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광복절 축사 “반국가세력” 극우 유튜버 주장과 닮은꼴…김용현 주축 충암파, 지휘관들 포섭 정황도
#윤석열 입에서 나온 계엄 전조 현상
윤석열 대통령 8·15 광복절 축사는 비상계엄령 음모론의 시작이었다.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을 거론하며 이들에게 굴복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엄 1타 강사’를 자처하며 ‘윤석열 계엄 선포 괴담’ 유포에 앞장섰다. 김 의원은 8·15 광복절 축사에서 ‘반국가세력’을 언급한 대목을 보고 계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 우울증과 분노 조절 장애’가 있다고 했다. 여권과 언론은 물론 야권 내부에서도 음모론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12월 3일 윤 대통령이 실제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김 의원 주장은 대부분 사실이 됐다.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이 직접 계엄 포고문을 손봤다고 했다. 포고문에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라는 문구가 나온다. ‘반국가세력’을 자주 언급한 윤 대통령의 생각이 투영된 대목으로 풀이된다.
계엄 직후 윤 대통령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않다는 의혹도 잇따랐다. 12월 12일 대국민담화는 이 같은 의혹을 증폭시켰다. 윤 대통령은 계엄령이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 행위’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게 있느냐’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게 폭동이냐’ 등 궤변을 쏟아냈다.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 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는 대목도 나온다.
이 같은 윤 대통령 발언은 극우 유튜버들이 자주 사용하는 논리다. 특히 ‘부정선거론’은 단골 주제다. 이에 국내외에서는 윤 대통령이 과도하게 극우 유튜버에 심취해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마쓰무라 고로 전 통합 막료 부장(한국의 합동참모본부 차장 격)은 아사히신문에 윤 대통령이 ‘에코쳄버’ 상태라고 말했다. 위기에 몰리자 극우 유튜브를 보면서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게 됐고, 그 결과 종합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관련기사 ‘부정선거’ 믿은 거야? 윤석열 대통령 ‘정신 건강’ 괜찮나).
판단력이 흐려진 건 잦은 음주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대국민담화가 나온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들리는 말로는 거의 매일 밤 새벽까지 마셨다더라, 그러니까 판단력이 옛날에 흐려졌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술을 그렇게 먹고 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나”라고 꼬집었다. 김 의원의 근거 없는 의혹이 신빙성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새다. 김민석 의원의 음모론이 점점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충암파’ 주도 사전 모의
‘충암파’가 군을 장악했다는 주장도 음모론으로 치부됐다. 충암파는 충암고 졸업자들로 구성된 윤 대통령의 충성파 조직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충암파로 알려진 인사들은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박종선 전 777사령관 등이 핵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세영 서울경찰청 101경비단장도 충암고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101경비단은 대통령실 경호·경비를 담당한다. 경찰대 출신이 아닌 간부후보생 출신이 101경비단장에 임명된 것은 2015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충암파 좌장 격인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의 국방장관 임명은 계엄선포 서막으로 해석된다. 김 전 장관 임명으로 사실상 충암파가 군을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충암파의 존재를 부정했다. 장성 400명 중 4명만이 충암고 출신이라고 했다.
그러나 충암파가 있는 부대에서 이상징후가 포착됐다. 앞서 윤 대통령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보사)의 명칭을 국군방첩사령부로 개정했다. 방첩사는 부대의 역사 계승을 명목으로 전두환 노태우 씨 사진을 복도에 걸었다. 방첩사는 ‘전체적인 역사를 다시 읽자는 의미’라며 두 사람의 사진을 내리는 것을 거부했다. 여인형 전 사령관은 2처장 산하 ‘방첩수사실’을 사령관 직속 ‘방첩수사단’으로 승격하는 직제개편을 단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기능을 장악한 셈이다.
다른 주요 지휘관들을 포섭하기 위한 물밑작업이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이른바 ‘한남동 공관 회동’ 의혹이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9월 2일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김용현 전 장관이 여인형 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을 한남동 대통령 경호처장 공관으로 호출했다고 밝혔다. 이 회동에서 계엄령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후보자가 과거 군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처럼 충암파를 형성해 위세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김 전 장관은 지금 시대에서 계엄령 시도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김 전 장관 답변은 거짓말이었다. 계엄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내용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계엄 전 김명수 합참 의장을 찾아가 북한에 ‘경고 사격 후 원점 타격’을 지시했다. 합참은 이 명령을 거부했다. 평양에 무인기 정찰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을 자극해 국지전을 일으키고, 이를 명분으로 계엄령을 내리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박선원 의원은 여인형 전 사령관의 방첩사령부가 실무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군사적인 대응을 내놓지 않았다.
윤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한 사람도 김 전 장관이다. 충암고 후배인 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다. 한남동 공관 회동 배석자들의 부대가 계엄군으로 동원됐다. 현재까지 밝혀진 동원 부대는 국군 정보사령부 예하 육군첩보부대,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제707특수임무단, 제1공수특전여단, 제3공수특전여단,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제1경비단 제35특수임무대대, 육군항공작전사령부 특수작전항공단 등이다. 전후방 주요 부대도 대기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인형 전 사령관은 휘하에 있는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에게 수도방위사령부 지하 벙커를 확인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체포된 국회의원들을 가둘 장소였다. 그는 현직 판사에 대한 위치추적을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 요청했다. 이 판사는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김동현 부장판사로 추정된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여 전 사령관은 방첩사 계엄 사전기획설은 사실무근이고, 맞고 틀리고를 떠나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작년 말부터 비상조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는 충암고가 주축이 된 비상계엄을 2시간 만에 종료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계엄군은 적극적인 임무 수행을 주저했다. 일부 현장 지휘관들은 실탄 지급을 거부했고, 물리적 충돌 자제를 명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내부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채 투입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은 기자회견에서 국회 구조 파악을 위해 ‘티맵’을 이용했다고 폭로했다. 극소수만이 계엄령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충암고 라인이 요직에 임명됐지만, 군 전체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관련기사 이럴려고 작전통 김용현 픽했나…군 요직 장악 ‘충암파’ 리스크 대폭발).
계엄 주축이 된 충암파와 군경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보직 해임됐다. 비상계엄을 주도한 김용현 전 장관은 내란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극단 선택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박안수 전 총장, 여인형 전 사령관, 이진우 전 사령관, 곽종근 전 사령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은 직무 정지됐다. 이상현 특전사 제1공수여단장, 김정근 제3공수여단장, 안무성 제9공수여단장, 김세운 특수작전항공단장,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 김창학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 등은 출국 금지됐다. 충암파를 주축으로 한 일부 수뇌부의 오판으로 군 위신이 날개 없이 추락하는 모습이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