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감사가 방아쇠…실세 유병호 각종 논란 일으킨 후 감사위원 영전
7월 11일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그동안 감사원장, 감사원 사무총장 등이 감사위원회를 건너뛰고 일방적 표적감사를 하며 정치감사 논란을 유발한 바 있다”면서 “이들(감사원 수뇌부)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당론으로 채택된 법안은 법무부 장관 출신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야권 의원 52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감사원법 개정안 의안엔 “감사원이 전 정부 사업 전반에 대한 무분별한 감사와 전 정부 임명 기관장에 대한 표적감사를 일삼으며 정치감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면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 독립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법안 발의 주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 담겼다.
감사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규정할 필요성, 감사원 투명성 강화 등도 법안에 포함됐다. 감사원법 개정안 핵심 내용은 감사위원회 의결사항 공개, 외부 공개모집 감찰관 임용, 내부 회계감사, 직무감찰 결과를 대통령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 등이다.
감사위원회 의결사항 공개는 감사원장, 감사원 사무처 등이 가동하는 ‘별동대’를 차단하려는 목적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직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위원회 의결사항을 공개하면 어떤 감사가 감사원장 혹은 감사원 사무처를 통해 독립적으로 진행된 건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외부 공개모집 감찰관을 임용해 감사원장 직속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대목은 감사원 수뇌부 및 조직 전반을 아우르는 ‘감사원을 감사하는 외부 감찰관’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내부 회계감사, 직무감찰 결과를 대통령 및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한다는 점은 각종 감사에 대한 내용을 행정부와 입법부가 보고 및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감사원법 개정안과 관련해 “현 정부의 감사원 감사는 검찰 수사 동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감사원이 중립성과 독립성을 갖추려면 감사원법 개정이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당의 총의를 모아 제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감사원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제21대 국회 때부터 꾸준히 추진한 감사원법 개정안은 헌법이 인정하는 감사원 독립성을 훼손할 여지가 있다”면서 “헌법에 위배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는 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셈”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헌법과 충돌할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의안 원안대로 추진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법안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합의제 감사기관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이 감사원을 지휘하거나 감독할 수 없다. 헌법상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감사원법 제52조는 감사원의 독립적 규칙제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독립적인 규칙제정권을 인정받는 다른 헌법기관으로는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이 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감사원법 개정안을 ‘감사완박’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동안 민주당과 감사원은 여러 차례 마찰을 빚어왔다. 2020년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감사가 방아쇠를 담겼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이끌던 감사원이 산업통상자원부를 대대적으로 감사했고, 현장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감사원 감사에 저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후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화제의 인물로 부상하며, 국민의힘 대권주자로 뛰기까지 했다. 최 전 원장은 서울 종로를 지역구로 보궐선거에 출마해 제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으로 활동했다. 야권에선 최 전 원장 일련의 행보가 감사원 정치적 중립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2024년 5월 9일엔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 당시 증거인멸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산자부 공무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사건 자료가 공용전자기록 손상죄에 대상이 되지 않으며, 최재형 체제 감사원 감사 절차가 적법하지 않았던 점을 근거로 피고인들이 2심에서 받은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야권에선 이 판결을 감사원 ‘부적법 감사’ 핵심 근거로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선 유병호 감사원 감사위원이 민주당과 갈등을 빚었다. 윤석열 정부 초반 감사원 사무총장이었던 유 위원은 월성원전 1호기 감사를 진두지휘한 인물로 알려졌다. 감사원 내 실세로 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감사통’으로 알려진 유 위원이 사무총장 재직 당시 감사원 내부에서 ‘고래사냥’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래사냥이 전 정부 거물급을 지칭한다는 분석이 나오며 정치적 파장이 거셌다(관련기사 ‘학익진 펴고 고래사냥’ 감사원발 전 정부 사정 막전막후)
2022년 7월 민주당은 최재해 감사원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냈다. 결의안엔 “최 원장이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의 각종 전횡을 방관, 방조하고 있어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감사원 ‘고래사냥’ 중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표적감사 의혹이었다. 전 전 위원장 감사보고서 발표 당시엔 감사위원회와 감사원 사무처가 보고서 수정을 둘러싸고 정면충돌하는 양상이 펼쳐지기도 했다. 유병호 위원은 ‘전현희 표적감사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는 입장이 됐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표적감사 의혹 이후 제22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로 귀환했다. 유 위원은 감사원 2인자인 사무총장 직에서 감사위원회 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 위원은 감사원 사무총장 시절 감사위원회와 대립각을 세운 이력이 있다. 일각에선 유 위원이 각종 논란 이후 오히려 영전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전직 감사원 관계자는 “유 위원이 사무총장 시절 추진하던 ‘강성 스타일’ 감사 건들이 감사위원회 견제를 받아왔다”면서 “그런데 유 위원이 감사원 사무총장에서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감사원 내에선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라면서 “유 위원이 감사원을 최종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일환으로 감사위원회라는 호랑이굴에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2024년 2월 유 위원이 사무총장에서 감사위원으로 영전한 것을 두고도 ‘정치 감사’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의혹을 품고 있다.
이번 감사원법 개정안 당론 채택을 두고 민주당이 여당일 때부터 이어져 온 감사원과의 마찰이 차곡차곡 누적된 결과라는 반응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감사원법 개정안은 국민합의가 필요하고, 헌법 개정까지 필요한 사항”이라면서 “관련법 개정 이슈는 예전부터 나오던 이야기인데, 이제는 민주당이 거꾸로 윤석열 정부 탄핵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채 교수는 “민주당이 다수결로 감사원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면, 대통령은 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면서 “민주당은 이런 부분을 향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의 명분으로 차곡차곡 쌓아 놓으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민주당이 감사원법 개정안과 관련해 정치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서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