가 적절하다는 응답은 15%, ‘4촌 이내’가 적절하다는 응답은 5%로 조사됐다. 근친혼 금지 조항이 혼인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보는지 묻는 문항에도 74%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그렇다’(24%)는 답변보다 많았다.
근친혼 금지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헌법상 혼인 상대를 선택할 자유를 근거로 든다. 한 법률 전문가는 “헌재의 판단은 결국 개인들이 결혼을 선택을 할 수 있는데 국가가 법으로 금지하는 범위를 줄인다는 뜻”이라면서 “국가 차원에서 5촌 이상의 혈족 간 혼인을 금지할 만한 실익도 굉장히 낮아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20대 남성 유 아무개 씨는 “5촌 이상은 얼굴도 본 적이 없다. 평생 교류 없이 살다가 상대방과 친척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가족의 범위가 점차 축소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면서 “최근에는 직계가 아닌 형제·자매에 대한 상속 유류분마저 제외하려는 추세다. 근친혼 범위 축소 역시 법적으로 가족의 범위를 줄이려는 일련의 움직임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곽 변호사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근친혼을 터부시하는 정서에 위배되는 ‘정책’이라고 생각해 국민들이 거부감을 느낀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도 우리나라만큼 근친혼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국가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태국 등은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프랑스·영국·미국 등은 여기에 숙질(삼촌과 조카 사이)까지를 금혼 범위로 정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중국과 필리핀, 베트남은 직계혈족과 4촌 이내 방계혈족만 혼인을 금지하고 있고, 일본도 3촌 이내 방계혈족에 대한 혼인만 제한하고 있다.
반면 근친혼 범위 축소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전통적인 가족 질서의 붕괴를 우려한다. 논란 직후 성균관 등 전국 유림은 “8촌 이내는 고조부를 함께하는 가족”이라며 “5촌 사이 혼인이 벌어지다 보면 인륜이 무너지고 족보가 엉망이 되고, 성씨 자체가 무의미해진다”고 반발했다. 3월 6일 최종수 성균관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사랑도 혼인도 다 본인의 선택이지만 왜 수십만 명 중에 근친을 택해야 되느냐”면서 “우리의 우수한 가족문화, 전통문화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직접적인 행동에도 나서는 모양새다. 3월 6일 성균관유도회총본부 등에 따르면 5일부터 김기세 성균관 총무처장과 박광춘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사무총장 등 유림들이 혼인 금지 범위 축소와 관련한 법무부의 연구 용역 철회를 촉구하며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최종수 성균관장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면담을 신청한 상태이며, 성균관은 대한노인회와 함께 집단행동도 고심 중이다.
일각에서는 5촌 이상 혈족 간의 근친혼이 유전병 문제를 심화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다만 정부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5촌 이상 혈족 간 근친혼과 유전병 발병률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나와있다. 한 인류학 전문가는 “5촌 정도 넘어가면 근연도가 많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외국에서도 가까운 친족끼리 혼인을 하게 되면 유전병 가능성 같은 것들을 확인한다. 유전병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근친혼 범위를 넓게 규정한 우리 민법이 실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론도 지적된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당사자가 혼인신고서에 ‘8촌 이내에 해당된다’에 ‘예’ 표시를 하거나, 가족관계등록부 등으로 확인되지 않는 이상 공무원이 근친혼 해당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한다. 앞서의 곽준호 변호사는 “8촌 이내 혈족 간의 결혼은 굉장히 드문 케이스라 근친혼 규정 자체가 사문화된 측면이 있다. 6촌이나 8촌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없어 혼인신고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는 “가족법 특별위원회의 논의를 통한 신중한 검토 및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시대변화와 국민정서를 반영할 수 있는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족법 개정 추진을 위한 ‘법무부 가족법 특별위원장’인 윤진수 서울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아직 가족법 개정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며 “다만 해외에선 4촌을 넘어가면 결혼을 못하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위원회는) 8촌→4촌 축소안, 8촌→6촌 미세조정안 등등을 모두 열어 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