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대표’ 체제서 잦은 교체로 리더십 실종 우려…“돌파구 못 찾으면 특허권 반납할 수도” 관측도
롯데와 신라, 신세계, 현대 등 면세점 기업 ‘빅4’는 지난해 1~3분기 누적 영업손실 1355억 원(합산액)을 기록할 정도로 불황 늪에 빠져 있다. 4분기까지 더하면 영업손실은 2000억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는 한국에 와서 면세점을 잘 찾지 않는다”며 “현지 체험을 선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특히 ‘K-뷰티’를 체험해보고 싶은 외국인들은 면세점 대신 올리브영이나 다이소 같은 헬스앤뷰티(H&B) 전문점에서 자국에 없는 한국 제품을 사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2025 유통산업 전망 세미나’에서 “외국인 쇼핑 장소가 시내 면세점에서 H&B(헬스앤뷰티) 전문점, 즉 올리브영으로 바뀌고 있다”며 “면세점 업계가 실적 부진을 겪는 반면 올리브영의 올해 매출 증가율은 작년 대비 약 30%에 달할 것”이라 전망했다.
HDC신라면세점은 실적 악화 속에 새해 초부터 90억 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며 자금 확보에 나섰다. 지난해에도 총 4회에 걸쳐 65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지난해 10월에는 400억 원의 운영자금 확보를 위한 유상증자도 결정했다.
HDC신라면세점은 2015년 호텔신라 50%, HDC와 HDC아이파크몰이 각각 25%씩 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당시 정부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시내 면세점 3곳을 신설하기로 결정하면서 신규 특허를 취득하기 위해 설립됐다. 호텔신라의 면세점 노하우와 HDC의 용산역 아이파크몰 부지를 내세워 신규특허를 획득했다. 2016년 3월 오픈 후 1년 만에 매출액 3635억 원을 기록했고, 오픈 2년 만인 2017년에는 매출액 6819억 원, 영업이익 53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19년에는 매출이 7694억 원, 영업이익 108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맛보기도 했다.
이후 다른 면세점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실적 악화가 시작됐다. 2020년 HDC신라면세점의 매출은 3777억 원으로 반토막 났다. 274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면세점 업계 큰손인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감소, 쇼핑보다는 체험 중심의 여행 트렌드 확산, 고환율 상황 등이 맞물리며 4년 연속 영업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HDC신라면세점은 실적 악화를 거듭하며 인사 조치도 단행했다. 지난해 8월 직원 희망퇴직을 실행한 데 이어 12월에 공동대표 2명을 모두 교체했다. 지난 수년간 마땅한 경영난 타개책을 못 찾은 상황에서 대표이사 교체 카드를 반복해 회사가 ‘CEO 무덤’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대표이사는 HDC그룹과 호텔신라에서 각각 1명씩 선임해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된다. HDC신라면세점은 재무·인사부문 담당 대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선임, 상품·영업·전략부문 대표는 호텔신라가 선임한다. 현 공동대표는 이완희, 김영훈 대표다. 그동안 HDC현대산업개발 측 대표보다는 호텔신라 측 대표가 자주 교체됐다. 2019~2022년 김회언 대표가 HDC 쪽 대표를 맡는 동안 호텔신라 측에서는 김청환·고선건·김태호·고낙천 총 4명의 대표가 거쳐 갔다. 최근 호텔신라는 유찬 대표를 해임하고 김영훈 신임 대표를 선임했다.
대표이사 교체는 경영난을 겪는 기업들이 쓰는 일반적 문책 인사이긴 하지만 HDC신라면세점은 회사가 혼란해질 정도의 잦은 교체로 다급함을 드러내고 있다. 양사가 공동대표를 세우는 체제여서 더욱 교체 횟수가 많아 보이기도 한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장)는 “면세점 활성화 방안을 고민하면서 각 분야별 강점을 가진 대표들을 선임했다가 성과가 잘 나오지 않으면 다른 전략을 가진 대표를 선임하는 시도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며 “다양한 시도를 지속한 것은 긍정 평가할 수 있으나 근본적 해결 방안이 됐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풀이했다.
내부 직원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임원이 계속 바뀌어 (경영)방향성이 없다’ ‘헤드(대표)가 두 명이다 보니 서로 눈치 보느라 사소한 결정도 못 내려 우왕좌왕한다’ ‘모회사가 두 곳이라 단점만 모여 있다’ ‘동업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회사’ 등 비판적·자조적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업계 전반적 불황에 리더십 부재 등 내부 어려움까지 겹쳐 앞으로 정상적인 경영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비관적 목소리가 들린다.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회사가 올해 말 영업 특허 종료 시점에 맞춰 특허권을 반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HDC신라면세점은 2020년 5월 특허 연장 심사를 통과해 올해 12월을 시한으로 서울 용산역 아이파크몰에서 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HDC신라면세점 관계자는 “특허권 갱신을 앞두고 최근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대표 교체 인사에 대해서는 “매출 때문이 아니라 인사를 할 때가 돼 자연스레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이후 과재고를 많이 정리하며 올해 1월부터 손익 측면이 개선되고 있다”며 “FIT(개별관광객) 위주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실시한 희망퇴직으로 고정비를 줄이는 등 실적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