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빼몸 120 목표’ 씹뱉·폭토 공유, 경쟁적 저체중 인증…“무월경증 등 육체·정신 발달에 악영향” 경고
#소금이나 영양제 함께 먹기도
물단식을 하는 이들은 영양분 보충을 위해 일반 물 대신 미네랄워터를 마시거나 소금이나 영양제를 함께 먹기도 한다. 특히 유명 연예인들이 물단식을 통해 짧은 기간에 체중을 감량했다는 글이 공유되면서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2023년 9월 배우 이장우가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소금물과 물로만 3일을 버티는 단식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에도 식욕을 참는 비결을 공유하면서 몸무게를 경쟁적으로 인증하는 글이나 영상들이 잇따른다. 물단식을 인증하는 SNS 이용자들은 대개 공복 유지 시간이 표시된 ‘간단’ 앱을 캡처해 게시글과 함께 올렸다. 간단 앱은 간헐적 단식으로 체중 감량 및 건강관리를 하는 이들을 위한 앱이다.
6월 12일 기준 인스타그램에는 ‘물단식’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이 2000개가 넘게 올라와 있다. X(엑스·옛 트위터)에도 “물단식을 하는데 배고픔보다 어지러움을 참기 힘들다”, “병원에서 림프샘에 문제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물단식을 멈출 수 없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짧게는 사흘, 길게는 열흘 넘게까지도 물단식을 인증하는 글을 볼 수 있다.
한 10대 여성은 한 달 동안 물단식을 통해 운동 없이 66kg에서 49kg으로 감량했다며 관련 노하우를 엑스에 공유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여성은 “‘친구들과 밥을 먹고 들어간다’고 가족들을 속이는 등의 방법으로 음식을 피할 수 있었다”며 “몸무게를 갖고 놀리던 남동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이제는 내가 사람으로 보인다”고 썼다.
물단식은 하나의 다이어트 방식일 뿐이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부 10대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프로아나(프아)’ 문화에 있다. 프로아나는 ‘~을 지지하는’이라는 뜻의 프로(Pro)와 ‘거식증’이라는 뜻의 아노렉시아(Anorexia)를 합친 ‘프로-아노렉시아’(Pro-anorexia)의 줄임말로 무작정 굶거나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등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지나칠 정도로 마른 몸매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로, 키빼몸 125 이상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씹뱉(씹고 뱉기)’ ‘폭토(폭식한 뒤 토하기)’ 등의 방법을 공유하며, 살이 찌는 것에 대해 극도로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뼈말라’는 10대들 사이에서 비하가 아니라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한 10대 여성 엑스 이용자는 “초딩(초등학생) 때부터 먹토(먹고 토하기)했다. 한번 하면 계속 하게 되더라”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SNS는 프로아나 계정들이 극단적인 다이어트 문화를 확산·전파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프로아나’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은 1000개가 넘고, 엑스에도 본인이 프로아나임을 드러내는 글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다수의 프로아나 계정은 ‘트친소(트위터 친구 소개)’ 태그를 통해 다른 프로아나 계정들과 연락을 하며 서로 단식이나 극단적 절식을 독려하는 식으로 운영하는데, 목표 체중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배제하기도 한다.
#"절대 따라하지 말아야"
그러나 이 같은 청소년기의 극단적 다이어트는 무월경증, 골다공증, 섭식장애 등의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고 육체·정신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몸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서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여러 영양소가 필요한데, 물과 영양제만으로 영양 결핍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요 현상도 물단식의 흔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다.
202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섭식장애 진료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간 섭식장애로 진료받은 환자는 모두 5만 1253명이다. 특히 여성(4만 1577명) 비율이 81.1%로 압도적이다. 특히 10대 이하 여성 거식증 환자가 2018년 275명에서 2022년 1874명으로 7배 가까이 늘어 증가폭이 가장 컸다.
키빼몸 120 이상이라는 청소년 다이어터들의 목표치는 표준체중과도 괴리가 크다. 표준체중은 자신의 키에 적당한 체중을 말한다. 여성의 표준체중(kg)은 ‘키(m)×키(m)×21’로 계산한다. 예컨대 키가 165cm인 여성의 표준체중은 1.65(m)×1.65(m)×21이므로, 약 57.17kg이다. 이 경우 키빼몸은 107.83으로 120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모델이나 연예인을 기준 삼아 여성의 경우 키 165cm에 몸무게 45kg(키빼몸 120)을 넘으면 비만으로 인식하는 잘못된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표준체중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건강이 아니라 외모를 이유로 하는 청소년의 다이어트는 권장하지 않고 있다”며 “대표적 다이어트법으로 꼽히는 ‘간헐적 단식’도 16시간 이상은 지양하는데 청소년들이 이를 넘겨 굶을 경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도 “우리 몸은 단백질과 지방 등 여러 영양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네랄워터와 영양제만으로 영양 결핍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프로아나의 목표는 보통 극단적으로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단식 등의 체중 감량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유튜브 채널 ‘일주어터’로 유명한 김주연은 2022년 4월 KBS 2TV ‘빼고파’ 제작발표회에서 “다양한 다이어트를 해본 결과 체중 감량으로는 물단식이 최고였다”며 “하지만 절대 따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나마 건강한 건 정제 탄수화물 끊기였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외모 지상주의가 이 같은 현상의 배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물단식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결국 심리적으로 많은 후유증을 겪게 되는 방법”이라며 “마른 몸을 이상적이라고 보는 문화는 자존감이 낮은 청소년들에게 외모 강박증을 심어줬다. 이러한 강박은 결국 극단적인 다이어트로 이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