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장’ 출신 기사 100단 돌파, 7월 축하회 앞둬…‘행복한 바둑 플랫폼’ 목표 ‘고마루’ 사이트 개설
“현재 저희 도장에는 60명 정도의 인원이 수업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공부하는 학생도 15명 정도 됩니다. 물론 전원 일본인이고 이중 프로를 지망하는 원생은 20명 정도 입니다.”
일본 생활 근황을 묻자 홍맑은샘은 운영하고 있는 바둑도장 이야기로 운을 뗐다.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2019년에 사상 최연소 기록으로 명인 타이틀을 획득했던 시바노 도라마루 9단, 2022년에 일본 최고 타이틀 기성(棋聖)을 획득한 이치리키 료 9단, 일본 여자바둑 최강 후지사와 리나 5단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정상급 기사들이 홍맑은샘이 배출한 제자들이다.
도장 설립 15년째인 올해는 의미 있는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홍도장 출신 프로기사들이 100단을 돌파한 것이다. 7월 15일로 예정하고 있는 100단 돌파 축하회에는 그동안 도장이 배출한 31명의 기사들이 모여 기념 페어 대국, 사인회, 19년 동안의 사진 슬라이드쇼 등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저는 연구생 때부터 제가 승부사 체질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보다 누군가의 꿈을 위해 뒤에서 서포트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느꼈지요. 결정적인 것은 2002년 열린 도쿄 세계아마선수권에서 바둑 보급의 선구자 기쿠치(菊池康郞) 선생을 만난 것이 전환점이 됐습니다. 나도 저런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2004년 당시 국내는 이미 바둑도장이 포화상태였기에 일본에서 꿈을 펼쳐보고자 생각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일본 바둑계에서도 금방 소문이 나서 무명의 한국 출신 기사에게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기사들인 장쉬, 야마시타 게이오, 하네 나오키 9단 등이 앞을 다퉈 자신들의 2세를 맡겼다.
수많은 제자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제자를 묻자 홍맑은샘은 무라카미 요시미를 꼽았다.
“무라카미는 늦게 바둑을 시작했어요. 고1 때 일본 연구생 4조 정도의 실력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학교를 중퇴하더니 앞으로 2년 동안 바둑을 해보고 입단이 안 되면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을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2년간 정말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결국 입단엔 실패했습니다. 그 뒤 그는 검정고시를 치러 고교를 졸업한 후 대학교는 와세다로 갔어요.”
“저는 고민 없이 1년도 재수를 하지 않고 목표대로 가는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요. 바둑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끝까지 해보고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되돌아올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는 지금은 일본의 유명 주류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장래 본인 소유 일본 술 메이커를 갖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의 꿈이 꼭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그는 고마루(GOMARU)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오픈했다. 고마루는 일본어로 바둑을 뜻하는 고(GO)와 한국말 마루(MARU·정상)를 뜻한다고 한다. 바둑의 정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미국의 종합 쇼핑몰 아마존은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는데 저는 고마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바둑에 관한 모든 것이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했습니다.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교실과 선생님들이 검색되고 연결되어 입문과 공부가 가능하고, 각종 대회와 이벤트, 바둑 유학 및 여행이 검색이 되어 예약과 신청이 되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 책 소개와 바둑용품, 외국과의 교류 등을 주선하는 바둑 종합 사이트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아직 초창기지만 동료 프로기사 등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있어 힘이 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묻자 “예를 들어 스기나미 구에 있는 4곳의 학교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일간 각각 담당하는 기사들의 영역을 만듭니다. 그래서 시급 1만 5000엔으로 두 꼭지의 수업을 담당한다면 하루 3만 엔씩 수입을 올릴 수 있습니다. 바둑 보급과 생활의 안정이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발전시켜, 다른 종목처럼 학교별 대항전이나 지역별 대회로 키워갈 수도 있습니다.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제작해 가르치는 입장과 바둑 팬 사이에 서로가 윈윈하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과거 조치훈 9단, 다케미야 마사키 9단, 고바야시 고이치 9단 등을 배출한 기타니 도장에 이어 일본 최고의 바둑도장으로 부상한 홍도장의 원장은 어떤 교육철학을 갖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조금 철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죽음이 있기에 인생이 가치가 있으며 하루하루가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루를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 생각할 수 있도록 여러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오늘이 제 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의 여자 강자 우에노 아사미 5단이 세계대회에서 한국과 중국의 정상급 기사들을 연파하고 나카무라 스미레 3단이 한국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일본바둑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높게 평가했다.
“일본의 젊은 기사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는 것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그동안 일본 신예들은 한국과 중국 기사들에게 실력 차 이상으로 자신감을 잃고 있었거든요. 아사미 5단과 스미레 3단이 열심히 함으로써 동년배와 후배들이 자신들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사미 5단은 한국 유학파가 아니므로 더욱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마루를 통해 전 세계가 바둑으로 연결되는 행복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5월 26일 10회째를 맞는 ‘맑은샘배 어린이 최강전’ 개최를 위해 한국으로 건너올 예정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