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사업 시작했지만 완공 못해…경기도 “CJ라이브시티 부지, 경제자유구역 지정 방안 추진”
CJ라이브시티 사업은 2015년 경기도가 K-컬처밸리 조성을 위한 공모형 건설투자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단독으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CJ와 경기도가 2016년 사업 협약을 맺고, 2016년 8월 시작됐다.
약 8년이 지났지만 지난 6월 30일까지 공정률(실제 공사의 진행 정도)은 고작 17%였다.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첫 번째 원인으로 국정농단 사건이 꼽힌다. 2016년 말 일명 ‘박근혜-최서원(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국정농단 수사가 시작됐다. 이때 CJ그룹이 CJ라이브시티 사업에 선정되는 과정에서 최서원의 측근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여파로 CJ라이브시티 사업은 잠정 중단됐고, CJ그룹은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11개월간 경기도의회의 행정 사무조사를 받았다.
이후 CJ라이브시티는 사업계획을 여러 차례 변경했다. CJ라이브시티 관계자는 “초기 공모된 사업 모델은 한국문화 테마파크였지만 문화 인프라 특성상 K팝을 비롯해 K콘텐츠 산업 성장 등 급변하는 트렌드를 반영해 아레나를 포함한 ‘문화콘텐츠 복합단지’로 고도화하면서 사업계획이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CJ라이브시티의 2차 사업계획은 2018년 11월, 3차 사업계획은 2020년 6월, 경기도의 승인을 받았다. 2021년 6월에는 고양시에 아레나(공연장) 개발 건축허가 승인을 받아 착공에 성공했고, 같은 해 10월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부지에서 착공식을 열었다.
첫 삽을 뜨나 했지만 이번에는 건설경기 악화가 발목을 잡았다. CJ라이브시티는 지난해 3월 아레나 시공을 맡은 한화건설과 계약 조건 재협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공사를 일시 중지했다. CJ라이브시티 측은 당시 “공사 중단은 유례없는 건설 원가 폭등과 부동산 금융시장 악화 등 어려워진 대외경제 상황에 따른 긴급 조치일 뿐”이라고 전했다.
또 한류천 수질 개선 문제와 한국전력공사(한전)의 대용량 전력 공급 유예 통보 등이 겹친 것도 사업을 힘들게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CJ라이브시티 전 단지를 가로지르는 한류천은 CJ라이브시티 사업 전인 2011년 한류월드 기반시설 준공 시 설계 오류로 수질오염이 지속 악화돼 현재 수질은 4-5급수 이하다. CJ라이브시티 관계자는 “한류천 수질개선은 민간사업자인 당사가 아닌 공공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고양시 관계자는 “(고양시는) CJ라이브시티와 한류천 수질개선 양해각서(MOU)를 맺고 전문가 자문, 수질개선 용역 등을 해왔지만 투자 대비 효과는 미미했다”며 “한류천을 복개(덮는 것)할 이유가 없었지만 사업에 차질이 생길까봐 복개하기로 하고 이 부분을 CJ라이브시티와 공유하고 협의했는데 정작 경기도와 CJ라이브시티 간 사업이 종료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력 공급 문제는 지난해 2월 한전에서 전력 공급 유예를 통보하며 불거졌다. 당시 한전 관계자는 “전력망 공급 여력이 부족하다”며 “전력망 보강계획을 수립하고 준공 시기를 고려하면 전력 공급까지 적어도 6~8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어렵사리 이어져오던 계약이 급기야 무산된 결정적 이유는 지체상금 감면 문제다. 지체상금이란 사업시행자(CJ라이브시티)가 공사 등의 계약에서 정한 기간 안에 계약상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주는 돈이다. 사업협약 기간은 지난 6월 30일까지다. 엔터업계에 따르면 CJ라이브시티가 경기도에 지급해야 하는 지체상금은 약 1000억 원이다.
CJ라이브시티는 지체상금 1000억 원 중 2019년 말부터 2023년 초까지 한류천 수질 개선 문제 및 전력 공급 문제로 공사에 차질이 생겼을 당시 발생한 지체상금은 감면해달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사업을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CJ 측에서)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와 관련해 지체상금이 감면된 걸 예로 들며 지체상금 감면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인스파이너는 2021년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투자계획 변경 및 사업변경을 사유로 39개월간 지체상금 없이 완공기한 연장 승인을 받았다.
경기도는 지체상금을 감면해주면 특혜·배임 사유가 된다고 반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이었을 때 있었던 비슷한 사유로 검찰에 기소된 바 있다. 그걸 잘 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막대한 투자비 상승 부담을 (지체상금 감면이라는) 위약금을 없애거나 줄이면서 사업 재기를 고려했는데 경기도가 허락을 안 해 종료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경기도와 CJ 양쪽은 사업 재개 의지를 보이기보다 사업 중단을 기정사실화하며 향후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성중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K-컬처밸리 사업(CJ라이브시티 사업)의 책임 있는 추진과 최소한의 공공성 담보를 위해 공영개발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이고 경기주택도시공사 중심으로 단독추진 또는 공동사업시행, 사업목적법인설립 등 다양한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CJ라이브시티 부지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CJ라이브시티에서도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엔터업계에 따르면 CJ라이브시티 내 일부 팀과 팀원의 이동 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CJ그룹이 CJ라이브시티의 사업 종료를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을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학적 관점에서 (CJ가 지체상금을 감면해주면 재협약을 이어가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며 “약 2조 원이 들어가는 사업인데 여러 가지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진행하는 것보다 중단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CJ라이브시티 관계자는 “경기도에서 배임을 우려해 우리가 국토부에 조정을 신청했고 국토부에서도 지체상금 감면을 권고했다”며 “일방적으로 사업을 종료한 것은 경기도고 우리는 지체상금 감면 시 사업을 이어가려고 했다”고 언급했다.
사업 종료가 CJ그룹 재무건전성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CJ라이브시티 사업의 총 사업비는 1조 8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공사가 재개된다면 향후 1조 원이 넘는 자금이 더 들어가야 한다. 실제로 증권가에선 CJ라이브시티 계약 해지가 CJ ENM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정지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경기도와의 CJ라이브시티 계약 해지로 토지 매각 대금을 감안해도 약 3000억 원 규모의 영업외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다만 손상 반영 이후에는 시장이 우려하던 CJ라이브시티 관련 리스크가 해소된다는 관점에서 투자심리는 회복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이제 관건은 CJ라이브시티와 경기도 간 사업협약 계약서에 적시돼 있는 ‘원상복구’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CJ라이브시티와 경기도 간 사업계약서에 ‘원상복구’가 적시돼 있다. CJ가 사업을 포기하면 사업 부지를 원상태로 돌려놔야 한다는 것이다. 김선웅 법무법인 지암 변호사는 “사업 종료 귀책사유가 누구인지에 따라 원상복구를 CJ라이브시티에서 할 수도, 경기도에서 할 수도 있다”며 “사업 종료 귀책사유가 앞으로 양측 간 법적 다툼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