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단독 과반 성공했지만 주요 접전지서 패배…조국 비명계 구심점 될지 주목, 최대 변수는 사법리스크
#이기고도 웃지 못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과 비례 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이번 총선에서 총 175석을 획득했다. 민주당은 지역구에서만 161석을 확보하면서 목표로 내세웠던 과반(151석 이상) 의석을 달성했다. 여기에 조국혁신당(12석) 개혁신당(3석) 새로운미래(1석) 진보당(1석)까지 더하면 ‘반윤석열’을 기치로 한 범야권이 192석에 달한다. 개헌과 대통령 탄핵에 필요한 200석에 불과 8석 부족하다.
이번 총선을 진두지휘한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권에 재도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변방의 장수’였던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 출마하고 당권을 잡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당 안팎에서 이 대표 거취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한 비명계 의원들이 공천에 반발하며 탈당하는 등 리더십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당을 ‘친명 체제’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친명계는 명실상부 당 최대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일각에선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공천 내홍이 없었다면 총선에서 훨씬 더 큰 격차로 이겼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특히 선거 막판 ‘친명계’ 양문석 김준혁 후보 논란 인해 격차가 줄어들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두고 비판이 나온다. 두 후보 지역구는 각각 전해철 박광온 의원이 3선을 지낸 곳이자 민주당 텃밭이다. 친명계 후보들이 비명계 현역 의원을 밀어내고 공천을 받은 것이다.
정치권에선 양문석 김준혁 후보를 둘러싼 논란을 접전지 패배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4월 11일 이해찬 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은 “말도 하나하나 조심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말을 함부로 하거나 겸손하지 않으면 깨어있는 국민들은 용납하지 않는다”며 “이번 선거 과정에서 그로 인해서 우리가 꽤 많이 의석을 잃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후보 논란은 부산·울산·경남(부울경·PK) 판세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당초 민주당은 PK에서 두 자릿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6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4월 12일 김경국 정치평론가는 BBS라디오에서 “양문석 김준혁 후보 파동이 장기화되면서 PK 유권자들의 반감을 산 측면이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가 현역 의원을 사실상 ‘컷오프’(공천배제)하며 영입 인재를 전략공천한 ‘동작을’ ‘마포갑’ ‘도봉갑’에서도 수성에 실패했다. 이 대표는 총 8차례 동작을을 찾아 지원 사격할 정도로 화력을 쏟아 부었으나, 류삼영 민주당 후보는 낙선했다. 마포갑은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 4선을, 그의 부친 노승환 전 의원이 5선을 지낸 곳으로 민주당 텃밭이다. 도봉갑도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의장과 그의 아내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이 총 6선을 한 텃밭이다. 이지은(마포갑) 안귀령(도봉갑) 후보는 각각 599표, 1098표 차로 낙선했다.
도봉갑에서 승리한 김재섭 국민의힘 당선자는 4월 12일 KBS라디오 ‘전종철의 전격시사’에서 “민주당이 도봉구를 너무 우습게 봤다는 생각을 주민들께서 많이 하셨다”며 “이재명 대표가 ‘여기는 우리가 계속 이겼던 지역이니까 편하게 내도 이길 수 있겠구나’라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조국, 야권 대선주자 급부상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캐스팅보트를 쥐며 단숨에 야권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긴 했지만, 법안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 권한과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강제 종료를 위해선 조국혁신당 의석이 필요하다.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 운영에서도 조국혁신당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조국혁신당은 대여 투쟁 둘러싸고 민주당과 선명성 싸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4월 11일 조국 대표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총선 당선인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여 의혹 등을 받는 김건희 여사의 조사를 촉구했다. 조 대표는 “검찰이 국민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22대 국회 개원 즉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종합 특검법’을 민주당과 협의해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명계가 조국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에 나설지 관심이 집중된다. 조국혁신당이 교섭단체(20석)를 구성하기 위해선 8석이 필요하다. 진보당 3석, 새진보연합 2석을 합쳐도 3석이 부족한 상황이다. 조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만큼 친문계로 분류된다. 조 대표가 친문계를 비롯한 비명계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민주당 내부는 물론 야권 전체가 당분간 이재명-조국 파워게임 발발 여부에 숨을 죽일 것으로 보인다.
비명계가 조국혁신당과 손을 잡을 명분은 충분하다. 조국혁신당은 전북(45.43%) 전남(43.97%) 광주(47.72%) 등 민주당 전통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 비례대표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호남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계 은퇴는 물론이고 대선에도 불출마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그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이재명 대표도 호남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대선 재도전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조국혁신당은 PK에서도 더불어민주연합과 지지율 1~2%포인트(p) 차이로 야권 선두를 다퉜다.
한 야권 관계자는 “조국 대표가 친문계를 비롯한 비명계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호남에서 득표율 1위를 차지한 조국 대표가 이재명 대표의 차기 대선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재명 조국 대표 모두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어서 차기 대선을 완주할 수 있을진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사건 등 여러 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조국 대표의 경우 자녀 입시 비리 등 혐의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2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확정되면 조 대표는 의원직을 상실한다. 피선거권 역시 5년간 박탈돼 사면·복권되지 않는 한 2027년 3월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다.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분기점으로 꼽힌다. 2023년 12월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표 비중을 현행 ‘60 대 1’에서 ‘20 대 1’ 미만으로 줄였다. 대의원 권한을 대폭 줄이고, 이 대표 지지 성향을 보이는 권리당원 힘을 키워줬다. 이를 두고 비명계에선 이 대표가 총선에 이어 8월 전당대회서도 ‘친명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아니냐며 거세게 반발한 바 있다.
정가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2016년 20대 총선을 승리로 이끈 뒤 이듬해 대권 재도전에 성공한 ‘문재인의 길’을 따를 수 있다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분당 사태’와 ‘국민의당 돌풍’ 속에서도 123석을 얻으며 제1당으로 올라서는 대역전극에 성공했다. 이후 당권에 도전하지 않고 ‘친문’ 지도부 체제를 탄생시켰고, 2017년 대선에서 당선되는 데 성공했다.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를 물려줄 친명계 인사로는 우원식(5선) 정청래(4선) 박찬대(3선) 의원 등이 거론된다. 비명계에선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 공천 컷오프(공천 배제) 후에도 선당후사를 결정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박용진 의원 등이 오르내린다. 당권을 둘러싸고 비명계 인사들과 조국혁신당이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재명 대표의 재출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낙연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서 지지도 선두 자리를 줄곧 지키며 ‘어대후’(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낙연)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180석 확보에 핵심 역할을 한 뒤 고심 끝에 당권까지 도전하며 당대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낙연 대세론 장기화는 피로감으로 이어졌고, 결국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표에게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주게 됐다. 차기 대선까지 3년이 남은 상황에서 대표를 연임한다면 피로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4월 11일 전현희 민주당 서울 중·성동갑 당선인은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 다시 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여러 차례 피력한 걸로 알고 있다”며 “꼭 당대표가 아니라도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