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요구 대폭 수용 불구 ‘거부권’ 행사에 무게…일각에선 본인 향한 칼날 우려 특검 불수용 시선도
국회는 1월 17일 본회의를 열고 ‘윤석열 정부의 내란 행위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수정안’을 가결했다. 재석의원 274명 중 찬성 188명, 반대 86명이었다.
앞서 지난 2024년 12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첫 번째 ‘내란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최종 폐기되자, 민주당을 포함해 야6당은 곧바로 두 번째 내란 특검법을 발의했다. 이 특검법에는 수사대상에 윤 대통령 등 주요 인물들의 외환 행위·외환 범죄 혐의를 추가했다. 대신 정부여당이 위헌요소라고 지적한 대목들을 수정했다. 특검 후보자를 대법원장이 추천하고, 야당은 비토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조항을 바꿨다. 수사 인력과 기간도 축소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자체 ‘비상계엄 특검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기존 야당 특검안에 명시된 11개 수사 혐의 중 내란 선전·선동죄와 외환죄 등을 제외하고, 국회의사당·중앙선거관리위원회 마비 및 정치인 체포·구금 의혹 등 5개 혐의로 축소했다. 특검 후보는 대법원장이 3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고, 특검의 수사기간과 인원의 경우 ‘상설특검’ 규정에 따라 대폭 축소했다.
1월 17일 본회의 표결 전 여야는 두 특검법을 두고 합의안 마련에 나섰다.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5시간 이상 ‘끝장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최종 협상은 결렬됐고, 이날 야당의 내란 특검법이 두 번째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다만 민주당은 나름의 수정안을 만들었다. 수사 대상에서 ‘외환유치’ ‘내란선전·선동’ 혐의 등을 삭제하고 수사 기간·인원을 더 축소하는 등 여당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수정안에 대해 “이 정도면 사실상 국민의힘의 주장을 전폭 수용한 안”이라며 “국민의힘도 거부할 명분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 수정안에 “반헌법적 독소조항이 여전히 많다. 겉으로는 국민의힘 법안을 수용한 듯 언론플레이를 했지만 실제로는 눈 가리고 아웅한 것”이라며 “보여주기식 대선용 특검”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권성동 원내대표는 최상목 권한대행에게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특검법에 즉각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정치권 시선은 최 권한대행 선택에 쏠리고 있다. 1월 18일 정부로 이송된 내란 특검법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2월 2일까지다. 최 대행은 설 연휴 여론을 살핀 뒤 1월 31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특검법을 수용할지 거부권 행사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권에서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50일이 되도록 사회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이번에야말로 최 대행이 내란 특검법을 수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윤 대통령은 공조수사본부 체포영장 집행에 경호처를 앞세워 서울 용산 한남동 관저에 틀어박혀 2주일간 버티다 지난 1월 15일 체포됐다. 1월 19일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수인번호 ‘0010번’을 받고 서울구치소 일반 수용동 독방에 수감됐다.
체포·구속된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은 공수처 조사를 일체 거부하고 있다. 공수처의 구속 후 첫 출석조사 요구에 윤 대통령 법률대리인 윤갑근 변호사는 “공수처에서는 더 말할 게 없다”고 출석에 불응했다. 다음날 공수처가 서울구치소를 방문, 강제구인에 나섰으나 윤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조사를 거부해 6시간 대치 끝에 결국 조사가 불발됐다.
이러는 사이 윤 대통령 강경 지지자들은 폭동을 일으켜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 1월 18일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된 서울서부지법 앞에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하루 종일 집회를 벌였다.
1월 19일 새벽 3시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지지자 100여 명은 분노하며 서부지법에 침입, 집기를 훼손하고 경찰을 폭행하는 등 폭력 난동을 벌였다. 건물 외벽을 뜯어내거나 창문을 깨뜨리고 법원 내에서 소화기를 분사하기도 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고, 현장에서 시위대 90명을 체포했다. 이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빠르게 진행돼 구속 여부가 속속 결정되고 있다.
민주당 소속 한 법조인은 “법원에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것은 윤 대통령에 대한 범죄 혐의가 일정 부분 입증됐다는 의미다. 정부여당은 서둘러 내란정국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내란 특검법 수용도 그 일환”이라며 “최상목 대행과 국민의힘이 내란을 계속 방조하니까 서부지법 폭동 등 극한 대립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최 대행이 두 번째 내란 특검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시 국회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앞서 최 권한대행은 첫 번째 내란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여야가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대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해 주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내란 특검법 수정안이 최 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 돌아올 경우 재표결을 통해 통과하긴 어려워 보인다. 첫 번째 재표결에서 찬성은 198표로, 국민의힘에서 최소 6개 이탈표가 발생했다. 안철수 김예지 김성욱 김용태 김재섭 한지아 의원 등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1월 17일 수정안 표결에서 김예지 김용태 김재섭 한지아 의원은 반대표를 던졌고, 김상욱 의원은 표결에 불참했다. 여당 의원 중 안철수 의원만 유일하게 찬성에 투표했다.
민주당은 최 대행에 내란 특검법 수용을 압박하고 나섰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1월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라를 분열과 혼돈으로 몰아넣지 않으려면 헌법과 법률을 앞장서서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며 “위헌·위법한 내란 수사를 위한 내란 특검법을 즉시 공포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시간을 질질 끄는 건 대한민국을 무법천지로 만드는 길”이라고 경고했다.
최 대행이 내란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민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와 같이 ‘탄핵’ 카드로 맞대응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당초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며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적극적 권한 행사 대신 현상 유지만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최 대행은 2024년 12월 27일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이어받은 이후 26일 동안 국회에서 넘어온 법안 6건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쌍특검법(내란·김건희 특검법)에 첫 거부권을 행사했고, 1월 14일에는 ‘고교 무상교육 국비지원 연장법(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다. 또한 1월 21일 국무회의를 열고 ‘AI 교과서 지위 격하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TV수신료 통합징수법(방송법 개정안), 국가범죄 시효배제법(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과 관한 특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보다도 빠른 페이스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최 대행의 탄핵 추진은 쉽지 않다는 얘기가 많다. 야권 관계자는 “내란죄 공범, 상설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 거부, 헌법재판관 선별 임명 등 최 대행을 탄핵할 명분은 충분하다. 다만 최 대행을 탄핵할 경우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주호 사회부총리에 넘어간다. 뉴라이트 계열 이 부총리가 민주당 입장에서는 더 예측이 안 되고 까다롭다. 이에 최 대행 선에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최 대행이 내란 특검법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특검이 본인을 향해서도 수사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을 한다. 최 대행은 2024년 12월 검찰과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최 대행은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윤 대통령으로부터 ‘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확보’ 지시 계엄 문건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최 대행은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를 소집했다. 또한 1급 이상 기재부 간부회의를 개최했다. 야당에서는 이들 회의에서 비상계엄 관련 문건 내용을 논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럴 경우 최 대행 등은 내란을 함께 시행한 주체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최 대행은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끝나고) 참고하라고 접은 종이를 줬다”며 “당시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경황이 없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의결 장면을 보고 나서, 나중에 그 문건이 있는 것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준 문건을 보지도 않고 직원에 넘겼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질타에 “한 장짜리 자료가 접혀 있었다. 나중에 기재부 차관보가 ‘아까 주신 문건이 있다’고 말해줘 그때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특검이 출범하면 최 대행도 수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사정기관 조사에 거부만 하다 체포되고 구속까지 됐다. 윤 대통령 구속으로 사실상 조기 대선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란 특검법이 정부여당 반대로 막히고,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현재 발의한 내란 특검법보다 더 센 특검법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그땐 국민의힘이 거부권 행사 등 막을 방법이 없다. 최 대행은 야당과 어느 수준의 타협점을 보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고 충고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