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선수 출신 1호 감독 영광…좋은 기운으로 우승까지 하겠다”
NC 다이노스의 제4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이호준 감독은 ‘준비된 지도자’다. 선수 생활 은퇴 후 단 한 차례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선수들과 함께 호흡했다.
이 감독은 2013~2017년 팀의 리더로 활약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1년간 코치 연수를 받은 다음 2019년 NC 타격코치로 복귀해 2020시즌 NC의 창단 첫 통합 우승에 기여했다. 2021년까지 NC에 몸담았던 이 감독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LG 트윈스에서 타격코치, 퀄리티 컨트롤 코치, 수석코치 역할을 맡았고, LG의 포스트시즌이 끝난 다음 NC 구단과 면접을 한 뒤 계약 기간 3년 총액 14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9억 5000만 원, 인센티브 1억 5000만 원)에 NC 감독으로 선임됐다.
10월 24일 창원NC파크에서 이호준 감독을 만났다. 이 감독과 인터뷰를 정리한다.
“확실하지 않은데 LG에 있었던 코치들 중 감독이 된 게 내가 1호라고 들었다. NC 출신 선수로도 1호 감독이고. 이렇게 ‘1’자가 많이 붙으니 영광이다. 좋은 기운으로 우승까지 이뤘으면 좋겠다.”
인터뷰 시작부터 연신 호탕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이호준 감독한테 NC 구단으로부터 감독 면접 관련해서 처음 연락을 받은 게 언제인지 물었다. 참고로 LG의 플레이오프는 19일 삼성과의 5차전 패배로 마무리됐고, 20일 낮에 기자가 코치 이호준과 통화했을 때 그는 “NC로부터 연락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다. 그때까지 연락이 없었다. 약간 힌트라도 줄 법했는데 어떠한 메시지도 없었다. NC 구단에 아는 직원들도 많은데 단 한 사람도 내게 안부 인사조차 안 하더라. 그래서 내가 감독 후보 명단에 없는 줄 알았다.”
이 감독은 다른 팀도 아닌 NC의 감독 자리는 솔직히 욕심이 났다고 고백한다.
“NC의 창단 멤버로 코치를 하면서 창단 첫 우승까지 경험했다. 누구보다 이 팀에 대한 애착이 강한 터라 나만큼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이번에는 정말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다가 ‘또 안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도 많이 했다. 지난해 경험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SSG 감독설) 이번 겨울 또 다시 지인들의 위로를 받으며 보내면 창피하겠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다 막상 감독 선임이 되고 나니까 막 기쁘기보다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생기더라. 그렇게 간절하게 하고 싶었는데 공식 발표가 난 이후에 더 조심스러워졌다.”
NC 다이노스 제4대 감독에 오른 이호준은 새로운 고민을 떠안았다. 자신이 면접 때 말한 내용들을 선수단 운영에 적용시키고, 결과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였다. 그 무거운 현실이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다가왔고, 들뜬 분위기를 침착하게 만들었다.
이 감독은 NC 임선남 단장의 연락을 받고 면접 보러 가면서 LG 차명석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다. 면접 후에는 염경엽 감독한테 면접 본 사실을 전했다. 아직 면접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차 단장과 염 감독은 새로운 출발선에 오를 이 감독에게 진심을 담아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2018시즌 도중 김경문 감독이 사퇴하고 유영준 감독대행이 팀을 이끌 당시 차기 감독은 이호준이라는 소문이 나돈 적이 있었다. 그때 이 감독은 선수 생활 은퇴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는 중이었다. 물론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고, 수비코치를 맡았던 이동욱 감독이 제2대 사령탑에 올랐고, 이호준은 일본에서 돌아와 타격코치로 팀에 힘을 보탰다.
“만약 그때 내가 감독이 됐다면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라 바로 망했을 것이다. 코치 경험들이 쌓이고, 수석코치로도 감독님을 모시면서 야구를 보는 시야가 풍부해졌다. 그 시간들이 감독이 돼 팀을 이끌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선수로, 코치로 여러 감독님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분들이 나의 조력자이자 스승님들이다. SK 시절의 김성근 감독님, 조범현 감독님한테 전화를 드려 NC 감독을 맡게 됐다고 말씀드렸더니 당신들의 경험이 담긴 조언들을 많이 해주셨다. 스승님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잘해내고 싶다.”
이 감독은 선수 생활 은퇴할 무렵 각 방송사 해설위원 영입 0순위로 꼽힐 만큼 화려한 언변을 자랑한다. 은퇴 후 방송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해도 될 만큼 당시 방송계의 블루칩으로 평가받았지만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방송사의 영입 제안이 많았던 터라 흔들리기도 했다. 방송사의 유혹을 뿌리치고 지도자로 방향을 튼 건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선수 시절부터 야구 감독이 꿈이었고, 은퇴하면서 그 꿈이 분명해졌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꼭 감독을 할 것만 같았다. 그 꿈을 버리기 싫어서 해설위원이 아닌 코치 연수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는 한 시즌에 불과했지만 이 감독은 당시 그곳에서 경험이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연수를 갔던 건 일본 야구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스프링캠프에 합류해서 2, 3군 선수들을 보는데 코치들이 기본기 훈련에만 집중했다. 뭔가 거창한 야구를 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운 야구의 기본적인 운동을 매우 세밀한 방법으로 반복 훈련을 했다. 그 장면들이 내게 충격을 안겨줬다. 그렇게 기본기 훈련을 받은 선수들 중에서 수비하다 실책하는 선수들이 거의 없었다. 송구 실책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동작들이 몸에 배어 있는 자연스러운 움직임들이었다.”
나이 어린 선수들이 모여 있는 요미우리 2, 3군 선수단은 생활 규칙이 철저했다. 원정 경기 갈 때는 정장 차림으로 이동하고, 숙소 생활할 때 외박 금지였고 외출할 때는 저녁 11시까지 귀가해야 했다. 숙소에는 사감이 돌아다니고, 원정 호텔에서는 엘리베이터 앞에 보안요원이 있어 선수들의 늦은 시간 외출을 막았다. 구단은 나이 어린 선수들이 어느 정도 통제 속에서 생활해야 1군 데뷔 후 프로 선수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호준 감독은 그런 구단의 방침을 어기지 않고 잘 따르는 선수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만약 내가 NC 선수들에게 그런 걸 강요하면 바로 ‘꼰대’ 소리 들을 것이다. 그렇게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살아 있는 눈빛으로 훈련에 집중하고, 질문하면 대답이 바로 나오고, 아침에 얼굴 보면 가볍게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잘나가는 팀들의 선수 구성을 보면 신구 조화가 잘 이뤄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감독은 고참과 젊은 선수들의 호흡도 중요하지만 게임의 리더가 많아야 한다고 해석했다.
“건강한 팀은 ‘베테랑’보다 게임의 리더가 많아야 한다. 지고 있을 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분해서 눈물 흘리는 선수들이 필요하다. 내가 말하는 리더는 나이 많은 선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게임의 리더를 말하는 거다. ‘SK 왕조’ 시절 한 경기에서 7점 차로 뒤지고 있을 때 후배 정근우가 선배들한테 다가와 “형님들! 우리 이거 한 번 뒤집어 봅시다!” 하며 악을 쓰고 달려들었다. 그런 모습이 선배들 마음을 움직였고 7점 차 승부를 뒤집었다. 얼마나 소름 돋는 멋진 장면인가. NC의 더그아웃 분위기가 이렇게 생동감이 넘쳤으면 좋겠다. 그만큼 근성 있는 선수들을 많이 보고 싶다.”
내년부터 이 감독은 선수로 인연을 맺은 김경문 감독과 또 코치로 함께했던 염경엽 감독을 상대 팀 감독으로 만난다.
“김경문 감독님은 내 스승님이다. 스승인 감독님한테 선수 시절 배운 걸 지도자가 돼 잘 활용해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올해까지 모셨던 염경엽 감독님한테는 '역시 호준이는 다른 야구를 하고 있구나'라는 말씀을 듣고 싶다. 그라운드에서는 상대 팀으로 만나지만 같은 야구인이기 때문에 내가 잘해나가는 모습을 보신다면 속으로는 흐뭇해하실 것 같다.”
이 감독이 NC 선수로 활약할 때 막내로 인연을 맺은 박민우가 올 시즌까지 주장을 맡았다. 이 감독은 일본 여행 중인 박민우와 전화로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박민우는 감독 이호준의 전화에 귀국 일정을 앞당겨 들어오겠다고 말했단다. 이 감독은 “난 분명 그럴 필요 없다고 했는데 민우가 굳이 빨리 귀국하겠다고 해서 오면 밥이나 먹자고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한테도 전화를 돌리고 있는데 전화를 걸 때마다 선수들이 “감독님 이미 방망이 잡고 훈련 중입니다”라고 답을 해 폭소가 터졌다는 말도 덧붙인다. NC를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 NC를 정말 사랑하는 지도자의 복귀를 가장 반기고 환영하는 이들은 바로 NC 선수들이었다.
경남 창원=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