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코인값 11% 비싸, 차익 노린 우회 거래 급증…가상자산 카드 매수 위법 소지, 사기 피해 속출 ‘주의’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 나가 있는 A 씨의 말이다. 3월 20일 A 씨가 보여준 한인회 커뮤니티에는 ‘현지 통화 현금 구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빼곡했다. 현지 통화로 받은 돈을 원화로 바꾸거나, 현지 통화가 필요한 사람들은 게시판에서 만나 수수료 없이 거래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렇게 구하는 사람이 많은 건 이례적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현금을 원했던 건 김치 프리미엄(김프) 때문이다.
한국 프리미엄을 뜻하는 김프는 국내 코인 가격이 해외 코인 가격보다 높게 거래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김프가 발생하는 이유는 비트코인 급상승으로 인한 국내 투자 수요에 비해 해외 가상자산이 들어올 길이 막혀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사람들이 웃돈을 주고서라도 코인 투자에 나서면서 프리미엄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국내 거주자가 해외 거래소에 직접 송금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코인을 사 오는 것에도 어려움이 많다.
이렇게 가상자산 거래소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해 이익을 얻는 것을 ‘재정거래(Arbitrage)’라고 한다. 가상자산은 재정거래를 하기 매우 수월한 시장이다. 가상자산 특성상 클릭 몇 번이면 시장을 오갈 수 있고, 인증이 된 거래소의 경우 환전도 매우 쉽기 때문이다.
김프는 3월 17일 한때 약 11.5%에 달했다. 해외에서 100원어치 비트코인이 국내로 들어오면 111원이 되는 셈이다. 국내 시장은 대부분 김프가 발생한 상태로 유지되지만, 3월 중순 발생한 김프는 2021년 4월 이후 최고치 상황이었다. 이번 김프는 3월 14일부터 3월 24일까지 약 10일 동안 7% 이상 유지되다가 3월 29일 현재 5.7% 정도 발생하고 있다. 이 10일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은 김프를 이용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해외 한인 커뮤니티가 바빴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해외에 거주할 경우 해당 국가 은행 계좌가 있기 때문에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와 연결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인인 만큼 한국 거래소도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이 둘을 연결하면 재정거래를 말 그대로 마우스 ‘딸깍’만 하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할 수 있다. 앉아서 차익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해외 거주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구조로 차익을 챙겼다. 먼저 현금을 현지 은행에 입금하고, 이 돈을 해외 계좌와 연결된 바이낸스, 바이비트 같은 글로벌 거래소에 입금한 뒤 가상자산을 구매한다. 이렇게 구매한 가상자산을 업비트, 빗썸 같은 자신의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로 보낸다. 이때 대부분 빠른 전송을 위해 테더나 리플 같은 가상자산을 선택한다. 국내에 가상자산을 매도하면서 약 10% 차익을 챙기고, 원화를 출금한다.
이렇게 10% 불어난 돈을 다시 거래에 이용하려고 할 때 걸림돌이 발생하는 지역도 있다. 일부 국가는 온라인 뱅킹 거래가 한국만큼 발달해 있지 않다 보니, 현지 은행에 현금으로 다시 입금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김프에 뛰어든 한국인들은 거래소에서 환전한 돈을 곧바로 현지 은행으로 옮길 수 없다 보니, 현금을 구하기 위해 한인 커뮤니티를 찾게 된다. 특히 재정거래는 단 몇 %로 수익이 결정되다 보니 수수료에 민감해, 수수료가 없는 한인 커뮤니티를 찾게 된다.
앞서 해외 주재원 A 씨는 김프가 최소한 7% 이상이 돼야 이런 방법을 할 만하다고 전했다. A 씨는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은행 수수료, 환전 수수료 등이 비싼 경우가 있어 최소한 6~7% 김프는 유지돼야 해볼 만하다”면서 “김프가 5% 대로 내려오면서 더 이상 재정거래를 포기했다. 사실 재정거래는 위험부담도 있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적은 돈 때문에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김프를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해외 은행 계좌가 없다 보니 카드를 이용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등에서는 해외 거래소에서 신용카드로 가상자산을 사는 방법 등이 공유됐다.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사는 건 2018년 전후 규제로 인해 대부분 막혔으나 우회하는 새로운 방법이 발굴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카드 구매는 해외 은행 입금보다 수수료가 훨씬 비싸 이익을 얻기가 어렵다. 약 10%에 달하는 김프 정도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할 이득을 얻기 어려운 구조라고 전해진다. ‘변창호 코인사관학교’를 운영하는 변창호 씨는 “재정거래는 문제가 될 부분이 있어 조심해야 하는데, 수백만 원을 그냥 벌 수 있다 보니 너도나도 뛰어드는 것 같다. 재정거래를 하면 안 된다고 권유하는 포스팅을 여러 번 했지만, 소용이 없어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홍진현 법무법인 청림 변호사는 신용카드로 가상자산을 구매하는 행위는 위법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외국환관리법의 경우, 별도 증빙 없이 해외로 송금할 수 있는 한도를 미화 10만 달러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가상자산을 구매해 국내로 송금하는 행위가 외환관리법상 해외 송금행위로 해석될 경우 위 금액을 초과해 가상자산을 송금하는 행위는 외환관리법에 의한 제재를 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홍진현 변호사는 외환관리법이 규정하는 송금 한도 이내에서 신용카드로 가상자산을 구매해도 위법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 변호사는 “현행 법령상 가상자산은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이 결제금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금융투자 상품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이미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에서는 국내 카드사들에 신용카드를 이용한 가상자산 구매를 제한하면서 그 근거로 ‘해외 가상자산 거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내세웠다. 금융당국에서는 신용카드를 이용한 가상자산 구매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으로 해석하고 있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홍 변호사는 “금융위원회에서는 2024년 1월 4일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하면서 명시적으로 신용카드 결제금지 대상에 가상자산을 포함함으로써 위와 같은 입장을 더욱 확고히 하였으므로, 향후 개정된 시행령이 적용된다면 신용카드로 가상자산을 구매하는 행위는 이론의 여지없이 불법행위로 분류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다음에는 위와 같은 거래 행위에 대하여 투자자들의 주의를 요한다”고 덧붙였다.
변창호 씨는 규제 당국이 김프를 단속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해결책을 내줬으면 한다는 의견을 냈다. 변창호 씨는 “사실 가장 중요한 건 김프가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다. 금융당국에서는 단속보다 예방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해 줬으면 한다. 지금과 같이 김프가 발생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우회로를 찾아 재정거래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면서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1곳 거래대금이 코스피 거래대금과 맞먹을 정도로 커졌다. 한국은행에서 환율 방어하듯, 규제 당국에서 직접 재정거래를 하는 팀을 만들어 김프 차익을 국가에서 환수하는 게 낫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일부 사기꾼이 재정거래, 김치 프리미엄을 사기 소재로 써 여러 사람 돈을 뜯어낸 경우도 있다. 최근 사기 피해 중에서는 ‘재정거래로 쉽게 돈 벌 수 있다’고 홍보해 투자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낸 뒤 잠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재정거래 자체도 불법인 데다, 누군가 돈을 받아 재정거래 해주는 건 일반적인 투자 회사가 아닌 사기 수법일 가능성이 거의 전부라며 주의를 요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