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부터 ‘위탁판매’로 바꾸고 올해엔 아예 삭제…갤러리K “고객·회사 안정적 계약 위해 변경”
갤러리K는 올해 초부터 미술품 재판매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논란이 불거졌다(관련기사 아트테크 사기 또 터지나…‘연매출 600억’ 갤러리K에서 벌어진 일). 논란이 커지자 갤러리K 측은 "연내 모든 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미술품 구매자들을 달랬다.
하지만 미술품 구매자들 사이에선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갤러리K가 미술품 재판매를 요청한 한 구매자에게 "갤러리K는 재판매 의무가 없다"며 소송까지 걸었기 때문. 더군다나 갤러리K는 미술품 재판매를 보장한 계약서 조항을 구매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2022년경 신규 계약부터 슬그머니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초부터는 재매입을 보장한 계약서 조항을 아예 없앤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신문은 갤러리K의 미술품 재판매 미이행 사태를 7월 5일 단독 보도(온라인)했다. 이후 갤러리K는 7월 8일 한 언론을 통해 김정필 대표 명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김 대표는 입장문에서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임원진들의 경영 미숙으로 인해 회사 운영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작가료, 위탁판매대금 등 지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최근 벌어진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긴축 경영 체제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어 "갤러리K는 현재 본사 건물을 포함해 총 약 400억 원의 부동산 자산 등을 보유하고 있다.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빠른 시간 안에 이 자산들을 매각하겠다"며 "고정비 지출을 줄이고 경영 책임을 지는 의미로 임원 전면 해임 및 직원 50% 축소를 할 것이고 무보수의 긴축 경영 TF팀이 기존 임원단을 대체할 것이다. 이렇게 확보하는 모든 비용은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갤러리K는 "긴축 경영으로 약속을 지키겠다"는 입장문과 다르게 미술품 재판매를 요청한 구매자 A 씨에게 소송으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씨는 갤러리K에서 2021년 1월 3억 5300만 원 상당 미술품을 샀다. 갤러리K는 A 씨가 매입한 미술품을 곧바로 빌려갔다. 그래서 A 씨는 해당 미술품을 직접 본 적이 없다. A 씨는 갤러리K와 맺은 미술품 구매 계약에 따라 3년 뒤인 지난 1월 3일 갤러리K에 미술품 재판매를 요청했다. 하지만 갤러리K 측은 재판매 대금 지급을 3월 말, 4월 말 등으로 계속 미뤘다. 참다 못한 A 씨는 지난 5월 갤러리K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A 씨는 "김정필 대표에게도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A 씨에게 돌아온 건 소장이었다. 갤러리K는 A 씨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지난 6월 20일 제기했다. 갤러리K 측은 소장에서 "A 씨의 지난 1월 3일 재판매 요청은 진품확인서가 없어서 담당자로부터 승인되지 않아 효력이 없다"며 "재판매 요청 기한인 1월 31일까지 다른 유효한 재판매요청이 없었으므로 갤러리K는 A 씨에게 재판매 대금 지급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계약에 따르면 구매자는 구매계약일로부터 3년 기간 내에 재판매 요청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갤러리K 측은 "모조품이 많고 진품이 확인됐는지 여부가 가격 및 구매 의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미술품 특성상 진품확인서가 없는 미술품을 다른 고객에게 재판매할 수 없다"며 진품확인서 없이 A 씨가 재판매 요청을 한 점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A 씨는 "진품확인서가 없어서 재판매 요청을 못 받아준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며 "갤러리K 측은 지난 4월 말 '(재판매를) 이번에 못 해주게 됐다. 곧 변제하겠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A 씨는 이어 "진품확인서는 갤러리K 담당 아트딜러가 보관 중이었다"며 "재테크 차원에서 한 거라 진품확인서 등은 갤러리K 담당자를 믿고 맡겼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 갤러리K에 재판매 요청을 했지만 재판매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구매자 B 씨와 C 씨도 "재판매 요청 당시 갤러리K 측이 진품확인서를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갤러리K는 2년 전부터 미술품 구매자와 신규 계약에서 재판매 의무를 슬그머니 없앤 정황도 포착됐다. 구매자 B 씨는 "갤러리K에서 2021년경 미술품을 처음 구매하고 2022년경 미술품을 또 구매했다"며 "2022년 구매 계약서를 다시 보니 재판매 요청 부분이 2021년과 달랐다. 그런데 2022년 계약 당시 갤러리K 측은 계약 내용이 달라진 것을 고지하지 않고 2021년과 동일한 조건으로 설명하고 미술품을 판매했다"고 지적했다.
B 씨가 2021년 체결한 미술품 구매 계약서 5조 4항은 "갑(구매자)으로부터 재판매 요청이 들어오면 을(갤러리K)은 한 달 동안 제3자에게 재판매를 위한 노력을 한다. 한 달 동안 재판매가 되지 않은 미술품에 대해서는 을(갤러리K)이 매입을 한다"이다.
그런데 B 씨가 2022년 체결한 미술품 구매 계약서 5조 4항은 "갑(구매자)으로부터 위탁판매 요청이 들어오면 을(갤러리K)은 한 달 동안 제3자에게 위탁판매를 위한 노력을 한다. 한 달 동안 위탁판매가 되지 않은 미술품에 대해서는 을(갤러리K)이 매입을 할 수 있다"다. '재판매'가 '위탁판매'로 바뀌면서 '갤러리K가 매입을 한다'는 재매입 보장 문구는 '갤러리K가 매입을 할 수 있다'로 교묘하게 수정됐다.
갤러리K 측은 이처럼 계약서 조항을 바꾼 뒤인 2023년경 B 씨가 위탁판매에 대해 묻자 "위탁판매를 할 경우 처음 구매했던 금액으로 받는다. 현금이다"라며 "안 팔리면 회사에서 구매하신 금액을 넣어드린다"고 답했다. 2023년에도 계약서 조항이 바뀐 사실을 설명하지 않은 셈이다.
갤러리K는 올해 들어서 재판매 요청에 관한 5조 4항을 아예 없앴다. 구매자 C 씨는 올해 초 갤러리K에 미술품 재판매를 요청했다. 하지만 갤러리K 측은 재판매 대금 지급이 어렵다며 재계약을 권유했다. 그런데 C 씨가 올해 초 새로 받은 계약서는 5조 4항이 삭제된 상태였다. C 씨는 "최근 갤러리K와 재계약을 한 분들 대부분은 재판매 요청 조항이 삭제된 것을 모를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일요신문은 갤러리K 측에 미술품 재판매 요청에 관한 조항을 구매자들에게 안내하지 않고 변경한 경위를 물었다. 갤러리K 홍보팀은 7월 10일 "법률 자문을 통해 고객과 회사의 계약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변경한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