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관광·축제 홍보물에도 비난 댓글 폭주…시민 “가해자 욕먹는 건 당연, 밀양 사람으로선 부끄럽고 억울”
당시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경찰과 검찰, 법원 등 사법당국, 이들을 감싸기 급급했던 가해자 가족과 지역 주민들도 비난의 대상에 올라 있다. 가해자 중 한 명이 밀양시 산하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사실도 공개돼 밀양시를 포함한 밀양 지역사회 전체가 국민적 비난 화살을 맞고 있다.
지난 11일 ‘일요신문i’가 경남 밀양시 현지에서 만난 시민들은 당시 사건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밀양시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으로 지역 이미지가 손상된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밀양시립도서관에서 만난 대학생 A 씨(21)는 “사건 당시 두 살이었기 때문에 잘 몰랐다가 이번에 다시 공론화되면서 해당 사건을 알게 됐다”며 “가해자들이 욕먹는 건 당연하다 생각하고 그 사람들이 밀양시 전체 이미지를 망친 것은 밀양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대학생 B 씨(21)는 “요즘 어딜 가나 그 얘기뿐이다. 대학교 커뮤니티에서도 ‘밀양 사람은 배척해야 한다’는 식의 얘기 들으니 기분이 좋진 않다”면서도 “식당 영업을 했다던 가해자도 내가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더라. 미디어의 효과를 이용해서라도 그런 사람들은 망하게 해야 한다”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밀양시청에서 만난 시민 C 씨는 “자녀가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니는데 (나빠진 고향 이미지 때문에) 요즘은 밀양 출신이라고 말을 못하겠다고 하더라”며 허탈해 했다.
밀양시 중앙로 인근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당시 사건을 다시 들춰서 좋을 게 뭐가 있겠나. 20년 만에 다시 회자되니 황당하기도 하다”면서도 “당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해자들이 머리를 들고 잘났다고 살고 있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피해자는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사태의 불똥이 튄 밀양시청 공무원들은 실추된 시 이미지 때문에 야심차게 준비한 관광 축제 콘텐츠 홍보 업무에 실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밀양시는 지난 5월 초 ‘선샤인 밀양 테마파크’를 준공해 여름철 관광객 유입을 노리고 있던 중이었다. 지난 5월 말에는 밀양 영남루와 밀양강변에서 ‘제66회 밀양아리랑대축제’도 열었다.
이들 콘텐츠 홍보를 위해 밀양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에 올린 각종 게시글에는 ‘44명이 저지른 행동 때문에 밀양은 경상도의 수치’ ‘강간의 도시’ ‘무서워서 못 간다’ 등 부정적 댓글이 많게는 수백 개씩 달리고 있다.
밀양시는 현 상황에 대한 안병구 밀양시장 명의의 공식 입장문을 내는 것을 검토했지만 이를 보류하고 상황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다. 밀양시청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뚜렷한 대처 방안이 없고, 가타부타 언급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서 시장 입장문 발표는 보류한 상태”라며 “시 홈페이지나 유튜브, SNS 등을 폐쇄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 그대로 두고 있지만 시정 홍보에 어려움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밀양시 홈페이지에는 밀양시시설관리공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당시 사건 가해자에 대해 인사 조처를 요구하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밀양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기자가 방문한 이날 해당 직원은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공단을 직접 찾았지만 한 관계자로부터 “저희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밀양지역의 혼란은 쉽게 일단락되긴 어려워 보인다. 가해자 신상을 공개한 유튜버들의 행위를 두고 불법성 시비나 피해자 동의 여부 등 각종 사회적 논란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3일 가해자 신상을 공개한 한 유튜브 채널의 관련 영상 4건을 회의 안건에 올려 심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밀양시민은 피해자들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당시 사건을 더 이상 떠올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꺼냈다. 퇴직 경찰이라는 한 70대 남성 밀양시민은 “사건을 다시 공론화시키는 것은 피해자의 상처를 다시 들쑤시는 것밖에 안 된다”며 “돈벌이 등을 위해 다시 이슈화로 키운 유튜버들의 잘못이 크다. 피해자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경남 밀양=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