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기구 관련해 덴마크 ETC에 손해배상 청구…실적 상승세 하만, 최근 IP 관리에도 적극적
#영구 판매 금지 가처분까지 청구
하만 프로페셔널(Harman Professional Kft)과 하만 프로페셔널의 덴마크 법인(Harman Professional Denmark ApS)이 덴마크 회사인 ETC와 ETC의 미국 현지법인 등을 특허 침해 혐의로 4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 중앙 지방법원에 제소했다.
하만 프로페셔널은 하만의 사업부 중 하나로 △대규모 라이브 공연장 △영화관 △오디오 제작 △방송 등 엔터테인먼트·기업 시장을 위한 오디오·조명·비디오 제품 등을 제작한다. 이번 분쟁 특허(US7789543)는 하만 프로페셔널 솔루션 부문의 주력 브랜드 중 하나인 ‘마틴(Marin)’의 맥(MAC)라인 제품에 구현된 조명 기구 관련 특허다.
특허의 주요 내용은 최대 50kg에 달하는 무대용 조명 기구의 운송과 설치 과정에서 운반자의 부담을 덜고 제품의 파손 위험을 줄이기 위해 'U'자형 손잡이를 달았다는 점이다. 해당 조명 기구들이 브로드웨이 공연, 전국 콘서트 투어 등 각종 무대에서 두루 사용되면서 하만은 라이선싱을 통해서도 상당한 로열티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장에 따르면 하만은 ETC가 유사한 조명 기구인 르르베 스폿(Relevé Spot)을 개발해 판매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무대 조명 기구의 평균 교체 주기는 5년 이상으로 해당 기간 동안 조명뿐만 아니라 호환 가능한 부품의 매출까지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하만은 2022년 7월 7일과 9월 1일 ETC 측에 특허 침해 사실을 고지했다. ETC가 이와 관련해 2022년 9월 27일 회신했으나 라이선싱 없이 제품을 계속 판매하자 하만은 ETC가 특허 침해 사실을 인지한 채로도 고의적으로 침해 행위를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하만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영구 판매 금지 가처분까지 청구한 상태다. 판매 금지 가처분이 인용되지 않을 경우 강제로 로열티를 부과해달라는 요청까지 덧붙였다.
하만은 최근 IP 관리에 부쩍 힘을 쓰고 있다. 하만은 지난해 5월에도 미국의 오디오 명가로 꼽히는 QSC를 소리 증폭 기술과 관련한 특허침해 혐의로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지방법원에 제소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경쟁사인 미국의 놀스(Knowles Electronics)로부터 잡음 억제와 관련한 오디오 관련 특허 107건을 매입하기도 했다.
IP 업계 한 관계자는 “IP 관리를 잘하면 매출을 방어할 수 있고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부쩍 관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라며 “삼성전자 본사가 특허 분쟁으로 골머리를 많이 앓은 만큼 해당 자회사의 IP 관리와 수익성 제고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만, 삼성전자의 ‘효자’로 자리매김
하만은 미국의 전장(자동차전기전자장비)·오디오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 커넥티드카(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자동차) 제품 및 솔루션을 개발하는 전장과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라이프스타일 오디오, 프로페셔널 솔루션 부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1956년에 스피커를 판매하던 음향업체로 출발한 하만은 PC용, 카 오디오 부문까지 영역을 넓힌 후 2000년대부터 인포테인먼트 등 전장부문에 뛰어든다. 하만은 2017년 3월 삼성전자에 80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9조 3400억 원)에 인수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주도한 첫 번째 M&A로도 주목을 받았다.
야심찬 인수였으나 한동안 실적이 받쳐주지 못했다. 2016년 6800억 원을 기록했던 하만의 영업이익은 2017년 574억 원으로 92%가량 추락했다. 2020년까지 영업이익률은 0~3% 수준에 그쳤다. 그런데 2022년부터 영업이익률이 개선되면서 하만을 향한 평가가 뒤바뀌는 추세다.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5990억 원, 88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하만은 2023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인 1조 1700억 원을 기록하며 본업에서 고전하던 삼성전자의 ‘효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업이 성장하면서 하만은 지난해 11월 헝가리 페치에 신공장을 준공했다. 엔터테인먼트용 조명 기구 브랜드인 마틴의 생산량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전에는 프로페셔널 솔루션과 전장부문이 같은 공장을 공유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양 사업부가 모두 급성장하면서 프로페셔널 솔루션 부문 전용 공장을 새로 지은 것이다.
하만이 이처럼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던 건 사업구조 재편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인수 당시 하만의 자회사 수는 109개에 달했지만 현재는 50개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경영효율화를 목표로 수익이 부진한 계열사들을 통·폐합하거나 청산하는 등 조직을 슬림화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플럭스 소프트 엔지니어링’과 ‘룬’ 등을 인수하는 등 전장용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는 오는 2025년까지 하만의 매출을 200억 달러(약 28조 원)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매출(14조 3900억 원)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다만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고 있어 실적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전장 부문에서 가장 매출이 많이 나오는 만큼 자동차 업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며 “경기가 지속적으로 둔화하고 있고 전방수요도 낮아지는 추세라 향후 경기 회복 과정이 올 때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하만은 전장 디스플레이 등 신규 분야 수주 확대와 홈오디오 등 고성장 제품 대응 강화를 추진하고 차별화된 기술 개발을 통해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할 예정”이라며 “소비자 오디오 및 프로페셔널 오디오 솔루션 시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제공해 신규 고객을 유치하고 브랜드 평판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