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채 해병 특검법 등 단독 입법 속도, 국민의힘 장외투쟁으로 맞대응…전대 앞둔 여야 ‘강대강’ 대치 장기화 우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6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상임위원회 18개 중 법제사법위 운영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등을 포함한 11곳 위원장을 단독 선출했다. 국민의힘은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몫의 7개 위원장을 선출하지 않고 의사일정을 계속 거부할 경우 18개 상임위를 모두 야당 소속 위원장으로 채우겠다며 압박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역시 6월 1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상임위원장 배분은 1당(민주당) 11개, 2당(국민의힘) 7개로 나누는 것이 합당하다”면서도 “6월 임시국회 일정을 (차질 없이) 지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시한 내 원 구성’을 우선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위원장이 선출된 11곳 상임위는 야당 중심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지난 21대 국회에서 최종 폐기된 각종 법안·특검법이 속전속결로 재추진되고 있다. ‘채 해병 특검법’은 법사위 첫 전체회의에서 곧바로 상정, 소위에서 심사가 진행 중이다. 과방위는 ‘방송3법’을 의결해 법사위로 넘겼다.
법사위는 업무보고 자리에서 오동운 공수처장에 윤 대통령의 채 해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최달영 감사원 사무총장에 권익위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종결 처리 문제를 추궁하며 윤 대통령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독주에 반발하는 차원에서 ‘상임위 보이콧’에 나섰다. 대신 장외에서 재정세제개편·노동·저출생대응·에너지 등 자체 특별위원회를 가동해 당정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당 지도부는 우원식 의장의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과 상임위 임의 배정 무효를 확인하겠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정부 및 기관 주요 관계자들은 국회 불출석으로 민주당 공세를 피해갔다. 법사위 첫 업무보고 자리에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불참했다. 과방위 회의에도 이종호 과기부 장관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출석하지 않아 현안질의가 무산됐다. 법사위 제1소위의 채 해병 특검법 심사 때는 주무부처인 법무부의 심우정 차관이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이재명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정부부처에 국회 업무보고를 거부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는 얘기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관계자들이 국회 상임위에 출석하더라도 원론적 답변을 일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채 해병 사건 수사외압 관련 윤 대통령 수사 가능성에 대해 “범죄 혐의가 있으면 누구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사청문회 때도 말했다”고 답했다. 김 여사 명품백 수수 관련소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반론으로 수사 단서가 포착됐다든지 소환 필요성이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원론적 입장을 반복했다.
최달영 감사원 사무총장 역시 민주당이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종결 처리 관련 권익위 직무감사’를 주장하자 “일반론적으로 권익위는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라면서도 “현재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직무 감사의 필요성이 있는지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 측에서 요구하는 자료 제출도 정부기관이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기관 관계자들의 이러한 태도에 민주당은 사법조치까지 언급하며 강공에 나섰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국무위원이) 불출석하거나 불출석할 것으로 예상될 때는 모두 증인으로 의결해 증인 감정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도록 절차를 밟겠다”며 “필요할 경우 동행명령장을 발부해 강제 구인하겠다”고 경고했다.
여야가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모두 부담감은 안고 있다. 민주당은 법사위 등 주요 상임위를 독차지해 입법독주를 통한 ‘이재명 사법리스크 방탄’에 나섰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난 법사위 전체회의를 보면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대북송금 기소와 수원지법의 재판부 배당 관련 내용이 주를 이뤘다. 민주당이 말로는 민생을 챙긴다하지만 결국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법사위를 차지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민주당의 ‘국회독식’ 프레임이 좀처럼 부각되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야권 한 관계자는 “21대 국회 전반기에도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다 차지했다. 당시에도 역풍이 거셀 거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역풍은 없었다”며 “국민의힘 지도부는 장외투쟁에 나섰지만, 민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108석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죽하면 이미 헌재에서 각하 결정이 내려진 권한쟁의 심판을 다시 청구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국민의힘은 난국 타개를 위해 매일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뚜렷한 해결책 없이 피로감만 누적되자, 의총을 잠정 중단했다.
또한 집권당 책임론도 부담스럽다. 21대 땐 야당이었던 상황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파행이 길어질수록 국회를 떠난 국민의힘을 향한 비판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남은 7개 상임위원장을 수용하는 선에서 대치 정국을 풀자는 현실론이 고개를 드는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장외 투쟁을 이어간다 해도 조만간 국회 본회의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민주당 인사는 “야권은 ‘채 해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의 신속한 처리를 추진 중이다. 윤 대통령이 이 법안들에 거부권을 다시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국회에서 재표결을 해야 하는데, 재의결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에 출석할 수밖에 없다. 국회 일정을 계속 보이콧을 하다 특검법만 막기 위해 출석하면, 국민의힘은 ‘윤석열-김건희 방탄’을 위해 존재한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대치를 조속히 풀지 않으면 이러한 대치가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7월, 민주당은 8월에 차기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가 예고돼 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여야 차기 당대표는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대표가 유력하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SNS를 통해 이 대표를 공격하고 있다. 두 사람이 당대표가 되면 강대강 대치는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