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신입 변호사’의 성장일기 “미움 받으면 안 되는 한유리, 장나라 선배님 덕에 갈피 잡아”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대형 로펌 대정에 들어가 거대 분쟁을 조율하는 ‘멋진 일’을 꿈꿔왔던 신입 변호사 한유리는 꿈에도 그려본 적 없는 이혼팀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변호사’에 맞지 않는 직속상사 차은경 변호사(장나라 분)와 매번 부딪치게 된다. “의뢰인에게 최선의 결과를 선사한다”는 모토에 맞춰 의뢰인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모두 들어주고, 상대의 약한 틈을 대놓고 공격하는 차은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종종 정면으로 들이받기도 하는 한유리는 신입다운 열정을 갖췄지만 동시에 답답하리만치 융통성이 없는 인물로 비춰지기도 한다. 남지현 역시 한유리의 이 지점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걱정했었다고 털어놨다.
“유리는 융통성이 많지 않고 은경이만큼 시야가 넓지 않은데도 뚜렷한 신념을 가져서 주변과 많이 부딪쳐요. 자칫 잘못하면 미워 보일 수 있는데 스토리상 미움을 받으면 안 되다 보니 표현에 고민이 많았죠. 그러다 장나라 선배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는 은경이가 너무 이해되고 멋있고 좋아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선배님이 ‘난 한유리 같은 사람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것 같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자마자 일말의 망설임이나 고민하던 것들이 싹 사라지고 ‘와, 나 그냥 (연기)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유리를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 거예요. 그 덕분에 ‘불도저 한유리’로 갈 수 있었죠(웃음).”

더욱이 문제의 에피소드로 뿔난 시청자들의 거센 반발을 마주한 직후에 2024 파리 올림픽이 겹치면서 3주간 결방에 들어가기까지 해야 했다. 남지현은 “시청자 분들의 그런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지금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때는 정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던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실 저희도 그 회차가 끝나고 시청자 분들의 쓴 소리를 보며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겠다, 우리가 그런 걸 놓쳤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결방을 해 버렸잖아요(웃음). 그 기간 동안 10~11부를 촬영 중이었는데 저희는 유리와 은호가 어떻게 관계를 메워갈지 알고 있었으니까 ‘다들 잘 봐주시겠지?’하고 있었는데 쓴 소리가 막(웃음)! 그래서 정말 걱정이 많았어요. 3주 동안 보여드릴 수가 없으니 ‘큰일이다, 어떡하지, 잘 봐주세요’ 그러고 있었죠. 너무 미워하시면 어떡하나 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조금은 잘 받아주셨던 것 같아요(웃음).”

“제가 종영 뒷풀이 때 지승현 선배님께 ‘왜 그런 것(대국민사과)까지 잘하셨어요’ 하니까 ‘이제 마음이 너무 편하다’ 그러시더라고요(웃음). 유리 입장에서 김지상은 가차없이 외면할 수 있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 은경은 직장 상사다 보니 곤란하면서도 안쓰러운 복합적인 감정이 있는데 지상은 그의 불륜 상대인 최사라(한재이 분)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자비 없이 외면할 수 있었죠. 그래서 지상, 사라와 얘기할 땐 무미건조한 모습이 많이 보이도록 노력했어요. 이들에겐 용서할 마음도, 에너지도 쓰고 싶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실제 지승현 선배님과 한재이 배우님은 너무 재밌고 귀여우신 분이에요(웃음).”
몇 차례의 이혼 소송을 경험하며 한유리는 미워하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와 그의 불륜 상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그들의 잘못을 잊지는 않아도 이를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애든 결혼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결국 어떤 결말을 맞아도 누군가의 성장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유리 역시 실패할 수도 있음을 알더라도 전은호와의 ‘연애’라는 모험을 택한 셈인데, 결말에서 그의 ‘프로포즈’에 대해서 남지현은 “열려있는 결말”이라며 시청자들에게 상상의 문을 열어뒀다.

이렇게 시청자들과 함께 울고, 웃고, 화내다가도 공감했던 ‘굿파트너’로 극중 한유리가 그랬듯 몇 계단을 훌쩍 뛰어넘어 성장한 기분이라는 남지현은 올해로 딱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마침 나이로도 30대의 초입에 접어들면서 배우 남지현이자 인간 남지현으로서도 여러 소회를 느낀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20대 때는 아역 배우를 벗어나서 제가 이제 컸다는 걸 보여드리는 게 목표였어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대를 통째로 보냈었죠(웃음). 그때 장르물로 흘러들어오면서 이렇게 ‘굿파트너’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저는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두려움이 기본적으로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아마 대중들은 저를 밝고 명랑한 이미지로 많이 바라봐 주실 텐데 저는 그것 외에도 훨씬 다채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역할이 주어졌을 때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 ‘쟤한테는 저런 색이 없을 것 같은데?’ 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있거든요(웃음). 그래서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제 스스로가 준비만 돼 있다면 망설임없이 바로 선택하게 되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거고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