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선수로부터 받은 20만 위안 해명이 우선…수사 당국의 가족 협박 사실 FIFA 등 통해 공론화 필요
9월 10일 중국축구협회가 손준호에게 영구제명 징계를 내렸다. 승부조작을 통한 불법 이익을 취했다는 취지였다. 중국축구협회는 징계 내용을 FIFA와 AFC(아시아축구연맹)에 통보했다. 10개월간 중국에 구류됐던 손준호는 석방 이후 또 다른 대위기를 맞았다.
9월 11일 손준호는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손준호는 “중국 공안 조사는 강압적이었다”면서 “아내와 아이들 등 가족을 들먹인 협박에 거짓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손준호는 “승부조작 가담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면서 “조사 과정에서 나온 음성 파일을 중국 공안에 요구했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이후 손준호를 둘러싼 의구심이 증폭됐다. 손준호가 조선족 축구선수 진징다오로부터 받은 20만 위안에 대한 경위와 관련해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말한 까닭이다. 이 발언으로 손준호에 대한 동정여론마저 차갑게 식은 상태다.
손준호가 중국에서 받은 혐의는 ‘비국가공작인원 수뢰죄’다. 정부 기관이 아닌 기업 또는 기타 단위에 소속된 사람이 직무상 편리를 이용해 타인의 재물을 불법으로 수수한 경우 등에 적용된다.
손준호에게 20만 위안을 준 진징다오는 승부조작과 불법 베팅 혐의 등으로 공안에 붙잡혔다. 손준호가 중국에서 10개월 동안 구금됐던 이유도 진징다오를 둘러싼 각종 혐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수사당국은 2022년 1월 상하이 하이강과의 경기에서 손준호가 승부조작에 가담한 뒤 20만 위안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수사에 돌입했다.
그동안 손준호 측은 승부조작 가담 의혹이나 산둥 타이산 이적 과정서 금품이 오갔다는 의혹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2024년 3월 손준호가 전격 석방되면서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9월 들어 중국축구협회가 손준호에 대한 영구제명 징계를 내리며 상황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손준호는 자신의 혐의를 소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20만 위안이 손준호 선수생명을 좌우할 핵심 키워드다. 동료 선수 진징다오로부터 돈을 받은 이유를 소명해야 했지만, 손준호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손준호가 금품거래에 대한 명확한 증거나 해명을 내놓지 않으면, 선수생명에 종지부가 찍힐 가능성이 높다.
중국 당국에서 ‘부당 수사’를 받고 수년 동안 구류된 경험이 있는 이 아무개 씨는 “손준호가 본인이 수수한 금전 20만 위안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라면서 “본인의 선수 생명이 걸려 있는 만큼, 승부조작 등 범죄 혐의점과 관련이 없다면 미스터리를 해명해야 한다. 그 다음 중국 수사 당국의 부당한 처사를 FIFA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씨는 “손준호가 중국 당국으로부터 수사를 받고 구금된 사건은 축구선수인 본인으로서도 중요한 문제지만, 국제 인권적으로도 상당히 무게감 있는 사안”이라면서 “중국 당국이 연좌제 방식으로 가족을 협박하는 실상을 알린다면,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해서도 충분히 합리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본인이 중국 감옥에 수감돼 있는 동안 직접 보고 들었던 ‘연좌제 수사 방식’ 사례를 열거했다. 이 씨에 따르면 중국 수사 당국은 고위 당국자는 물론 외국인에게도 가족 신변을 볼모로 자백을 받아내는 형식의 수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이 씨가 마주했던 첫 번째 사례다.
“수사 당국이 2002년 중국 랴오닝성 고급법원장을 체포해 수뢰 혐의로 심문한 적이 있다. 중국은 2심제이기 때문에 지방 고급법원장은 우리나라로 치면 대법관급 영향력을 갖는다. 중국 수사당국은 원하는 답변을 얻을 때까지 부인, 아들, 동생 등 가족들을 함께 구속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중국 수사당국이 원하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가족들은 석방됐다. 그 법원장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다음 사례는 중국 법관 이야기였다.
“랴오닝성 고급법원 처장급 법관이 중국 공산당 기율위원회 수뢰 혐의로 심문을 받을 당시, 수사당국이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러자 부인을 감옥에 잡아넣겠다고 했다. 법관은 당국과 형량을 합의하고 원하는 답변을 해줬다. 법관은 5년 형을 선고받았다.”
마지막 사례는 한국인 마약 현행범들에 대한 사례였다.
“한국인 마약사범들 중 중국 현지에서 체포돼 심문을 당하게 되면 중국 수사당국이 달콤한 제안을 한다.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자백만 하면 한국으로 추방시킨다는 제안이다. 제안과 동시에 수사당국은 마약사범들과 동거 중인 현지 여성들을 함께 구속한다. 마약사범들 대부분은 ‘자백 후 추방’ 제안에 응해 자백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나선 중국 현지에서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실제로 많이 목격한 케이스다.”
이 씨는 “가족만 잡아 가두면 다행”이라면서 “혐의자가 구속된 경우 그가 가지고 있던 쓸 만한 물건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다음 내용은 이 씨가 정리한 한 중국인 사업가의 사례다.
“중국인 사업가 한 명이 중국에서 구속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가 수사당국에 조사를 받으러 가니 자신의 사무실 에어컨이 수사관 사무실에서 가동되고 있었다. 본인이 가지고 있던 고급 자전거는 수사당국 국장급 인사가 타고 다닌다고 했다. 사업가는 감옥에 함께 갇힌 사람들에게 ‘거지같은 XX들’이라면서 욕을 했다. 죄인이 가진 물건은 범죄행위로 획득한 물건으로 인식하고 다 몰수하는 것이 중국 수사당국의 수사 방식이다.”
이 씨는 “중국 수사당국이 수사를 하는 방식은 고조선 8조금법과 비슷하다”면서 “사실상 연좌제를 허용하는 수사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이 씨는 “21세기에 자행되고 있는 중국 당국의 불합리한 수사 방식에 대해 손준호가 직접 소명을 하고 국제적으로 공론화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부끄러운 속사정이 있더라도 본인이 20만 위안을 수수한 사유를 명백히 밝힌다면 ‘제2의 손준호’를 막을 수 있다. 훨씬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 씨는 “중국 공안당국 연좌제 수사 심문 방식을 문제 삼으며 실제 일어났던 통계를 바탕으로 FIFA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구제 요청을 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들을 들먹인 중국 당국 수사 방식에 손준호가 거짓 진술을 했다는 내용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나타나 있는 자료엔 20만 위안을 수령한 사실이 명시돼 있는 상황이다. 이 돈을 받은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안타까운 상황이다.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든 이 돈을 받은 이유가 승부조작과 무관한 것임을 소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선수생명이 걸려 있는 싸움에 돌입할 수 있다.”
중국 한 소식통은 “중국 현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가족과 함께 중국에 거주할 경우 가족 신변을 볼모로 협박하거나 실제 구속을 하는 것이 중국 공안 당국의 교과서적 심문 방식인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손준호가 20만 위안을 수수한 것도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말 손준호가 승부조작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중국 기준으로 보면 형량이 상당히 낮다는 의구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손준호가 중국 당국에 판결문을 요청한 부분도 미스터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법원에서 외국인을 재판할 땐 반드시 통역을 제공한다. 판결문은 중국어, 한글 번역본까지 모두 준다. 피고인은 물론, 영사관에도 판결문을 제공한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절차는 철저하게 준수하는 편이다.”
9월 12일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2024년 3월 중국 사법기관은 한국 시민 손준호의 비국가공작인원 수뢰 혐의 사건 공개 판결을 내렸다”면서 “재판에서 손준호는 유죄를 인정했고 반성했다”고 했다.
마오닝 대변인은 “손준호는 항소하지 않았다”면서 “중국은 법치국가이며, 사법기관은 법에 따라 사건을 엄격히 처리하고 당사자의 정당한 권익을 충분히 보장한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