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다 성추행 사건 연상, 2차 가해 비판에 발매 중지…연예계 구설부터 강력범죄까지 AV 소재로 활용 논란
#DJ 소다 닮은 금발 여배우의 정체
다수의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일본의 대형 AV 업체 소프트 온 디맨드(SOD)는 3월 5일 ‘2023년 여름에 화제가 된 금발 DJ’라는 소개가 담긴 예고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여러 남성들이 금색 단발머리 차림의 여성 DJ를 더듬는 장면이 담겼다. 영상을 본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영상 속 주인공이 한국인 DJ 소다(36·본명 황소희)를 떠올리게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DJ 소다는 2023년 8월 13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뮤직 서커스 페스티벌’에 참여했다가 일부 남성 관객들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
영상 속에서 금발 여성 DJ를 둘러싼 남성들은 그녀의 몸을 만지면서 환호한다. DJ 역시 이를 싫지 않은 듯 내버려두는 장면도 나온다. 이 여성은 DJ 소다가 아닌 일본 유명 AV 배우다. 일본의 여성 주간지 '조세지신'은 일본 내에서 해당 AV 영상을 두고 “DJ 소다에 대한 2차 가해 우려가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엑스(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도 “분명히 DJ 소다를 연상시키는 영상이다. 윤리관이 없다” “SOD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상을 제작한 거냐” 등 해당 영상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논란을 의식한 듯 SOD 측은 해당 영상의 발매를 중지하기로 했다. SOD는 3월 7일 공식 SNS 계정을 통해 “본 작품에 대해 제반의 사정으로 발매를 중지하게 됐다. 작품을 기대해 주셨던 여러분에게 폐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고 밝혔다. 다만 DJ 소다와의 연관성 등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은 데다, 영구적인 판매 중단이 아닌 점 등을 두고도 여전히 비판이 일고 있다. 실제로 SOD 공식 사이트에서 해당 작품은 삭제됐으나 며칠 동안 디지털 판매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DJ 소다는 일본에서 겪은 성추행 피해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직접 알렸다. 당시 그녀는 관련 사진을 공개하며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에게 속수무책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며 “너무 놀라고 무서웠다”고 했다. 이에 행사를 주최한 일본 기획사 측은 남성 2명과 여성 1명을 성추행 혐의로 고발했다. 이후 가해자의 사과를 받아들인 DJ 소다는 2023년 11월 3일 입장문을 내고 “피의자들을 용서하고 선처하기로 했다”며 고발 취하 소식을 알렸다. DJ 소다는 2024년 1월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100만 엔(약 900만 원)을 기부한 바 있다.
#‘기생충’이 근친물로 재탄생?
일본 AV 산업은 문화적으로 성공한 다양한 소재를 기획물로 만들어내는 시도를 한다. 유명 연예인의 구설수부터 인기 영화, 한국 아이돌을 모티브로 성인비디오를 제작한 적도 있다. 이렇듯 패러디에 ‘진심’인 일본 AV 산업을 두고 국내 누리꾼들은 “별 걸 다 AV로 만든다”면서 이질감을 느끼는 듯하다. 또한 DJ 소다의 사례처럼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이들의 팬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는 부작용도 있다.
2007년 일본 배우 사와지리 에리카는 영화 ‘클로즈드 노트’ 무대 인사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시종일관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베쯔니(별로)” 등 짧은 대답으로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 팬들과 현지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사와지리 에리카는 ‘베쯔니 사건’ 3일 뒤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이며 공식사과를 했지만 미디어를 통해 보여줬던 순수한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에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언론 나카교 스포츠는 한 AV제작사가 베쯔니 사건을 패러디한 AV 발매를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여배우가 “베쯔니”라고 말하는 장면과 이후 무대 뒤에서 징계를 받는 모습, 출연한 CF 등을 재현한 이 작품은 결국 정식으로 발매되지는 못했다. 당시 국내 누리꾼들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AV 배우가 진짜 에리카인 줄 알겠다” “일본은 별 걸 다 AV로 만드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유명 영화와 아이돌 역시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근친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는 각각 ‘너의 밧줄은’과 ‘명기의 아이’로 재탄생했다. 심지어 유명 AV 여배우가 영화 ‘조커’의 주인공 조커 분장을 하고 등장하는 패러디물도 있다.
한국 아이돌인 소녀시대와 카라도 일본 AV의 모티브가 됐다. 2011년 SOD는 ‘미각전설’이라는 이름의 AV를 발매했다. 해당 표지에 등장하는 5명의 여배우들은 소녀시대가 ‘소원을 말해봐’ 활동 당시 입었던 흰색 재킷을 그대로 착용했다. 같은 해 카라를 흉내 낸 AV는 훨씬 더 노골적이다. 표지 제목부터 ‘카리(KARI)’인 데다 카라의 대표곡 ‘미스터’의 엉덩이춤 콘셉트를 따라하기도 했다. 여배우들은 티팬티를 입고 엉덩이를 드러내는 선정적인 포즈를 취한다.
당시 국내 누리꾼들은 “추악한 돈벌이에 불과하다”면서 불편한 반응을 드러냈다. 소녀시대와 카라의 소속사 역시 “대응할 가치도 없다”며 논란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우리도 이전에 에로 비디오들이 문화적으로 성공한 작품을 패러디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면서 그만큼 한류가 일본에 뿌리내렸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도·인질·성폭행’ 없는 게 없네
1979년 1월 26일 발생한 미쓰비시은행 강도 및 인질극 사건을 소재로 삼은 AV도 있다. 미쓰비시은행 강도 사건의 범인 우메카와 아키요시는 엽총으로 무장해 경찰관 2명과 은행원 2명을 사살했다. 이어 은행 여직원들의 옷을 모두 벗긴 뒤 경찰들의 저격을 방어할 수단으로 활용했다. 경찰은 2박 3일의 인질극 끝에 우메카와 아키요시가 지친 틈을 타 그를 사살했다.
2002년 당시 신생 AV 제작사였던 아이에너지가 발매한 AV는 미쓰비시은행 강도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이 작품은 우메카와 아키요시의 기행을 모티브로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AV 역사상 은행을 소재로 만든 것은 처음이었으며,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던 사건을 패러디해 큰 충격을 줬다. AV 업계에서 큰 관심을 받게 된 아이에너지는 창립 5·6·8주년 등을 기념해 은행 강도 콘셉트 AV를 지속적으로 발매했다.
2022년에는 일본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의 BBC는 일본 최대 엔터테인먼트 업체 쟈니스 사무소(현 스마일업)의 창업자 고 쟈니 키타가와가 생전에 소속사 동성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성착취를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성착취 피해를 당한 연습생들은 대부분 미성년자였으며, 1950년대부터 이러한 범행이 이어져 온 것으로 밝혀졌으며 피해자 규모는 수백 명에 이른다.
2월 13일 발매된 한 AV는 ‘쟈니스 성착취 파문’을 패러디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배우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등장하는데, 생전 거의 유일하게 남긴 사진 속 쟈니 키타가와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연 여배우가 아이돌 데뷔를 위해 중장년 남성들의 성폭행을 감내하는 것이 주된 스토리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은 여배우가 공식 석상에서 눈물을 흘리는 데 이를 두고 사건을 폭로한 당사자들을 오마주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일본 AV업계에서 언급조차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바키 사건’은 패러디가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2004년 당시 잘나갔던 AV 제작사 바키는 스너프 시리즈를 찍기 위해 신인 여성 AV 배우에게 거액의 출연료를 제안해 계약서에 사인을 받는다. 그런데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갑자기 옆방에서 대기 중이던 수십 명의 남성들이 순식간에 몰려든다. 만신창이가 된 여성 배우를 길가에 버리는 장면으로 바키 사의 스너프 필름은 마무리된다.
매우 충격적이고 혐오스러운 영상이지만 이를 소비하는 남성들은 당연히 이 모든 상황이 연출된 것으로 인식했다. 그렇게 바키 사의 스너프 시리즈는 사실적인 영상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당시 바키 사의 스너프 시리즈에 출연해 하반신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한 AV 여배우가 자신이 당한 일을 모두 폭로했고, 바로 다른 피해 여배우들이 동참하면서 그동안 바키 사에서 벌어진 일들이 세간에 알려졌다. 결국 바키 사 대표 쿠리야마 류는 징역 18년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2024년 2월에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의미를 담은 패러디도 있다. 2016년 AV 제작사 히비노가 발매한 한 AV는 ‘마루타’로 유명한 731부대의 생체실험 등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생체실험 장면을 목격한 간호사는 731부대원과 실험을 주관한 박사 등을 유혹해 이들을 독살한다. 계획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듯한 표정의 여배우의 모습이 지나가고 일본군의 잔혹한 ‘마루타’ 실험에 관한 비판이 내레이션으로 나오며 마무리된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