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 브랜드 마케팅 없고 대부분 OEM 통해 생산…“K-콘텐츠 위상 맞춰 과감한 투자 필요”
‘K-뷰티’ ‘K-콘텐츠’ ‘K-푸드’ 등 우리나라 문화가 세계 시장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지만 ‘K-의류’만은 찾기 힘들다. 지난해 브랜드 평가 컨설팅 기관 ‘브랜드 파이낸스’가 공개한 ‘세계에서 가치가 높은 브랜드 50’ 리스트에 따르면 1위는 ‘나이키’(미국)다. 2위 루이비통(프랑스) 3위 샤넬(프랑스) 4위 구찌(이탈리아) 5위 아디다스(독일)가 그 뒤를 이었다. 아시아권에선 유니클로(일본) 12위, 안타(중국) 26위, 리닝(중국) 42위, 파우첸(중국) 43위 등이 50위 안에 들었다. 우리나라 브랜드 중엔 휠라가 34위로 유일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 LF, 한섬, 코오롱FnC, 신세계인터내셔널 등 5대 패션 대기업의 의류 브랜드는 없었다.
의류업계에선 지금은 물론 앞으로 수십 년이 흘러도 우리나라 의류 브랜드가 해외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오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무엇보다 국내 의류 대기업이 해외 명품 브랜드들처럼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의류업계에선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라가려면 브랜드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송승렬 컴파씨 대표는 “우리나라는 서양보다 의류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이 짧다. 명품이나 명품에 준하려면 가치가 있어야 하고, 가치는 막강한 자금력과 지속적 투자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의류 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의류업계 한 관계자는 “하루아침에 명품 반열에 오를 수는 없다”며 “수년간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대부분 국내 기업 의류 브랜드는 당장 흑자를 달성해야 한다는 데 매달려 브랜드 마케팅에는 소홀하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오너들도 자신의 임기 동안 실적 올리는 데 집중하기에 적자낼 것을 각오하고 의류 브랜드 마케팅을 하진 않는다”고 귀띔했다.
최대한 싼 값에 의류를 생산하려는 시장 분위기도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의류업계에서는 지적한다. 우리나라 대부분 의류 대기업은 의류를 직접 생산하기보다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생산한다. OEM 업체들은 자체 매출을 위해 원가절감에 집중한다. 저렴한 원단을 사용하거나 동남아에 진출해 인건비를 낮춘다. 헤리티지(유산)를 중시하는 명품 브랜드와 다른 행보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품질을 타협하지 않는다’는 기조하에 200년간 장인과 예술가를 동원해 가방·의류 등을 제작한다. 지난해 말 기준 에르메스에는 7300명의 장인이 소속돼 근무하고 있다. 2021년 9월엔 프랑스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에르메스 기술 트레이닝 센터’를 열고 장인들을 양성하고 있다.
의류업계 다른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유행에 민감해 트렌드 변화가 빠르기도 하고 또 자체적으로 엄선 제작하기보다 저렴한 형태의 OEM을 통해 생산하다보니 품질이 명품 반열에 오를 만큼 뛰어나지도 않다”며 “국내 의류 브랜드 이미지는 명품보다 ‘가성비’에 치우쳐 있다”고 덧붙였다.
의류산업이 실제로는 높은 부가가치를 지녔기에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제기된다. 하지수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건설·반도체·원자력 등에 중장기적 로드맵을 갖고 인재 양성 및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반면 의류·패션산업에 경제적·산업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인 이재경 변호사는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K-콘텐츠에 국내 의류 브랜드들을 보여주면서 더 많이 알릴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의류 브랜드의 홍보와 발전을 위해선 국가 지원도 있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류경옥 장안대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2000년대 초 일본은 자체 의류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디자이너를 지원한 바 있다”며 “대기업은 자본이 있으니 자체적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정부에서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육성해 이들이 수년, 수십 년 후 국내 브랜드가 명품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수 교수는 “학문적 접근보다 디자인 노하우를 체득해 의류산업 발전을 이끌 인재 발굴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