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후 부실 우려 사업장 구조조정 가능성…중소 건설사 유동성 확보가 생존 관건 전망
#미분양 주택도 증가세
최근 부동산 PF 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에 따르면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22년 말 130조 3000억 원에서 2023년 135조 6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시행사들은 분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행사가 분양에 실패하면 PF 대출 상환이 어려워진다. 이런 가운데 PF 대출 만기 시점이 4월에 몰려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4월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다.
PF 계약은 시행사가 자금을 차입하는 과정에서 시공사가 보증을 서는 것이다. 시행사가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해당 차입금은 시공사에 넘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시공사로서도 막대한 차입금 상환은 쉽지 않다. 실제 태영건설처럼 끝내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해 워크아웃에 들어간 사례도 있다. 시행사나 시공사가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대출을 해준 금융사도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2022년 하반기 이후 분양 경기가 침체기에 진입하면서 착공조차 하지 못하는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다.
건설사들은 이미 위험 구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신용평가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신용평가 유효등급을 보유한 20개 건설사의 총 PF 보증금액은 2022년 말 25조 9000억 원에서 2023년 말 30조 원으로 증가했다. 미분양 주택도 증가세에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에 따르면 미분양 주택은 지난 1월 말 6만 3755호에서 지난 2월 말 6만 4874호로 1.76% 늘어났고, 같은 기간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1만 1363호에서 1만 1876호로 4.44% 증가했다.
한국신용평가는 각 사업장별로 위험도를 분류했다. 착공된 사업장 중 분양률 75% 이상이면 위험도를 ‘낮음’, 50~75%는 ‘보통’, 50% 미만은 ‘높음’으로 각각 구분했다. 미착공 사업장의 경우 서울·수도권 지역은 위험도 ‘보통’으로 나머지는 ‘높음’으로 평가했다. 다만 정비 사업은 위험도를 ‘낮음’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한국신용평가가 측정한 PF 보증금액 30조 원 중 약 44%에 달하는 11조 7000억 원의 위험도가 ‘높음’으로 나타났다. 위험도 ‘보통’은 13%인 3조 6000억 원, ‘낮음’은 43%인 11조 6000억 원이었다.
한국신용평가는 “분양경기 침체와 과중한 PF 대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관련 손실을 인식하는 업체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부실이 전이되면서 다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고 또 다른 부실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2024년 내 본격적인 분양 경기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고금리와 냉각된 투자심리 등 건설사에 비우호적인 조달 여건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3월 2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3개월 단위로(9월, 1월, 4월 위기설 등) 위기설이 도는 이유는 단기 PF가 3개월 단위로 만기가 연장되고 있고, 금액이 크게 축소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번에도 4월에 만기가 많이 몰려있기에 4월 위기설이 나오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위기설 일축하지만…
정부는 4월 위기설을 일축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3월 22일 “그간의 건전성 강화 조치 등으로 금융회사가 PF 부실에 대한 충분한 손실 흡수 및 리스크관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저축은행의 PF 대출 연체율이 다소 상승했지만 자본비율이 규제비율을 크게 상회하는 등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어 PF 대출 부실로 인한 위험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3월 27일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4월 위기설은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라며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자본 확충 등을 통해 손실 흡수 능력을 지속적으로 제고해나가고, PF 재구조화, 채무 재조정 등을 통해 건전성 관리를 지속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PF 대출의 연체율은 2022년 말 1.19%에서 2023년 말 2.70%로 1.51%포인트(p) 상승했다. 2021년 말 연체율은 0.37%에 불과했다. PF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난 셈이다. 금감원은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현 분위기에서는 연체율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제2금융권은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 저축은행의 PF 연체율은 2022년 말 2.05%에서 2023년 말 6.94%로 4.89%p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시중은행의 연체율이 0.01%에서 0.35%로, 증권사의 연체율이 10.38%에서 13.73%로 각각 0.34%p, 3.35%p 상승했다. 저축은행의 연체율이 다른 금융권에 비해 크게 상승하고 있는 셈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전국 79개 저축은행은 지난해 총 5559억 원의 순손실을 거뒀다.
금융권 및 건설업계에서는 4월 위기설에 대해 다소 과장된 측면은 있을지언정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건설사의 신용도와 신용보강 기관 등을 고려할 때 현재의 위험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겪었던 건설업 불황과 견줄 만한 수준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부동산 경기 침체,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이자율 상승 지속 등으로 인해 건설사의 수익성이 계속 악화되면 건설사의 위험은 현재보다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의 위기가 심각한 부문은 부동산 PF의 규모가 과거에 비해 훨씬 크다는 점”이라며 “지난 몇 년간 부동산 PF의 금융 참여자가 다양해졌고, 자본시장을 통한 직접금융 방식도 확대되면서 부실이 전이될 수 있는 경로가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해 선제적 대응이 쉽지 않아졌다”고 설명했다.
#건설사들 유동성 확보에 집중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지원 및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는 그간 유동성 지원에 초점을 맞춰왔다. 국토부는 지난 3월 28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유 토지를 역경매 방식으로 매입해 유동성을 지원할 것”이라며 “상황이 어려운 사업장을 공공지원 민간임대리츠가 인수해 안정적인 사업 추진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지난 3월 27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주택금융공사의 PF 사업자보증 공급을 기존 25조 원에서 30조 원으로 5조 원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비 주택사업장에 대해서도 4조 원 규모의 PF 보증을 연내 도입할 예정이다. 이 밖에 시장안정프로그램 등 현재 가동 중인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지원 강화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장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춘섭 경제수석은 “정상 사업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은 재구조화 등을 통해 정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도 3월 28일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정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상 사업장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지속하는 가운데 부실 우려 사업장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건설업계에서는 4·10 총선 이후로 정부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성이 없는 사업장이 경매로 넘어가면 PF 대출 보증을 선 시공사의 손실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각 건설사들은 이를 대비해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일례로 롯데건설은 지난 3월 2조 8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재무 안전성을 강화했다. 신세계건설은 올해 들어 사모사채 발행 및 레저 부문 매각을 추진 중이다.
한국신용평가는 보고서를 통해 “계열사의 재무적 지원이나 자산 매각 등 자구책을 통한 유동성 확충과 재무구조 개선이 실현될 경우 신용도 저하 폭이나 속도를 완화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PF 우발채무와 지방 미분양 리스크가 단기간 내 해결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별 건설사의 자구안 또는 계열사 차원의 지원을 통한 유동성 확충과 재무구조 개선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실현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대기업 계열 건설사와 달리 중소 건설사들은 계열사의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중소 건설사들은 유동성 확보가 생존 여부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김현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추후 부동산 경기 개선 이후에도 건설사들의 수익성 개선 시점은 지연될 수 있다”며 “신용등급 BBB급에 대해서는 유동성 대응능력이 주요 모니터링 요인”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