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측 진술이 이 전 부지사 해명 이긴 셈”…최근 검찰 인사 ‘빠른 마무리’ 지시 해석도
#징역 9년 6개월의 의미
쌍방울그룹의 800만 달러 불법 대북송금을 공모하고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1심 재판부는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했다. 2022년 10월 14일 이 전 부지사가 기소된 지 약 1년 8개월 만이다.
이 전 부지사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개인 뇌물 혐의와 대북송금 사건 관여 혐의다. 개인 뇌물 혐의는 2018년 7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쌍방울그룹으로부터 법인카드 및 법인차량 사용을 제공받고, 자신의 측근에게 허위 급여 지급 등의 방법으로 3억 원이 넘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것이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2019년 800만 달러를 북한 측 인사에 전달하게 하고, 이를 대가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대북 방문 및 스마트팜 사업을 진행하려 했다는 것이 검찰이 보는 대북송금 사건의 골자다.
검찰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영철 조선아태위 위원장에게 대신 전달해 줬고, 이 전 부지사는 경기도 측의 입장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김 전 회장과 공모해 거액의 달러를 신고와 허가도 없이 중국으로 밀반출해 금융제재대상자인 조선노동당에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수원지법 형사합의11부(신진우 부장판사) 재판부는 이 가운데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 특가법상 뇌물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모두 9년 6개월을 선고한 것인데 이와 함께 벌금 2억 5000만 원과 3억 2595만 원의 추징도 명했다. 쌍방울그룹 직원으로 하여금 내부 PC 하드디스크를 파쇄 및 교체하도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증거 인멸을 교사했다는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상당한 정치적 경력을 갖춘 고위 공무원으로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유력 정치인과 사기업 간의 유착관계의 단절을 위한 노력이 지속돼 왔음에도 이러한 기대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죄질이 불량하다”고 지적하며 “공적인 지위를 이용해, 사기업을 무리하게 동원했고, 음성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거액의 자금을 무모하게 지급함으로써 외교·안보상 문제를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법조계는 특히 이화영 전 부지사의 뇌물 혐의와 정치자금법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상당수를 유죄로 인정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의미는 ‘뇌물을 건넨 쪽(쌍방울그룹)의 일관된 진술과 증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이화영 전 부지사)의 해명’을 이긴 셈”이라며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유죄를 받았다면, 북한에 간 돈의 대가를 누리려 했던 경기도지사는 수사가 더더욱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한 고등부장판사는 “형사 사건의 경우 증거가 명백하게 있는데 무죄를 유죄로 바꿀 수 없고, 유죄를 무죄로 바꿀 수 없다”며 “특히 뇌물이나 정치자금 관련 사건의 경우 돈의 흐름과 관련된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유무죄 판단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재판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양형인데 이런 예민한 사건은 더 더욱이 양형에서도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공세 주춤, 검찰 수사 본격화
1심 선고를 4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수사했던 수원지검을 상대로 ‘특검’을 제안했던 상황이다. 민주당은 6월 3일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 전반을 특검을 통해 수사하겠다면서 특별검사법을 발의했다. 이화영 전 부지사가 재판 과정에서 민주당이 검찰 수사 과정에 회유·압박 등이 있었다며 의혹을 제기했던 것을 문제 삼아, 검찰 수사팀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특검법을 발의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의 이 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가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비합리적인 변명으로 일관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판사들 사이에선 ‘양형이 센 것은 아니’라는 평이 나온다. 앞선 고등부장판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의 경우 징역 10년부터 시작하는데 정치자금법 제외하고 징역 8년을 선고한 것은 양형에 있어 초범이라는 점을 고려해 준 것 같다”며 “검찰을 상대로 한 의혹 제기가 다소 양형에 반영이 됐을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양형 자체만 보면 감형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잠시 주춤했던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최근 이뤄진 검찰의 고위·중간간부급 인사의 메시지가 ‘이재명 대표 수사를 빠르게 마무리해라’라는 해석도 나온다.
수원지검장으로 ‘이재명 수사’를 이끌고 있는 김유철 검사장은 대표적 ‘공안통’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대검 공안과장, 대검 공공수사부장 등을 역임하며 공안 사건, 선거 사건을 주로 지휘했던 인물이다. 특히 정치인의 뇌물 관련 사건 경험이 많은데, 복잡한 사건들을 무리하게 건드리지 않고 문제의 핵심만 잘 정리한다는 평을 받는다. 실질적으로 수사를 이끌고 있는 서현욱 수원지검 형사6부장 검사(35기)는 유임돼, 1년 더 수사팀을 이끌게 됐다.
김유철 검사장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김유철 지검장은 수사 경험이 많은 공안통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고려할 사안들을 잘 판단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며 “서현욱 부장검사를 유임시킨 것은, 무리하게 수사를 확대하기보다는 지금까지 나온 증거들을 토대로 잘 사건을 마무리하라는 메시지의 인사가 아니겠냐”고 내다봤다.
앞선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 역시 “검찰은 판결문을 받아 ‘유죄를 받은 부분’과 그 증거를 정리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관여 여부를 다시 확인하는 수사를 시작할 것”이라며 “이미 부사장(이화영 부지사)이 유죄가 나온 만큼, 사장(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을 수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비유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