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선발진 붕괴로 불펜진 과부하…팬들 “이승엽 감독 상황 이해하지만 마운드 운영 문제 있어”
올해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프로에 입단한 김택연은 입단 첫해부터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하면서 최고의 소방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두산 팬들은 신인인 김택연이 너무 많은 공을 던진다면서 혹사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
김택연이 시즌 초부터 잘 던진 건 아니었다. 3월 23일 프로 데뷔전이었던 NC전에서 1이닝 2실점으로 프로의 쓴맛을 봤다. 이후 두 차례 더 등판 기회를 갖고 조정기를 갖기 위해 2군으로 내려갔다가 열흘 만에 1군에 복귀했다. 2군 경험이 도움이 된 건지 1군 복귀 후 김택연은 반등세를 나타냈다. 첫 30경기에서 2승 4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2.64를 기록하자 이승엽 감독은 6월부터 정철원, 홍건희가 버티지 못한 마무리 자리에 김택연을 내세웠다.
김택연은 8월 29일 현재 54경기 3승 2패 17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2.20을 기록하며 ‘특급 신인’으로 거듭났다.
시즌 초반에만 해도 신인왕 후보에는 황준서, 황영묵(이상 한화), 김범석(LG), 고영우(키움), 박지환(SSG) 등 여러 선수들이 거론됐다. 그러나 마무리 투수로 전환한 김택연은 더 강력해졌고, 젊은 시절의 오승환을 연상시키게 하는 돌직구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일찌감치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신인왕 0순위로 꼽히고 있다.
8월 29일 현재 두산의 불펜 평균자책점은 4.63으로 10개 구단 중 1위다. 그러나 불펜이 소화한 이닝이 527이닝으로 그 또한 1위다. 불펜의 2연투도 128회로 두산이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불펜 과부하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두산의 전반기 불펜 평균자책점이 3.96으로 1위였다면 후반기에는 5.94로 6위에 머물러 있다.
이런 가운데 김택연의 혹사 논란이 들끓고 있다. 김택연은 8월 29일 현재 54경기 57⅓이닝을 소화했다. 이를 시즌 144경기로 환산했을 때 61경기나 마운드에 오른 셈이다. 19세인 김택연의 나이에 60경기 이상 등판했던 선수는 2002년 이동현(78경기), 2011년 임찬규(65경기), 2007년 임태훈(64경기) 등 세 명뿐이다.
김택연은 2023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U-18 야구월드컵 대표팀에서 무려 6경기에 등판해 16이닝 29탈삼진 평균자책점 0.88을 기록하는 동안 5연투를 포함, 247개의 공을 던지며 혹사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로 인해 시즌 개막 전 이승엽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신인 선수 김택연을 40이닝 안에서 관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두산 구단도 지난해 마무리 캠프에서부터 김택연을 특별 관리했다. 두 차례의 하프피칭만 했을 뿐 아예 공을 잡지 못하게 했고, 스프링캠프에서도 천천히 몸을 만들어가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계획은 시즌 개막 후 조금씩 마운드의 균열이 보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부터 두 명의 외국인 투수들이 부상 등으로 장기 이탈하면서 불펜진이 그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스를 기대했던 라울 알칸타라는 팔꿈치 부상 여파로 팀을 떠났고, 브랜든 와델은 7승을 올린 뒤 어깨 통증으로 여전히 재활 중이다. 브랜든의 대체 선수로 활약한 시라카와 게이쇼마저 팔꿈치 통증을 호소해 잔여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 두산과 이별을 고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른 팀들이 힘든 마운드 사정에도 외국인 투수들이 기본 이닝을 소화하고 있을 때 두산은 팀의 원투펀치가 사라지면서 불펜의 과부하가 생겼고, 불펜이 힘겹게 버티며 4위 자리를 붙잡고 있는 모양새다.
두산 팬들도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일찌감치 선발진이 무너진 가운데 어렵게 마운드를 이끌어가는 이승엽 감독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과도한 이닝 쪼개기와 김택연, 이병헌 등 나이 어린 선수들을 지나치게 많이 올려 보내는 마운드 운영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김택연은 미디어와의 인터뷰 때마다 자신한테 제기되는 혹사 논란 관련해서 몸 상태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외부의 시선과는 온도 차가 있다.
장성호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은 김택연의 올 시즌 활약과 관련해서 “이닝 수보다 투구 수가 많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2024시즌 구원투수들의 투구 수를 살펴보면 1위가 노경은(SSG)으로 1177구를 소화했다. 2위는 김민수(KT) 1160구, 3위 장현식(KIA) 1117구, 4위 김택연(두산) 1103구, 5위 조병현(SSG) 1091구다. 고졸 신인 선수 김택연의 투구 수가 구원 투수 전체 4위다.
“그동안 어린 선수들이 프로 입단 후 첫해 지나고 두 번째, 세 번째 시즌에 부상으로 낙마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두산 팬들이 더 크게 걱정하는 것 같다. 김택연의 경기 수나 이닝 수가 엄청 많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팀에서 기준을 정한 후 그 기준을 넘어서면 연투를 허용하지 않는 등 투구 수 관리는 필요해 보인다. 두산이 선발진 공백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5강 싸움을 하고 있어 이승엽 감독도 고민이 컸을 텐데 두산이 현재 다른 팀보다 잔여 경기 수가 적은 건 정말 다행이다.”
한편 두산의 박정배 불펜코치는 김택연의 혹사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김택연한테 항상 얘기하는 게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절대 참지 말고 바로 말해 달라고 한다. 지금 쉰다고 해서 너한테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참지 말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김택연이 시즌 전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많이 던졌다. 김택연뿐 아니라 선발 자리에 공백이 생기면서 불펜 투수들이 힘들었다. 그래서 감독님을 포함해 코치들, 트레이닝 파트 모두 선수들의 몸 상태를 예의 주시하며 신경을 쓰는 중이다.”
박정배 코치는 자신도 선수 생활하는 동안 부상으로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도 아마추어 때부터 프로 와서 많이 아팠기 때문에 부상 관리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오랫동안 선수 생활하려면 충분히 휴식을 주고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러나 팀 운영을 하다 보면 외국인 투수 두 명한테 동시에 문제가 생기거나 선발진에 공백이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더라. 이런 가운데 긴 시즌을 치르다 보니 시즌 전 예상하지 못했던 팀 운영을 하게 되는데 감독님도 이런 상황을 많이 고민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두산은 8월 29일 기준 4위로 3위 LG, 5위 KT와 각각 2경기 차라 정규시즌 마지막까지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127경기를 소화한 두산은 17경기만 남겨두고 있어 포스트시즌 진출 향방이 갈리는 남은 경기에서 어떤 흐름을 이어갈지 궁금할 따름이다. 10개 구단 중 불펜 의존도가 가장 높고 투수 교체가 잦은 두산이 불펜진 과부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