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명시된 ‘미술품 재매입’ 이행 안 해 투자자가 고소…원금 미반환 피해 금액 1000억 원대 이를 수도
2017년 12월 설립된 갤러리K는 2022년과 2023년 업계 매출 1위를 달성했다고 자부해왔다. 갤러리K 매출은 2020년 130억 원, 2021년 245억 원, 2022년 546억 원, 2023년 663억 원으로 매년 급증했다. 갤러리K 홈페이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누적 고객 5100명을 돌파했다. 갤러리K는 2023년 10월 영화배우 하정우를 광고모델로 발탁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왔다.
갤러리K는 미술품 투자자로부터 미술품을 다시 빌려온 뒤 연 7~9% 수익을 지급하는 아트테크를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다. 갤러리K는 "미술품을 임대해 수익을 발생시키는 아트테크 특허는 갤러리K 독점 자산"이라며 "이러한 특허를 '미술품 투자'라는 형태로 둔갑시킨 일부 후발업체들의 유사수신 행위에 주의하라"고 홍보해왔다. 그러면서도 "수익성과 안정성을 모두 갖춘 재테크를 할 수 있다"며 미술품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았다.
갤러리K가 "특허 받았다"고 강조해온 아트테크 구조는 이렇다. 우선 갤러리K가 투자자에게 미술품을 판매한다. 갤러리K는 투자자로부터 해당 미술품을 곧바로 다시 빌려간다. 이후 갤러리K는 해당 미술품을 다른 곳에 대여하면서 대여료를 받는 한편 투자자에게는 매달 대여료를 지급한다. 미술품 투자자가 계약 해지를 요청하면 갤러리K는 해당 미술품 재판매에 나선다. 한 달간 재판매가 이뤄지지 않으면 갤러리K에서 해당 미술품을 매입한다.
미술품 투자자 다수는 계약서에 명시된 '미술품 재매입 보장'을 믿고 거금을 들여 갤러리K에서 미술품을 구매했다.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해줬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갤러리K와 체결한 미술품 구매 계약서 5조 1항엔 "구매계약일로부터 3년 동안 해마다 1년이 되는 시점을 재판매 요청 성립일로 정하고, 재판매 요청 성립일까지 갑(미술품 투자자)은 재판매 요청을 함으로써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또 5조 4항엔 "재판매 요청이 들어오면 을(갤러리K)은 한 달 동안 제3자에게 재판매를 위한 노력을 한다. 한 달 동안 재판매되지 않은 미술품에 대해서는 을(갤러리K)이 매입을 한다"고 명시돼 있다.
미술품 투자자들에 따르면 갤러리K 소속 아트딜러들은 "재판매를 요청하면 처음 구매했던 금액을 현금으로 받는다"고 설명해왔다. 갤러리K 소속 한 아트딜러는 2021년 5월 자신의 블로그 글에서 "우리나라는 유사수신행위법 때문에 원금 보장이라는 말을 쓸 수 없지만, 현재까지 재판매 요청을 했을 때 모든 고객들은 자신이 구매했던 금액을 제때 다 돌려받았다"며 "갤러리K를 믿어도 된다"고 우회적으로 '원금 보장'을 언급했다.
갤러리K와 사업 구조가 비슷했던 지웅아트갤러리는 2023년 7월부터 투자자들에게 원금을 돌려주지 않으면서 사기 의혹이 불거졌다(관련기사 “수익 보장은커녕 원금도 안 줘” 청담동 갤러리 수백억 ‘폰지 사기’ 의혹 전말). 지웅아트갤러리는 미술품 투자자를 모집하면서 연 12% 수익을 지급하며 3년 뒤 원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웅아트갤러리 미술품 투자자들은 2023년 말 집단 소송을 제기한 뒤 현재까지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수사 중이다.
갤러리K는 지난 1월부터 원금 미반환 사례가 나타나면서 지웅아트갤러리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A 씨는 2021년 1월 31일 갤러리K와 3억 5300만 원 상당 미술품 구매 계약을 맺었다. A 씨는 3년 뒤인 2024년 1월 3일 갤러리K에 미술품 재판매를 요청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재판매는 이뤄지지 않았다. 갤러리K에서 해당 미술품을 매입하지도 않았다. A 씨에 따르면 갤러리K 측은 "대여료를 2배로 주겠다"며 원금 상환 시기를 계속 미뤘다. 결국 A 씨는 지난 5월 초 갤러리K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B 씨 역시 지난 4월 미술품 재판매를 요청했지만 원금 4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B 씨는 "재판매 약속 이행이 6월에도 안 돼서 갤러리K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연락을 아예 받지 않았다. 고객센터를 통해 항의하니 '대여료를 2배로 주겠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며 "원금을 빨리 달라고 이야기했더니 '내부에 문제가 발생했다. 회사가 망하면 원금을 못 받는 건데, 회사가 일단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갤러리K 측은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온라인상에도 갤러리K로부터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호소가 하나둘 올라오고 있다. 미술품 재테크와 관련한 네이버 지식인 질문에 지난 6월 말 한 답변자는 "지난 2월 갤러리K 계약이 종료됐는데 원금 1000만 원을 돌려주지 않는다. 담당 아트딜러는 회사가 어렵다며 내용증명을 발송하라고 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답변자는 같은 질문에 "갤러리K 계약 기간이 끝나고 500만 원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못 받고 있다. 대표는 수신 거부를 한다"고 지난 6월 말 밝혔다. 지난 7월 1일에는 네이버 지식인에 "갤러리K 딜러가 잠적했다"며 "1억 원 넘게 넣었는데 울고 싶다"는 질문이 올라왔다.
갤러리K가 미술품 투자자들을 기망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갤러리K는 미술품 판매 가격과 관련해 "한국미술협회가 인증한 호(미술품 크기 단위)당 가격으로 정찰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해왔다. 또 갤러리K는 "주요 작가 호당 가격은 해마다 오른다. 그 상승률은 연간 25% 정도"라며 "호당 가격을 통해 매매 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고 투자자들에게 강조해왔다.
하지만 미술업계에선 갤러리K가 미술품 가격을 부풀려서 팔았다고 지적한다. '호당 가격 정찰제'의 실체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화가 C 씨는 "호당 가격이 10만 원도 안 되는 작가 작품을 갤러리K에서 호당 100만 원에 판 적이 있다"며 "그러니 다른 화랑에는 팔 수 없다. 아마도 갤러리K 안에서 돌려막기를 할 거다"라고 주장했다.
박영택 미술평론가는 "시장에서 판매 가격이 잡히지 않는 작가들은 스스로 호당 가격을 정하고 있다"며 "미술협회에서 호당 가격을 증명해준다는 것은 사기다. 호당 가격 증명서는 휴지조각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권위도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심지어 갤러리K는 한국미술협회 소속이 아닌 작가는 한국미술렌탈협회가 인증한 호당 가격서를 발행한다고 홍보해왔다. 그런데 한국미술렌탈협회는 김정필 갤러리K 대표가 이사장을 역임한 곳이다. 한국미술렌탈협회 사무실도 갤러리K 본사와 같은 건물에 위치한다.
갤러리K는 미술품을 제작한 작가와 판매 대금을 나눠가지는 방식도 보편적이지 않다. 갤러리K는 판매 대금 중 20~25%를 작가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마저도 한 번에 지급하지 않는다. 3년에 걸쳐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적으로 갤러리와 작가가 판매 대금을 5 대 5로 나눠가지는 것과 대비된다.
갤러리K는 원금 미반환 사태에 대해 7월 5일 저녁 "국내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보유하고 있는 자산 매각을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당 가격 정찰제에 대해선 "한국미술협회의 객관적인 평가와 심사, 자문을 통해 가격이 측정된다"고 주장했다. 미술품 판매 대금을 작가와 나누는 비율에 관해선 "다른 곳과 달리 저희는 대관료 없이 작가의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며 "갤러리K 아트딜러 온라인 홈페이지에 노출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 및 홍보활동으로 비용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