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원 친명계로 채워, ‘명팔이’ 발언 정봉주 낙선…대정부 투쟁 속도 낼 듯, ‘친문’ 김경수와의 관계 변수
이재명 대표는 8월 18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득표율 85.40%로 차기 당대표에 선출됐다. 이는 이 대표가 처음 당대표에 올랐던 2년 전 전당대회에서 얻은 득표율 77.77%보다 높은 수치다. 또한 이재명 대표는 이번 결과로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당대표를 연임한 두 번째 당대표로 기록됐다.
당대표와 함께 지도부를 구성할 최고위원도 김민석 전현희 한준호 김병주 이언주 의원 등 ‘친명계’로 채워졌다. 앞서 최고위원에 출마한 후보들은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직 연임 도전 의사를 공식 선언하기 전부터 ‘이재명 대표와 함께’를 강조했다. 이어 전대 과정에서도 ‘이재명 집권’에 앞장서겠다며 표를 호소했다. 막판 ‘이재명 팔이’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정봉주 후보는 낙선했다.
수석최고위원에 오른 김민석 의원은 본인을 이재명 대표의 ‘집권플랜 본부장’이라고 강조했다. 전남 지역순회 경선에서는 스스로를 “뼛속까지 김대중의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김대중과 이재명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정권교체를 약속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이루면서, 정부여당과의 투쟁이나 개혁입법에 더욱 속도감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이재명 대표 1기는 지도부의 경우 친명계가 대다수였지만, 의원 중에는 비명계도 많았다. 이 대표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가 대표적이다”라며 “하지만 지난 총선 공천을 거치면서 친명계 인사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이재명표 개혁드라이브는 22대 국회에서 본격 시작이다”라고 전했다.
‘이재명 일극체제’에 우려의 시선도 쏟아지고 있다. 국회에서도 법제사법위원회(정청래 위원장), 운영위원회(박찬대 위원장), 과학기술정통방송통신위원회(최민희 위원장) 등 주요 상임위 위원장에 친명계가 포진해있다. 이들 위원회에서는 여당 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특검법, 탄핵, 청문회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민생이 어렵다. 여야가 합의해 국민 경제를 살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 친명계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공세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것이 이 대표가 전대 출마하며 강조한 ‘먹사니즘’이냐”고 꼬집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건국절 논란에 ‘먹고살기 힘든 국민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역사관 논쟁을 누가 시작했느냐.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들을 주요 역사기관장에 임명한 건 윤 대통령”이라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법안이 21개로 늘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걱정됐다면 전국민 25만 원 지원금과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되받아쳤다.
다만 야권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들어 ‘입법 통과-거부권 행사-재의결 폐기’ 수순이 반복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무분별한 거부권 사용이 문제지만,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다보니 국민들에 피로감과 무력감이 쌓인 것도 사실”이라며 “여야가 협치해 성과를 내는 모습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여야 극한 대립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면 이재명 체제에 대한 원심력이 커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민주당 박광온 박용진 송갑석 강병원 윤영찬 전 의원 등 15명의 ‘비명계’ 전직 의원들이 ‘초일회’란 모임을 결성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 일극체제를 견제하기 위해 비명계가 조직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다보니 ‘친문 적자’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차기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2022년 12월 ‘복권 없는 사면’을 받은 김 전 지사는 이번 8·15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이 결정됐다. 이로써 선거 출마 등 정치재개가 가능해졌다.
김 전 지사는 13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저의 일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우리 사회를 위해 보탬이 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잘 고민하겠다”고 밝히며 활동 재개를 암시했다. 김 전 지사는 사면 이후 현재 독일에서 유학 중으로, 올해 말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김 전 지사가 친문의 구심점으로, 이 대표와 당내 경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이재명 일극체제에 우려를 가진 민주당 일부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대표를 대신할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라며 “김 전 지사는 경남도지사를 지내 중량감도 있고, 친문 적자라는 상징성도 있다. 김 전 지사를 중심으로 친문·비명 인사들이 뭉쳐 반격에 나설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경수 전 지사가 이재명 대표와 대립하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김경수 전 지사를 지난 2022년 12월 특사로 풀어줄 때 복권까지 했다면, 김 전 지사가 이재명 대표의 대항마가 돼 이 대표를 흔들 수도 있었다. 당시는 당대표에 오른 지 얼마 안 됐고, 사법 리스크가 극심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에도 법원 사전구속영장청구 기각으로 살아 돌아왔고, 총선을 압도적 대승으로 이끌었다. 당원과 국민 90%에 가까운 지지를 받고 당대표에 연임됐다. 이 대표와 각을 세우는 건 이들과 척을 지겠다는 의미다. 현 민주당 내에서 발을 붙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사면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 이제야 복권해준다는 것은 정치적 의중이 너무나도 뻔히 보인다. 그런 얄팍한 수에 넘어갈 이재명 대표와 김경수 전 지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4월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영수회담을 앞두고 김 전 지사의 복권 문제가 거론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과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가 당시 비선 특사 역할을 맡아 영수회담 사전 물밑 조율을 했는데, 두 사람은 이 대표를 만나 ‘윤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서) 이 대표에게 경쟁자가 될 만한 인사는 대통령실 인선에서 배제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당초 거론된 ‘경쟁자’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원 전 장관뿐 아니라 당내 경쟁자인 김 전 지사도 ‘복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이 대표 쪽에 전달했다는 것.
하지만 이 대표는 “경쟁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답변하면서 사실상 대통령실의 제의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2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이러한 사실을 전하며 “어떻게 대통령실에서 이런 공작 정치를 하느냐. 만약에 이재명 대표가 그것을 받았다면 큰일날 뻔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김경수 전 지사의 복권 결정이 전해진 뒤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 대표는 14일 오마이뉴스TV에 출연해 “자갈만 모으면 자갈더미, 모래만 모으면 모래더미지만, 모래와 자갈, 물, 시멘트를 섞으면 콘크리트라는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며 김 전 지사의 복권이 “우리 진영을 강화하는 콘크리트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나도 ‘이재명 단일 체제’라 비난받을 정도로 (당이) 너무 한쪽으로 몰리는 게 약간 걱정”이라며 “숲은 우거질수록 좋고, 경쟁은 많을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