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몰랐나? 적치물 등 쌓여 대피 방해 추측…완제품서 발화? 제품 자체 결함 가능성 ‘무게’
#대피로를 몰랐다?
제부도로 향하는 외진 곳 산업단지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이번 사고는 불씨가 지펴진 순간부터 몇날 며칠 지역 일대를 '아비규환'에 빠트렸다. 재폭발 우려 속에서 화재 진압만 22시간가량 이어졌고, 사람 대신 나오는 건 시커멓게 그을린 승용차들뿐이었다. 관련 기관들 역시 혼란이긴 마찬가지였다. 화재 발생 첫날인 6월 24일 경찰과 소방 당국은 22명이 숨지고, 이들 가운데 20명이 외국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수치가 바뀌었다. 사망한 인원은 23명으로 내국인 희생자가 5명이라고 정정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의 관계자는 이처럼 혼선이 빚어졌던 이유에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여러 기관이 얽혀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교류하다보니 내용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물론 사건 발생 초기에는 이처럼 크고 작은 차질이 따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같은 형태의 혼선은 현재 진행 중인 사건 조사가 앞으로도 얼마나 난항일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건에서 시신 대부분을 발견한 자체는 비교적 빠르게 진행됐다. 따라서 희생자들의 국적 정도는 수습과 동시에 파악할 수도 있었으나, 각 시신은 물론 이들의 소지품과 건물마저 워낙 심하게 훼손돼 무엇 하나 유추조차도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앞으로 사고의 원인과 경위 전반을 살펴보는 작업도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특히 사망자 대부분이 2층 '패키징룸'(포장·보관실)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자세한 이유를 찾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고용노동부 등 당국은 '근로자 대부분이 일용·파견 직원들이었기에 공장의 구조에 익숙지 않아 대피로를 제대로 찾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바라보지만 어디까지나 일차원적 추측일 뿐이다. 아무리 내부 구조가 낯설었더라도 출구마저 몰랐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단 지적 탓이다. 또 아리셀 모회사인 '에스코넥'의 박순관 대표는 사고 이튿날 "희생자 대부분 파견·도급 직원들"이라고 했다. 희생자들이 적어도 처음 출근한 이들은 아니었다는 의미다.
이에 일각에서는 도피 경로에 적치물 등이 쌓여 희생자들의 대피에 커다란 방해를 줬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 현장에서 구조 및 감식에 투입된 관계자들도 이러한 의심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 사고 직후 구조에 투입된 한 소방대원은 "한 개 층 전체가 녹아내려 원래 형태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일을 하려면 어떻게든 다녔을 길인데 대피로를 몰랐을지는 의문이고, 대개의 공장들은 적치물들이 문제가 되곤 했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나온 한 직원 역시 "내부 훼손이 몹시 심각해 건물 구조를 잘은 모르겠으나, 직원들이 출구를 몰랐을 리 없을 테니 희생자들이 공간을 빠져나가는 데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했다. 제조업 공장에서 소화전 앞이나 통로에 물건을 적재해 이동을 방해하는 사례는 업계에서 매우 흔하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 감독 때 기본으로 점검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노동부 관계자는 "산업안전 및 중대재해 등 전방위로 조사하겠다"고 전했다.
#'완제품'에서 어떻게 불이…
화재의 원인 자체를 놓고도 의문이 이어진다. 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CC(폐쇄회로)TV를 보면, 불은 공장 한 구석에 쌓여있던 배터리에서 연기를 먼저 내다가 화마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미 완성된 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한 셈인데 흔치 않은 현상이다. 통상 리튬은 한번 불이 붙으면 폭발이 잇따르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해 진압이 쉽지 않다. 수습이 어려운 만큼 불이 쉽게 붙진 않는다. 대개 리튬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을 때 발생한다. 당연히 충격의 강도가 셀수록 골든타임은 짧아진다.
이에 아리셀에서도 리튬배터리에 충격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배터리 공장에서는 제품을 나르는 구르마 형태의 철재대차를 쓰곤 하는데, 아리셀에서도 비좁은 공간을 오가다 부딪혔거나 CCTV 사각지대에서 어떤 충격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이다. 우선 이 시나리오는 아직까진 이론적 가설에 머무르고 있다. 일반 공장에서 리튬에 불을 내거나 폭발할 정도의 충격이 더해질 요소는 많지 않아서다. 관계 당국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는 차원에서만 이를 검토하는 분위기다.
현재 가장 힘이 실린 분석은 제품 자체에 결함이 있었다는 추측이다. 이 경우 그 결함의 원인을 또 따져봐야겠으나, 대부분은 양극과 음극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분리막'이 너무 얇거나 훼손된 형태의 하자가 많다고 알려졌다. 이와 함께 최근 쏟아져 내린 비가 문제였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리튬 전지는 수분에 노출되면 수소가스를 계속 발생시킨다. 수소가스가 새는 시점에는 작은 불꽃만 닿아도 큰 화재로 번질 수 있다고 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더 분석해봐야겠지만, 공개된 CCTV만 봐선 분리막 훼손이 유력해 보인다"며 "그보다도 해외 선진국처럼 공장에 '유해가스 감지기'가 있었더라면 골든타임이라도 늘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그나마 분명해 보이는 한 가지는 회사의 안전교육이 불충분하거나 없었다는 점이다. CCTV를 보면, 연기가 나자 직원들은 소화전을 분사했다. 리튬은 전용소화기가 따로 있어 일반소화기로는 진압할 수 없다. 연기를 확인한 직원들은 곧장 대피했어야 했다. 즉 아리셀의 희생자 등 직원들은 '리튬 회사'에 다니면서도 화재를 진압할 전용 도구도 없는 상태에서, 화재 발생 시 올바른 진압 방법은 물론 대피마저 못한 셈이다. 적정한 안전교육이 이뤄졌다면 연출되지 않았을 모습이다.
#에스코넥·아리셀-메이셀·한신다이아 관계는?
이번 사고도 안전 불감증 등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 촉발했다는 비판이 따르지만, 기형적인 고용·노동 관행까지 더해진 참사란 지적이 거세다. '파견·도급' '이주 외국인' 노동자에 피해가 집중됐기 때문이다. 박순관 대표는 희생자들이 '메이셀'이란 곳에서 온 파견·도급 직원들이었다고 설명했다. 2024년 5월 이전까지는 '한신다이아'란 곳과 계약했다고도 했다. 그는 '파견'과 '도급' 단어를 혼용했는데, 이는 두 개념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파견은 지정된 파견업체가 사용업체에 직원을 보내고, 이 직원은 사용업체의 지시를 받아 근무하는 형태다. 도급은 원청 기업이 특별한 업무나 프로젝트 등을 하청업체에 일임하는 구조다. 도급업체는 위임받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인력을 구성한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메이셀'과 '한신다이아' 두 곳 모두 도급 위장 불법 파견을 위해 설립된 회사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행법상 아리셀과 같은 제조업체는 파견직 사용이 금지돼 있는데, 이 법망을 피하고자 '사내하청'(도급)으로 위장한 곳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메이셀은 법인등기부상 주소지가 아리셀과 같다. 희생자 전원을 발생시킨 아리셀 3동 2층이란 점까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메이셀 측은 경찰에 "회사에 들어가 본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고 전해졌다. 이대로라면 메이셀은 사무실도 없이 법인만 설립한 채 아리셀에 인력을 보냈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메이셀은 '직업소개업' 기업으로 등록돼 있지도 않다. 법인등기부상 사업목적도 '1차 전지 제조업' 등이다.
한신다이아 역시 마찬가지다. 사업목적은 제조업으로, 인력알선 관련 사항은 법인등기부에 없다. 일요신문이 한신다이아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봤더니 '에스코넥 경기 안산 공장'이 나왔다. 여기서 만난 직원들은 "한신다이아라는 회사를 모른다"고 증언했다.
결국 메이셀과 한신다이아 모두 서류상으로만 제조업체일 뿐, 실제로는 인력 파견을 해왔다는 뜻이다. 특히 모두 주소지가 같다면 에스코넥·아리셀이 사내하청으로 둔갑한 도급 위장 불법 파견업체를 '직접' 설립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에스코넥·아리셀과 한신다이아·메이셀이 어떤 관계인지도 관심을 모은다. 일단 한신다이아는 1992년생 최 아무개 씨, 메이셀은 1994년생 최 아무개 씨가 대표로서 두 사람이 남매 관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소민안 노무사(지정노무법인)는 "불법 파견은 산단 등 업계에서 관행처럼 자리 잡은 현실"이라면서도 "다만 원청과 도급 위장 불법 파견 업체의 주소지가 이처럼 똑같은 사례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소 노무사는 이어 "아리셀 등이 도급 위장 불법 파견을 목적으로 한 회사를 직접 만들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라면서 "아리셀 등이 이같이 함으로써 어떤 실익을 얻었는지도 조사를 통해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메이셀과 한신다이아 관계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노동부 관계자는 "아리셀과 메이셀 계약은 서면이 아닌 구두로 체결된 것으로 보인다"며 "관련 불법파견 수사에 착수했으며, 지역 산업단지의 불법파견 근로감독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참사는 한국인 5명, 외국인이 18명(중국 17명·라오스 1명)의 사망자가 발생, 단일 사건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희생자를 낳은 역사로 기록됐다. 검찰과 경찰은 각각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아리셀 등의 업무상과실치사상 여부부터 살필 방침이다. 아리셀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변호인으로 선임해 대응 채비에 나섰다. 이미 경찰 등의 조사 과정에 입회해 적극 지원을 받고 있다고 알려졌다. 아리셀 모회사인 에스코넥의 한 사외이사가 김앤장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