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 투약 등으로 징역 선고…두산 소속 현역 선수 8명 대리처방 연루돼 출전 정지 중
스포츠계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불거진 전 야구선수 오재원의 마약 투약 사례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2022년 은퇴하기 전까지 두산 베어스와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오재원은 마약류 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7월에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선 징역 2년 6월이 선고됐다. 검찰은 판결이 가볍다고 판단해 항소장을 제출했고 오재원 측 역시 1심 결과에 불복하며 항소했다.
오재원은 선수 시절 특유의 허슬 플레이, 격한 감정 표현 등으로 이슈의 중심에 자주 오르내렸다. 유별난 자신만의 스타일에 야구팬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선수였다. 반면 국가대표팀에서 활약은 모두의 환호를 이끌기도 했다.
그라운드를 떠난 뒤에도 '트러블 메이커' 기질은 다분했다. 은퇴 이후 가장 먼저 전한 소식은 기획사와 계약이었다. 곧 방송사 야구 해설위원 활동도 이어졌다. 중계석에서도 선수 시절과 같이 호불호가 갈리는 면모는 지속됐다. 개성 넘치는 해설에 평가가 엇갈렸다.
해설위원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시범경기부터 중계석에 앉은 그는 약 3개월 만에 선수와 갈등, 특정 팀을 선호하는 듯한 '편파 해설' 논란 등으로 마이크를 내려놨다. 그사이 한 유튜브 영상에서 "나는 코리안 특급이 너무 싫다"는 말과 함께 대선배 박찬호를 저격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후 이렇다 할 대외활동이 없던 그는 마약으로 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24년 3월 경찰은 오재원을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오재원이 2022년과 2023년 11월에도 스틸녹스(졸피뎀 성분의 수면 유도제)를 대리처방 받았다가 기소 유예를 받은 과거까지 드러났다.
이미 경찰은 제보 등으로 오재원의 마약 혐의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해설위원 활동 중 이례적으로 모발을 밝은 색으로 탈색해 눈길을 끌었는데 이 또한 불시에 이뤄질 수 있는 마약 검사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는 체포 이후 최초 간이시약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꼬리가 밟힌 것은 이전부터 확보해 둔 경찰의 증거 덕이었다. 오재원은 함께 마약을 투약했던 지인의 아파트 소화전에 마약 투약에 사용한 주사기 등을 숨겨뒀다. 아파트 소방 점검에서 주사기가 발견됐고 경찰 신고가 이뤄졌다. 경찰은 이후 주사기에 남은 DNA와 오재원의 DNA를 비교했고 결국 오재원은 긴급 체포됐다. 이전까지 발뺌하던 그도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재원의 마약 투약은 개인의 일탈로 끝나지 않았다. 그 여파가 KBO리그를 강타했다. 필로폰 투약은 리그와 직접적 연관이 없었으나 수면제 대리처방에 동료 선수들이 연루된 것이 알려졌다. 자연스레 시선은 두산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오재원은 2007~2022년 두산 베어스 한 팀에서만 활약했다. 같은 팀에서 대리처방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였다. 두산 구단은 자체 조사를 통해 대리 처방에 가담한 현역 선수 8명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은퇴 선수 포함 총 13명을 조사했다.
오재원이 대리처방을 하는 과정이 일부 공개돼 더 큰 논란을 낳았다. 대리처방이 이뤄진 2021년과 2022년, 오재원은 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참급에 속했다. 후배들에게 대리처방을 강요하며 욕설과 폭행 등을 동반한 것이 전해졌다. 오재원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경우 보복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두산 구단은 야구팬, 리그 구성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선수협 회장을 맡은 김현수는 후배가 선배의 강요를 뿌리칠 수 없었던 상황을 꼬집으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라. 선수협이 도움을 주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대리처방의 여파는 적지 않았다. 당초 연루된 두산 소속 현역 선수 8명은 강요에 의해 대리처방에 임했고 경찰 조사에도 성실하게 임했기에 징계 조치는 추후 이뤄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건의 무게가 더해지며 이들은 1군은 물론 2군 경기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5월부터 3개월이 넘도록 대기만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들 모두 검찰에 송치돼 있기에 언제 경기장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다. 구단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만 남겼다. 이들이 법적 처벌을 받는다면 KBO 차원의 징계도 이어질 수 있다. 구단으로선 전력 손실이 적지 않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두산의 성적도 좋지 않다. 이승엽 감독 2년 차를 맞은 두산은 전반기까지는 순항했다. 7월 초까지 이따금씩 2위에 오르며 상위권을 지켰다. 한때는 꾸준히 선두를 달리는 KIA의 자리를 넘볼 정도였다.
7월 중순부터 내리막을 걸었다. 최근 한 달 이상 4위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가을야구 마지노선인 5위 자리도 장담할 수 없다. 최근 10경기 2승 8패로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아래 순위 팀들의 추격이 거세다. 9월 5일 기준으로 5위 KT와 0.5게임차, 6위 한화와 1.5게임 차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대리처방 사태가 팀의 부진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8명 중에는 1군에서도 쓰임새가 적지 않은 선수도 포함돼 있다. 그는 "시즌이 거듭되며 두산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선수단 체력 문제를 무시하기 어렵다"면서 "이번 여름이 유난히 덥지 않았나. 대리처방 사건이 아니었다면 선수단을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당연히 선수단 뎁스가 얇아질 수밖에 없었다. 확대 엔트리가 시행됐지만 가용 자원이 적은 두산에는 얼마나 득이 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