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에 중재 집행 반대 의견서 제출…‘GGS가 박삼구 전 회장 배임 혐의 가담’ 주장
#“중재 집행 도덕적으로도 어긋나”
지난 5월 2일(현지시각) 아시아나는 GGK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한 중재 판정 집행 청구 소송과 관련해 법원에 집행을 반대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 따르면 아시아나는 “GGK와의 기내식 계약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불법 행위를 바탕으로 이뤄졌다”라며 “이 계약을 토대로 한 ICC 중재 판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불법 행위에 가담한 GGK가 부당한 이익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아시아나와 GGK의 분쟁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아나는 중국 하이난항공그룹이 대주주인 스위스 기내식 공급업체 게이트고메스위스(Gate Gourmet Switzerland GmbH·GGS)와 합작해 2016년에 GGK를 세웠다. 2016년 12월 아시아나는 GGK에 2018년부터 30년간 기내식 독점 거래권을 1333억 원에 제공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에 따라 아시아나는 2047년까지 GGK에 기내식 가격을 조정해주는 방식으로 매년 정해진 순이익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GGK는 아시아나가 계약서에 따라 보장된 순이익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2019년 6월 ICC에 중재를 신청했다. ICC는 국제 상사분쟁을 해결하는 세계 최대 국제중재기구다. 2021년 2월 ICC는 GGK의 손을 들어줬다. ICC는 아시아나가 계약에 따라 미지급 기내식 대금 등 약 324억 원을 GGK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같은해 4월 ICC는 공급대금 산정기간을 기존 14개월에서 25개월로 변경하면서 중재금액을 424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2021년 6월 아시아나는 ICC 판정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2022년 11월 기각됐다.
아시아나가 ICC 판단에 따른 중재금액을 지급하지 않자 지난 3월 GGK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앙지법에 ICC가 중재 판정한 정산금을 집행하라는 청구를 제기했다. GGK는 ICC 중재 판정에 따라 아시아나의 미지급 기내식 대금과 이자 등 5075만 달러(약 671억 원)를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CC 판정은 강제성이 없다. 기업이 ICC 중재 판정을 자발적으로 따르지 않을 경우 각국 법원에 중재 판정 집행을 청구해야 한다.
아시아나는 ICC 중재 판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나는 GGK와의 기내식 계약이 박삼구 전 회장의 불법 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중재 판정을 집행하면 미국의 공공정책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국제 중재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뉴욕협약에 따르면 공공정책에 반하는 중재는 집행이 거부될 수 있다.
아시아나는 오히려 배임 행위의 피해자라는 입장도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나와 GGK가 맺은 기내식 계약은 박삼구 전 회장의 경영권 방어와 관련이 있는 ‘패키지 계약’이었다. 게이트그룹 내 게이트그룹파이낸셜서비스(GGFS)는 기내식 독점 사업권을 얻는 대가로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가 발행한 1600억 원 상당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20년 만기 무이자로 인수했다. 금호고속은 박 전 회장 등 총수 중심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계열사다. 아시아나에 따르면 이 계약은 박 전 회장과 그룹 전략경영실 임원들이 중심이 돼 비밀리에 진행됐다.
관련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21년 5월 박삼구 전 회장은 계열사 부당지원과 배임,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됐다. 2022년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박 전 회장에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박 전 회장이 아시아나의 기내식 독점 사업권을 GGK에 저가에 매각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금호고속을 부당 지원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이 소송은 현재 2심 진행 중이다.
미국 법원에서 아시아나 주장을 받아들일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앞서 2021년 5월 GGK는 서울남부지방법원에도 ICC 중재 판정 집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 서울남부지법은 GGK의 손을 들어줬다. 아시아나가 항소해 해당 소송은 2심으로 향한 상태다.
한 법무법인 국제중재팀 변호사는 “미국에서 중재 집행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아시아나의 미국 재산이 압류된다. 다만 미국과 한국은 중재를 우호적으로 보는 국가라 거의 중재 집행을 해주려고 한다”라며 “GGK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중재 집행이 늦어지니 대안으로 미국에 소송을 건 듯하다. 일반적으로 한국 기업은 미국에 재산이 많이 없을 수 있다. 미국에서 중재 집행이 돼 일부만 회수가 된다면 한국에서 계속 집행 시도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내식 계약 무효 소송 두고도 다툼
이와 별개로 아시아나는 GGK와 결별을 시도하고 있다. 2022년 1월 GGK를 상대로 인천지방법원에 기내식 공급 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10월 GGS와 GGS 전·현직 대표를 상대로 기내식 사업권 저가 매각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다. 아시아나는 GGS 전·현직 대표가 기내식 사업권 저가 매각 관련 박삼구 전 회장의 배임 혐의에 가담했다고 봤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6월 GGK와 GGS 등은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SICC)에 소송금지구제를 신청했다. 아시아나와 GGS 등의 계약에는 분쟁이 발생할 경우 중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SICC는 국제 상업 분쟁을 다루는 법원이다. 지난해 12월 SICC는 GGK와 GGS 등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지난 3월 아시아나는 항소했다.
GGK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GGK는 아시아나와 거래를 통해 2021년 174억 원, 2022년 517억 원, 2023년 137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순이익 보장 약정에 따라 기내식 대금 지급도 이뤄지고 있다. 아시아나 입장에서도 GGK와 관계를 빨리 끊어야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다만 계약 무효 소송 결론이 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러 소송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 인수를 추진하는 대한항공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당사자들이 소송을 진행 중인 상황이라 대한항공도 현재로서는 지켜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가 자금 여력이 없고 아시아나 입장에서는 굳이 빨리 지급할 이유도 없다”라며 “대한항공의 기업 결합과는 상관없이 (기내식 대금 소송이) 진행될 것 같다. 합병 후 2년간 분리 운영되는 동안 이슈들이 정리될 가능성도 있을 듯하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 아시아나 관계자는 “현재 소송 진행 중인 건에 대해 당사가 언급하기엔 적절하지 않다”고만 답했다. GGK 측에도 연락을 취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