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후보 일제히 영남권 공략…대세론 한동훈 맞서 나경원·원희룡·윤상현 ‘당정대 원팀’ 띄우기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후보는 정반대 전략으로 나섰다. 용산과의 일체화를 통해 당심 공략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이들의 1차 목표는 한 후보에 대한 배신자 프레임을 부각시켜 대세론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한 후보를 겨냥한 포위망이 전당대회 국면 초기부터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한동훈, 민심 선점으로 대세론 다진다
한동훈 후보가 6월 23일 출마 선언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정가의 최대 관심사는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한 후보 입장이었다. 용산과 친윤계가 민주당의 특검법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 한 후보와 윤석열 대통령 간 관계가 좋지 않다는 점 등 때문이었다. 한 후보가 어떤 스탠스를 보이느냐에 따라 전당대회 지형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었다.
한 후보는 여당 차원의 특검법 발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당정 관계와 관련해선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쇄신하겠다”면서 “지금 우리가 눈치 봐야 할 대상은 오로지 국민”이라고 했다. 용산과의 차별화를 분명하게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한 후보는 회견 후 질의응답에서도 “당대표가 되면 진실 규명을 할 수 있는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며 “공수처 수사 종결 여부를 특검 발의 조건으로 달지 않겠다”고 했다. 용산과 여당이 일관되게 얘기해온 ‘수사 후 결과 미진 시 특검 검토’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셈이다.
한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선 “사적인 친소 관계가 공적 관계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런 차원에서 대통령과 저는 일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그게 훨씬 건강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 역시 용산과의 차별화를 분명하게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렸다.
정치권에서는 한 후보의 차별화 전략을 두고 전당대회에서 20%를 차지하는 민심 확보 전략으로 본다. ‘윤 대통령에게 등 돌린 민심’부터 먼저 다잡은 후 이를 바탕으로 대안 부재론을 강화, 당심을 노린다는 구상이다.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데다 현역 의원이 아닌 한 후보로선 당연한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당심보다는 민심에 먼저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정치권 해석이다.
이는 2021년 6월 전당대회 때 당대표를 거머쥐었던 이준석 모델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된다. 당시 원외였던 이준석 후보는 정통 보수와는 차별화된 언행을 보이면서 돌풍을 일으켰고 이를 무기로 당대표가 됐다. 심지어 대구에서 “박근혜 탄핵은 정당했다”고 외칠 만큼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전대 초반부터 이목을 끌었다.
TK(대구·경북)를 비롯한 보수 지지층에서는 비난도 쏟아졌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준석 후보는 TK표까지 휩쓸어갔다. 이준석 후보는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결과를 7 대 3 비율로 반영한 당시 선거에서 여론조사 득표 58.8%를 차지했다. 이 후보는 여세를 몰아 당원투표에서도 37.4%를 가져가면서 당대표가 됐다(전체 득표율 43.8%). 당원투표만 놓고 보면 1위 나경원 후보(40.95%)를 턱밑까지 쫓아간 것은 물론, TK 대표 정치인으로 꼽히는 주호영 후보를 앞섰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한동훈 후보는 젊고 신선한 이미지의 이준석 모델을 가져와 민심 바람몰이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통 보수와의 차별화를 꾀했다가 결국 성공한 이준석 모델을 거울삼아 용산과의 분명한 차별화로 민심을 일단 얻고, 이를 통해 대세론을 강화해 당원들의 지지까지 이끌어내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원·윤, 당심 공략해 역전극
한동훈 후보도 6월 27일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를 찾았지만 가장 먼저 이곳을 찾은 것은 나경원 후보였다. 나 후보는 6월 21일 일찌감치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 지사를 잇따라 만났고 이는 지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나 후보는 6월 22일에는 경북 상주·문경, 경산, 구미 당원협의회를 방문했다.
나 후보는 6월 26일엔 박완수 경남도 지사와 오찬을 하고, 박형준 부산시장과 면담했다. 부산 사하, 경남 창원 당협을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나 후보는 6월 28일 다시 대구를 찾아 기자간담회를 갖는 등 하루 종일 대구 시내를 누볐다.
원희룡 후보도 한동훈 후보보다 먼저 TK를 비롯한 영남을 찾았다. 원 후보는 6월 25일 이철우 경북도 지사를 만난 데 이어 26일에는 대구시청에서 홍준표 시장을 면담했다. 그는 이 지사를 만난 날 경북 안동·상주·칠곡·구미·김천을 다녔고, 26일에는 대구 달서 지역 당원들과도 만났다. 이날 대구의 여러 언론사와 인터뷰도 가졌다.
원 후보는 26일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한동훈 후보 대세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에 대한 입장을 묻자 “언론에서는 (어대한이라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피부로 느끼는 민심은 다르다. 야구로 치면 이제 1회 초다. 우승팀은 시즌이 끝나봐야 알지 않겠나”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원 후보는 6월 27일엔 부산경남을 찾는 등 내리 사흘째 영남 일정을 잡았다. 그는 이날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나고, 부산 중구·영도구·사상구 당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윤상현 후보는 일단 초반전엔 국회 주변 행보를 하는 모양새다. 6월 28일 이철우 경북도 지사, 6월 29일에는 대구로 가 홍준표 대구시장을 만나는 윤 후보는 이후 TK 공략 등 당원들을 직접 파고들 계획이다. 윤 후보는 총선 직후 토론회를 열면서 대구를 비롯해 이미 전국 투어를 다니는 등 오랫동안 당원 만남을 이어왔다.
윤 후보는 6월 26일 TK 출신 여당 보좌진 그룹인 ‘보리모임’ 주최 만찬장을 찾아 “어머니 고향이 의성”이라며 “영남에 뿌리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전을 갖고 행동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문구를 요약한 ‘비행기’라는 건배사를 하면서 자신이 역전의 기적을 만들어 보이겠다는 의지를 내놓기도 했다.
이날 보리모임에 참석했던 한 보좌관은 “국회와 정당 경험이 많은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후보는 예상했던 대로 대세론 한동훈 후보를 포위하면서 80%에 이르는 당심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며 “체육관 전당대회가 사라졌고 모바일을 통한 정보 공유가 워낙 빨라 당심에도 바람이 형성된 세상이다. 빨리 기선을 잡는 후보가 절대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한동훈 조이는 포위망
당원 투표가 80%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당심’이 당락을 좌우할 것으로 점쳐진다. 특히 절반 가까운 당원이 몰려 있고 매번 전당대회 때마다 투표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TK를 비롯한 영남 당심이 당대표를 뽑는 키를 쥘 것이 유력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4인 후보가 일제히 영남권 공략 행보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지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TK 맹주로 분류되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 지사의 튀는 행동이었다. 특히 홍 시장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언행을 하지 않는 이 지사가 6월 27일 내놓은 발언은 정치권에서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지사는 이날 대놓고 ‘한동훈 비토론’을 거론했다.
한동훈 후보가 대구를 방문한 6월 27일, 이철우 경북도 지사는 매일신문 기자에게 “(한동훈 후보는) 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지사는 “당대표와 같은 고위직은 최소 당에서 수십 년 이상 헌신한 사람이 해야 한다. 밖에서 들어온 (당을 모르는) 사람이 해선 안 된다. 당에 뜨내기가 많아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 후보를 직격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지사는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 당대표를 하면, 당의 가치가 도매금으로 하락한다. 국민들과 당원에게 당에 인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꼴”이라고 했다.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한 후보의 입장에 대해서도 이 지사는 작심한 듯 비판을 쏟아냈다. 이 지사는 “민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정쟁과 정치 공격용으로 추진하는 것을 모르고, (특검을) 덜컹 받는다고 하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일 한 후보를 때려온 홍준표 대구시장도 한 후보가 대구를 찾은 6월 27일 또다시 한 후보를 맹공했다. 홍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국정농단 정치 수사로 한국 보수우파 진영을 궤멸시키기 위해 무자비하게 망나니 칼날을 휘두르던 그 시절을 화양연화라고 막말하는 사람이 이 당의 대표 하겠다고 억지 부리는 건 희대의 정치 코미디”라고 쏘아붙였다.
한 후보는 2023년 2월 한 종편에 출연, “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는 문 정권 초기 검사 시절이었다”고 말했었다. 홍 시장은 “그를 추종하는 레밍 집단도 어처구니없다”며 “내 말이 거짓인지 뉴스를 참조해 봐라”고 강조했다. 홍 시장은 방송 날짜와 종편 프로그램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그때 소환된 보수우파 진영 인사들이 1000여 명에 달했고 수백 명이 구속되고 5명이 자살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을 등에 업은 철부지 정치 검사의 난동이었다. 혹자는 대선 경쟁자 비판 운운하면서 견강부회하고 있지만 나는 이런 자는 용납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6월 27일 대구에 방문했지만 “한동훈은 안 만난다”고 선언한 홍 시장은 물론, 이 지사와의 면담 약속조차 잡지 못했다. 나경원 원희룡 후보와는 비교되는 장면이다. 한 후보로선 당 최대 텃밭인 TK 여론을 어떻게 잡을지가 고민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후보는 전당대회 최대 표밭인 영남권에서 ‘당정대 원팀’ ‘배신자론’ 프레임으로 한동훈 불가를 외친다는 전략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에 비해 여전히 윤 대통령 지지세가 높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한 한 후보의 1차 과반 득표 저지가 첫 번째 목표다. 결선투표로 갈 경우 세 후보의 ‘한동훈 포위망’은 더욱 강력하게 형성될 전망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