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 갖춘 킹메이커 호평 받으며 일찌감치 낙점…‘친윤’ 분류, 당내 화합 이끌어낼지는 물음표
#일찌감치 '권'으로
당초 권성동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직하는 원톱 체제가 유력했다.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도 12월 17일 “내부 인사로 해야 한다는 안이 하나, 권 권한대행이 비대위원장을 맡아서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두 가지 안이 있다”고 확인해줬다. 김 대변인 발언 전날 4선 이상 중진 회동에서 당의 안정과 화합을 위해 경륜이 있는 내부 인사가 비대위원장에 적합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는데, 권 원내대표가 이런 자격 요건을 갖췄다는 평이 나왔다.
권 원내대표 역시 겸직에 대해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내 ‘권성동 원톱’ 논의는 뒤집혔다. 당 일각에서 ‘도로 친윤당’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쇄신이라는 색깔을 담아야 한다는 의견이 분출하면서다. 원외 쪽으로까지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면서 결국 다자 심사 구도로 흘렀다. 나경원 김기현 의원 등도 비대위원장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했다.
재선·3선·4선 의원들은 12월 20일 선수별 모임을 갖고 원내대표-비대위원장 ‘투톱 체제’로 가는 게 낫다는 결론을 냈다. 재선 모임 간사인 엄태영 의원은 이날 “원 마이크보다는 투 마이크가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석기 의원도 3선 의원 모임을 마치고 “비대위원장이 할 일이 많은데, 원내대표가 혼자 할 경우 업무 과부하가 걸린다”고 했다. 전날 모임을 가진 초선 의원들도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를 분리하는 것이 낫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3선 의원 모임에서는 5선인 권영세 나경원 의원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 4선 의원들은 구체적인 인물을 거론하지 않은 채 ‘경험 많은 원내 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좋겠다고 밝혔고, 재선 의원들은 권 권한대행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처음부터 권영세 의원이 비대위원장에 관심을 보였고 경륜이라는 측면에서 동조하는 의원들이 많아 일찌감치 권 의원이 물망에 올랐고 낙점 대상이었다”며 “하지만 나경원 의원이 이후 적극 가세했고 김기현 의원도 희망을 비침에 따라 잠시 논란이 있었지만 이내 정리됐다”고 전했다.
권 위원장 인선이 확정되고 발표되기 하루 전 ‘권영세 확정’으로 언론에 먼저 나온 것만 봐도 물밑에서는 이미 권 위원장이 일찌감치 비대위원장으로 확정됐다는 증거였다. 김기현 의원은 경쟁에 소극적이었고 나경원 의원은 적극적이었지만 “나 의원은 당 내부 선거마다 너무 자주 나온다”는 피로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했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유승민 전 의원도 개혁 원외 인사로서 한때 거론됐지만 당의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제기됐고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며 “이제 더 이상 실험은 그만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경험과 경륜이 뛰어나면서 수도권 출신으로 중도 여론을 읽는 능력이 출중한 권 의원으로 대세가 기울었다”고 했다.
#백전노장 권, 당내 기대감 많아
국무총리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황교안 전 대표, 법무부 장관을 했고 정치 초보였던 한동훈 전 대표, 국회의원 경험이 없었던 이준석 전 대표 등은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론 실패했다. 이들로 인해 낭패를 봤다는 게 국민의힘 대다수 의원들의 생각이다.
황교안 한동훈 이준석 전 대표는 고비마다 경험 부족으로 실투를 연발하며 대량 실점, 결국 당을 위기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 1호 당원 윤석열 대통령이 불러온 계엄 사태도 지도부 선출에 ‘경험’이라는 키워드를 소환한 핵심 원인이었다.
권 위원장은 당 내에서 손꼽히는 ‘조직통’이다. 향후 있을지 모르는 조기 대선 국면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존재로 당내에서는 받아들인다. 권 위원장은 공안 검사 출신으로 2002년 8월 재보궐 선거(서울 영등포을) 때 승리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8대 국회 때 정보위원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2015년 중국 대사를 역임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당에선 전략기획위원장, 최고위원에 이어 직전 대선까지 세 차례나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 땐 청와대 비서실장 후보군, 윤석열 정부 때도 유력한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될 만큼 조직을 운영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장관직과 대사직을 수행할 때도 큰 파찰음이 나오지 않았다. 공안 검사 출신이 정치인으로서는 약점도 되지만 그에게는 큰 장점으로 불린다. 입이 무겁고 신중한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여권이 권 위원장을 낙점한 가장 큰 이유는 향후 있을 조기 대선 때문이다. 그는 여러 정부를 만든, 보수진영 킹메이커 중 한 명이다. 직전 대선에선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윤 대통령 선거전을 진두지휘했다. 당 대외협력위원장으로서 정당 입당에 소극적이었던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을 성사시키는 역할도 했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오로지 업무 능력으로 인정받았고 박 대통령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 박 전 대통령이 권 위원장을 향해 “종교인 같은 이미지를 받았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일로 승부를 본다’는 기본 원칙을 갖고 있는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던 2012년 중앙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승리를 견인한 전략가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7년에도 당 최고위원으로서 경선 관리에 참여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이 찢어진다”는 경고가 나올 만큼 치열하게 붙었는데 그의 갈등관리가 큰 마찰을 막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선 승자뿐 아니라 패자의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것도 그의 또 다른 장점이다. 권 위원장은 대선 출마 준비를 했다가 중도 낙마했던 2017년 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캠프에도 몸담았다. 충북 음성이 권 위원장 선친 고향인데 반 전 총장도 동향이다. 국회 외교통상위원 시절 각각 장관과 의원으로 마주친 인연이 있어 그는 반 총장을 기꺼이 도왔다.
그를 잘 안다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서울이 지역구라 그동안 영남이 주력인 국민의힘에서 당대표나 원내대표 등 간판 당직에 권 위원장이 오르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제 뒤늦게 간판이 된 만큼 매우 잘할 것”이라고 높은 점수를 줬다.
#풀기 어려운 숙제 가득
당내에선 호평이 많지만 그렇다고 꽃길만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권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통일부 장관을 지낸 ‘친윤’ 인사다. 당의 화합을 이끌 수 있을지에 의문부호가 붙는 이유다. 자신을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한 권성동 원내대표와 함께 당의 투톱으로 전면에 나서게 되면서 야권은 물론 당내 일각에서도 ‘도로 친윤당’이라는 혹평이 나오는 상황이다.
친한(친한동훈)계 박상수 대변인은 12월 25일 BBS 라디오 ‘함인경의 아침저널’에 나가 “한동훈 전 대표를 내쫓다시피 한 친윤 세력을 중심으로, 다시 완벽한 친윤당이 되는 식의 개편을 해놓고 나서 안정과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모순적”이라면서 새 지도부를 때렸다.
권 위원장이 향후 비대위 인사에서 탕평책을 써야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탄핵에 찬성했던 당내 비주류와 한 전 대표를 따랐던 친한계 인사들까지 끌어안아야 진정한 통합형 비대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대위 인선과 별개로 당 혁신기구를 다시 띄우는 한편, 비상계엄에 대한 대국민 사과 등으로 여권에 대한 비판적 여론의 반전을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12월 24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아직 많은 국민이 사과가 부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한 직후에 다시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12월 30일 전국위원회를 거쳐 정식 취임하는데 취임 당일 바로 대국민사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정치는 다양한 목소리와 여러 상황에 기민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해 갈등을 해소한 뒤 열매까지 맺어내는 것”이라며 “과거 정치 신인이 들어와 당을 이끌었을 때와 중진이 지휘할 때는 확실히 다를 것이며 위기 상황에서 당이 차츰 안정을 찾고 혹여 조기 대선이 이뤄지면 정권 재창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