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배당액 등을 두고 (주)영풍과 충돌…주총 결과 향후 신사업 추진·외연 확장에 영향
영풍그룹은 1949년 고 장병희, 최기호 공동 창업주가 설립한 영풍기업사가 모태다. 1970년 영풍 석포제련소를 설립했고, 1974년 고려아연을 세웠다. (주)영풍과 전자부문 계열사는 장씨 측이, 고려아연과 비철금속 계열사는 최씨 측이 경영을 맡아왔다.
세계 최대의 아연 제련업체인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전체 매출 중 70%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다. 고려아연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는 25.15% 지분을 보유한 (주)영풍이다. 이어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이 3.45%, 최윤범 회장이 1.75%의 지분율을 확보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올해 주총 안건 중 양측이 대립하고 있는 사안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결산배당금 5000원으로 지급하는 안과 외국의 합작법인에만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을 삭제하는 안이다.
고려아연 측이 제시한 안대로 배당금이 지급될 경우 2023년도 배당금 총액은 중간배당금 1만 원을 포함해 1만 5000원이 된다. 이는 전년 2만 원과 비교해 5000원이 줄어든 금액이다. 고려아연으로 받는 배당금 비중이 큰 (주)영풍 측은 결산배당금을 1만 원으로 수정 제안할 예정이다. 배당액이 줄면 고려아연 지분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는 (주)영풍의 실탄이 줄어든다.
(주)영풍 관계자는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한다며 중간배당을 실시했는데 전체 총액이 오히려 줄어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1000억 원의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주주환원율은 76.3%로 전기(50.9%)에 비해 훨씬 높아진 상황이고, 환원액은 2022년 3979억 원에서 2023년 4027억 원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주)영풍 측은 특히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상 변경안에 대해서는 기존 주주의 주주권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사실상 고려아연에 대한 (주)영풍 측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주)영풍은 주주서신을 통해 “현 경영진이 유리한 우호지분을 확보하고 확대하기 위해 제3자 배정 신주 발행을 사용하게 될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는 고려아연의 현금배당안에는 찬성을,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상 변경안에는 반대를 권고했다. 또 다른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글래스루이스는 두 가지안 모두 찬성을 권고했다.
고려아연을 두고 양측이 대립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22년 고려아연이 한화의 해외 계열사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약 5%의 신주를 발행해 넘기면서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후 고려아연은 현대차 해외 계열사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지분 약 5%를 신규로 발행하고 한화 및 LG화학 등에 약 6%의 자사주를 맞교환 또는 매각했다. 새롭게 지분을 확보한 곳들은 최윤범 회장 측의 ‘백기사’로 분류된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신재생에너지 △그린수소 △2차전지 소재 등 3대 신사업을 앞세운 ‘트로이카 드라이브’ 신성장 전략 추진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및 투자금 확보를 위한 방안이라는 입장이다.
올해 주총의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주)영풍 측이 약 32%, 최윤범 회장 측이 약 33%의 지분율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최씨 일가로 추정되는 특수관계인 4명이 7792주(0.07%)를 매도하기도 했다. 7.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금배당안은 가결, 제3자 유상증자 대상 변경안은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최윤범 회장 입장에서 이번 주총 결과는 향후 경영 활동의 방향성과 속도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꼽힌다. 기업의 외연을 확대하려는 최 회장의 경영 방침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의욕적으로 추진한 신사업뿐만 아니라 지분 교환 등을 통해 확보한 우군들과 성과를 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12월 창사 이래 첫 IR행사인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2033년까지 ‘트로이카 드라이브’ 부문 매출 12조 2000억 원을 포함해 총 25조 30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고려아연은 앞서 2022년 울산 온산제련소 부근에 1500억 원을 투자해 자회사 케이잼(KZAM)의 연간 1만 3000톤(t) 규모의 동박 공장을 완공했다. 케이잼의 동박 공장 증설에 약 7356억 원을 추가로 투자해 오는 2027년까지 연간 생산량을 6만t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그런데 2022년 완공한 케이잼의 동박공장에서 당초 2023년 말까지 고객사 테스트 및 인증을 완료하고 양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이었으나, 현재까지 이렇다 할 소식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동박업계는 최근 전기차 시장 둔화 여파와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인해 시장 전망이 불투명하다. 실제로 SKC·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솔루스첨단소재 등 국내 대표 동박 업체들은 지난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SKC는 216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6% 감소한 120억 원에 그쳤다. 솔루스첨단소재도 73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고려아연은 2022년 6월 계열사 켐코(KEMCO)와 LG화학의 합작법인인 한국전구체(주)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2024년까지 총 2000억 원을 투자해 연간 2만t 이상의 전구체 생산 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2023년 11월에는 계열사 켐코를 통해 총 5063억 원을 들여 온산제련소 인근에 연간 4만 2600t 규모의 ‘올인원 니켈 제련소’를 짓기로 하고 착공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구체와 니켈 분야도 공급 과잉과 메탈 가격 하락 등으로 기존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라 향후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 이러는 사이 곳간은 비어가고 있다. 별도 회계 기준으로 2022년 약 1조 8891억 원이던 고려아연의 현금성 자산은 2023년 1조 5389억 원으로 줄었다.
이 밖에도 2022년 7월 5800억 원을 들여 페달포인트홀딩스를 통해 인수한 미국의 전자폐기물 재활용 기업 이그니오 홀딩스의 재무상태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최윤범 회장에게는 부담 요소다. 현지의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기업의 경우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하는 경우가 있지만 자본잠식 상태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투자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뒷말이 나온다.
아울러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원아시아파트너스의 주요 자금줄이 고려아연이라는 점도 논란거리다. 본업이 아닌 곳에 상당한 규모의 투자금이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19년 설립된 원아시아파트너스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8개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약정금액은 총 6900억 원, 운용액은 약 5600억 원으로 추산된다. 고려아연 측은 총 약 5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동박 양산 시점에 대해 “시제품과 물건, 생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고객사 테스트와 인증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올인원 니켈 제련소 완공은 2026년이고 상업생산은 그해 또는 그 다음해가 될 텐데 수요와 시장은 몇년 뒤 크게 성장한다는 것이 많은 기관들의 예측”이라고 말했다.
또 이그니오홀딩스 인수에 대해서는 “재무적 부문보다 사업을 수행해나갈수 있는 적정업체를 찾는 것이 중요했고 이를기반으로 미국 내 의미있는 리사이클링 밸류체인을 만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의 경우, 해당기관이 독립적으로 펀드와 상품을 운영하는 계약이라 세부 내용을 알지 못했으며 일부 펀드는 부정적인 이미지 생성을 이유로 해지했다고 밝혔다.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