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모르고 계약서 없이 러시아 투입 정황…개인수당 김정은 통치자금 활용 가능성
한 대북 소식통은 “러시아로 파병된 인민군들이 전쟁터로 가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정황이 나오고 있다”면서 “통상적인 절차로 파병을 했다면, 파병수당에 대한 계약서나 서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파병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데 북한군 상황은 다르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자국과 관련 없는 해외 파병을 갈 때엔 통상적으로 각국 군이 추가 수당을 약속하며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서약서를 통해 사실 확인을 시켜주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이런 과정이 생략됐다면, 전쟁터에 내몰린 북한군이 수당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에 파병하는 대가로 북한은 정부 차원에서의 보상과 파병된 개별 병사에 대한 보상에 대한 협의를 모두 마쳤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정작 병사들이 파병 사실을 몰랐다면, 개별 병사에 대한 파병수당이 김정은 통치자금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는 2명으로 파악됐다. 국정원에 따르면, 1월 9일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에서 북한군 2명을 생포한 사실이 확인됐다. 북한군 포로심문은 국정원 한국어 통역 지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군 특유의 결사항전 태세도 주목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군은 그동안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혀도 자결을 택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원 발언을 인용해 “북한군은 러시아군과 다르게 옆에서 동료가 죽거나 다쳐도 무시하고 돌격했다”면서 “사고방식과 접근법이 다르다”고 전했다. “북한군은 포로가 되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수류탄을 터뜨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런 북한군의 결사항전 태세는 북한군 파병 이후 생포된 포로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북한군 포로들은 몽골 서북쪽에 위치한 러시아 연방 자치국 ‘투바공화국’ 신분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조사에 따르면 북한군 포로는 “2024년 가을 러시아에서 1주일 동안 훈련할 때 신분증을 받았다”면서 “전쟁이 아닌 훈련을 위한 파견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군 제95공수여단 공수부대원들이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영상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잡힌 20세 북한군 소총수도 “여기 나와서까지도 러시아로 가는 것도, 우리의 적이 우크라이나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소총수는 “북한에서 선박을 타고 러시아에 도착한 뒤 열차에 탑승해 육로로 이동했다”면서 “당시 선박엔 100명 조금 넘게 승선했고, 그 인원이 그대로 열차에 올랐다”고 했다. 러시아 파병 사실을 어머니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소총수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북한군 포로인 26세 저격병 역시 자신이 파병된 사실을 가족이나 부모가 모른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지금까지 나온 포로들 증언에 따르면, 북한군은 눈 떠보니 전쟁터에 투입된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그야말로 현실판 오징어게임이나 다름 없다”면서 “훈련인 줄 알고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 역시 ‘실제 상황’에 당황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징어게임은 생존 시 보상이라도 있지만, 전선으로 내몰린 북한군은 생존 이후에도 어떤 처분을 받을지가 불투명하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군 사상자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면서 “생존해서 북한으로 돌아갈 경우에도 통상적인 금전 보상보다는 ‘영웅 칭호 부여’ 등 표면적인 조치를 통해 이들의 공로를 치하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그는 “전선에서 가장 험한 일을 담당했던 북한군의 목숨값이 북한군에게 돌아가지 않고 북한 당국으로 넘어간다면, 그만큼 통치자금이 늘어나는 것”이라면서 “가상자산 해킹 등으로 그때그때 충당해 왔던 김정은 통치자금 사정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바라봤다.
전선에서 ‘무조건 돌격’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북한군 사상자는 1월 9일 기준 약 4000명 규모로 추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 메시지를 통해 러시아 현지 북한군을 격려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김정은 신년 메시지 내용은 이렇다.
“새해에도 강고한 전투 포화로 이어가고 있는 동무들의 헌신과 노고에 무슨 말을 골라 격려하고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소. 동무들이 정말 그립소. 모두가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오길 내가 빌고 또 빌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주시오. 부과된 군사임무를 승리적으로 결속하는 그날까지 모두가 건강하고 더욱 용기백배하여 싸워주길 바라오.”
김정은 신년 메시지는 현지 북한군 사기를 높이고, 정신무장 태세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자본주의를 배척하는 분위기인 북한 사회에서 살아온 북한군들은 파병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그 가운데 김정은이 사기를 북돋는 메시지를 통해 북한군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더욱 강화한 셈”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김정은 편지 한 장에 목숨을 담보로 전쟁터로 내몰린 북한군은 잡히기보다 죽기를 선택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김정은은 지도자를 최우선시하는 북한의 폐쇄적인 특성을 적극 활용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요신문은 북한이 파병 과정서 군인들 몫 수당을 달러로 수령한 뒤, 북한 원화로 지급하는 시나리오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국가 주도 환치기” 러시아 파병 북한군 월급 어떻게 받고 쓰일까). 국가가 주도하는 환치기 작업을 통해 파병수당을 지급해 김정은이 최대한 통치자금을 비축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에 따르면, 이런 최소한의 수당 지급조차 이뤄지지 않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파병수당 전체가 김정은 통치자금으로 유입되는 모양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북한 당국이 러시아 파병군인 사망 사실을 가족들에게 통보하면서 돈은 고사하고 당원증과 메달만 수여했다는 정보가 있다”면서 “북한 내부에서 군은 어떤 일을 해도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규정이 전무하다”고 했다.
강 대표는 “군대 집단의 무조건적인 충성 강요 등을 통해 금전적인 보상을 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있다”면서 “러시아로부터 받는 개별 군인 파병수당이 사실상 김정은 개인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