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내세운 사기 피해액 1조원 이상 추정…네이버·구글 등 허위광고 필터링 기능 미흡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의 말이다. 최근 유명인을 사칭한 사기 범죄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을 타고 횡행하고 있다. 사기꾼들은 딥페이크, 합성 등을 이용해 연예인, 유명인, 경제 전문가 등을 사칭해 투자를 권유하는 영상을 만들어 광고로 뿌린다. 이 영상이나 게시물을 이용해 한 명만 걸리면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까지 뜯어낸다.
최근 유명인 사칭 범죄 피해가 크게 늘면서 사칭을 당한 유명인이 직접 해결에 나섰다. 3월 22일 ‘유명인 사칭 온라인 피싱 범죄 해결을 위한 모임(유사모)’는 프레스센터에서 사칭 범죄 해결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명 강사 김미경 씨가 중심이 됐다고 알려진 이날 모임에는 개그우먼 송은이, 개그맨 황현희, 투자 전도사로 알려진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등이 참석했다. 회견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성명서에 동참의 뜻을 밝힌 유명인은 국민 MC 유재석 씨를 비롯해 이날까지 137명에 달했다.
대표로 성명서를 낭독한 김미경 강사는 “최첨단 테크 기술을 가진 세계 최고의 플랫폼 기업들은 현재 범죄 광고를 사전에 필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지금 시스템에서는 누구나 돈을 쓰면 광고를 할 수 있다”면서 “현재 온라인 플랫폼에서 사칭 피싱 범죄를 당장 멈추게 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강국의 충격적인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미경 강사는 “온라인 플랫폼은 현재 광고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유명인들은 사칭 피해를 본 피해자임에도 방조하고 있다는 오해와 질타까지 받고 있다. 이들은 “아무리 ‘나는 투자 권유를 안 한다’ 말해도 소용이 없다. 나 때문에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이 늘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 강사는 “여러 차례 플랫폼에 신고해 계정을 1개 지워도 다음 날 10개의 사기 계정이 새로 생겨난다”며 “명예 실추도 억울한 일이지만, 유명인을 사칭한 온라인 피싱 범죄로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강조했다.
김 강사 말대로 유튜브 운영사 구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운영사 메타 등은 사칭 광고 사기를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광고를 애초에 필터링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신고해도 ‘규정 위반이 아니라 삭제할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현희 씨는 “사칭 범죄를 당해서 신고를 해도 내가 나라는 걸 입증하는 과정도 복잡하고, 어렵게 신고가 통과돼 하나를 지우면 다음 날에는 10개로 불어나 있다”고 토로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유명인 사칭 사기를 포함한 투자 리딩방의 불법 행위 피해 건수는 1000건 이상, 피해액은 1200억 원대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이날 회견에 동석한 한상준 변호사는 실제 피해자들의 피해액 합계가 1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사람도 많은 데다, 피해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유명인 사칭 사기 방법이나 사기꾼이 쓰는 SNS 종류는 여러 가지다.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당한 피해자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김미경 씨, 황현희 씨가 ‘직접 투자 강의를 하겠다’고 권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 ‘자산 축적을 실현할 수 있다’며 주식 투자를 권하는 광고도 눈에 띈다. 사칭 범죄를 잘 모르는 사람은 ‘유명인이 직접 권하는 만큼 믿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문의한다. 그때부터 덫에 걸려든 셈이다.
그렇게 걸려든 뒤에는 일반적인 리딩 사기, 보이스피싱 투자 사기 등과 결이 같다. 일반적으로 광고를 본 일반인이 문의를 하면 ‘유명인은 바쁘시니 제가 상대하겠다’며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보통 이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네이버 밴드, 라인 등에 초대한다. 채팅방에 있는 인물들은 모두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가짜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명인이 직접 찍어준 픽이 맞다’, ‘추천대로 투자했더니 큰돈을 벌었다’ 등의 말을 한다. 이 말에 그들 계좌로 돈을 넣으면 다시는 찾기 어려워진다.
한상준 변호사는 최근 사칭 범죄가 너무 많아져 사기 규모가 조 단위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한 변호사는 “최근 전체 상담 건수 2건 중 1건이 유명인 사칭 사기 범죄다. 대체로 일반인 기준으로 피해액이 매우 큰 경우가 많고, 사기 건수도 폭증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피해액이 큰 이유는 유명인을 신뢰하는 심리가 가장 큰 것으로 전해진다. 피해자들은 ‘설마 유명인이 속이겠어’라는 마음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최근 사기 방법 가운데는 딥페이크를 이용한 사례도 있었다. 유튜브 광고 ‘배터리 아저씨’로 유명한 박순혁 전 이사가 ‘배터리 혁명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킨다. 이 2개 주식은 반드시 사라’는 영상을 뿌렸다. 여기에 유명 연예인 조인성, 송혜교가 박순혁 작가를 지지하는 영상도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조인성, 송혜교가 직접 지지한다고 언급하는 곳인데, 설마 가짜일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상은 딥페이크로, 목소리도 변조해 진짜처럼 만든 가짜 영상이다. 아직은 영상 생성 기술력이 높지 않아 입 모양 등에서 어색함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훨씬 더 정교해질 텐데 그때는 걸러내기 어려워져 더 많은 사람이 피해 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사모의 피해 호소 이후 조금씩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먼저 정부는 3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불법사금융 척결 범정부 실무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유명인 사칭 광고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국무조정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관계자가 참석했다.
정부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온라인 불법 광고 차단 조치를 하고, 관계기관 협조 체계를 공고화해 불법 행위를 철저히 적발·단속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경찰청은 특별 단속을 올해에도 강화하고, 악질적·조직적 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국무조정실은 전했다. 정부는 사기 조직을 범죄단체조직죄 및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적용해 엄정 단속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네이버와 구글도 단속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3월 26일 네이버는 고객센터 홈페이지 등에 유명인 사칭 광고와 관련한 피해를 신고할 수 있는 창구를 신속히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2023년 12월에는 네이버 밴드 서비스 내 신고 사유에 ‘사칭’을 추가하고, 사칭 관련 징계 및 고지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내부 시스템도 고도화했다.
네이버가 신고 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유사모 측에서는 네이버 정책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사모 관계자는 “네이버는 권리침해센터에 접수하면 24시간 안에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고 안내하는데, 낮에 신고해도 2시간 이상 걸리고, 6시 이후에는 아예 처리가 안되는 것으로 보아 충분한 인력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심각한 명예훼손이나 사칭 관련 내용이 올라와도 저녁 6시 넘어서는 삭제되지 않고 다음날 아침 9시부터 삭제된다. 글 게시 중단 판단을 받는데도 최소 2시간 이상이 걸려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우려된다”면서 “권리보호센터의 경우 특정 아이디가 아무리 반복해서 명예훼손 사칭글을 올려도 단지 게시 중단만 되고 아이디에 대한 이용 정지 조치를 하지 않는다. 경찰서 처분결과, 방통위 심의 결과를 가져오라는데 수없이 많은 가짜 계정에 그렇게 대응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3월 27일 구글은 구글 플랫폼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2023 광고 안전 보고서(Ads Safety Report)’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속임수 및 사기로부터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공개했다. 구글은 55억 건 이상의 정책 위반 광고를 삭제하거나 차단했다. 이 가운데 기만적이거나 사칭 사기성 광고가 약 2억 건 이상에 달했다. 69억 개 광고를 제한된 이용자에게만 노출되도록 조치했으며, 악의적으로 정책을 위반하는 1270만 개 광고주 계정을 차단했다고 한다. 이는 2022년보다 2배 증가한 수치다. 다만 구글 특성상 국내 수치만 따로 알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방지 노력과 함께 수사와 처벌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명인 사칭 사기에 당한 한 피해자는 “은퇴자금을 모두 잃어 실의에 빠져 우울증까지 겪고 있다. 심각한 범죄로 규정해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면서 “이들이 다시는 활동하지 못하도록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