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o1 수준 성능인데 투입 비용 10분의 1…미·중 AI 패권경쟁 격화, 저성능 GPU도 수출 규제 가능성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개발한 AI 모델이 시장을 혼돈으로 밀어넣고 있다. 저사양 칩으로 상당 수준의 AI 모델을 구현하면서다. 딥시크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6월이다. 당시만 해도 시장에서 딥시크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월 20일(현지시각) 추론형 AI 모델 '딥시크-R1'이 오픈소스로 공개되면서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코딩 테스트 '에이다(Aider)'에서 평가한 R1의 점수는 60점이었는데 이는 AI 업계를 이끄는 미국 개발사 오픈AI의 챗GPT의 AI 모델 o1이 기록한 60점 초반에 육박한 수치다. 일부 성능은 R1이 o1의 성능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R1 개발에 투입된 비용이다. R1 개발에 투입된 비용은 557만 6000달러(78억 8000만 원)로 o1 개발 비용 1억 달러의 10분의 1도 안 된다. 투입 비용이 낮아진 것은 R1이 엔비디아의 저사양 그래픽처리장치(GPU) 칩 'H800'으로도 개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추론형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고사양 GPU가 필요하다는 업계의 불문율을 깬 것이다.
R1이 공개된 후 그 기술력에 호평이 나오자 엔비디아의 주가는 지난 1월 27일 기준 전거래일 대비 16.97% 급락했다. 향후 AI 개발에 마진율이 높은 고성능 칩 수요가 둔화될 우려가 반영된 영향이다.
딥시크는 2023년 5월 설립됐다. 연구 개발인력은 139명에 불과하다.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연구원은 1200명을 개발인력으로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은 각각 7000명, 5000명 정도다.
딥시크의 구성원 대다수는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젊은 직원이다. 딥시크의 창업주 량원펑이 ‘혁신’을 위해 직급·경력·연공서열을 파괴했다. 량원펑은 1985년생, 올해 40세다. 남부 광둥성 잔장에서 태어나 2002년 항저우 공학 분야 명문대 저장대학교에 입학했으며, 2007년 전자정보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에는 같은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딥러닝 프로그램을 활용한 ‘퀀트 트레이딩’을 연구했다. 2015년에는 이를 기반으로 한 헤지펀드 ‘하이 플라이어(High Flyer)’를 설립해 1000억 위안(약 20조 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했다. 2023년 5월 량원펑이 딥시크를 설립할 때 이미 AI 딥러닝 기반이 마련됐던 셈이다.
딥시크의 등장으로 저비용으로 AI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시장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중국 알리바바도 지난 1월 29일 자체 개발 AI 모델 ‘큐원 2.5-맥스’를 출시하며 오픈AI와 딥시크의 모델보다 진보한 성능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중국 기업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도 1월 22일 AI 모델 ‘두바오 1.5 프로’를 내놓으면서 일부 부문에서 오픈AI o1보다 우수한 성능을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저비용 AI 모델의 등장으로 AI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딥시크 R1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공개된 것도 미국을 의식한 행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이미 중국의 AI 기술력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보고서를 통해 “AI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거나 따라잡는 강력한 글로벌 경쟁자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백승혜 하나증권 연구원은 1월 31일 보고서를 통해 “향후 미국 정부는 딥시크 모델 다운로드를 전면 금지하거나 중국 주요 AI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추가 등재하는 등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엔비디아의 칩 수출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고성능 칩에 대한 수출만 제한됐지만, 제재 수위가 높아지면 저성능 칩 수출이 제한받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딥시크 AI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미국 하원 소속 의원과 직원들은 딥시크 AI 이용을 금지했다. 국방부도 ‘잠재적 보안 및 윤리적 우려가 있다’면서 딥시크 AI 이용을 제한했다.
미국 내 AI 개발 기업에서도 긴장감이 돌고 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최고경영자)는 최근 “딥시크 모델은 추론 오픈소스 모델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슈퍼 컴퓨팅 효율성 측면에서도 매우 인상적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의 발전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1월 28일 X(옛 트위터)에 “(딥시크의 AI에 대해) 제작비용이 인상적”이라며 “우리가 훨씬 뛰어난 모델을 출시하겠다”고 전했다.
딥시크의 등장에 한국 기업도 영향권 아래 놓였다.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GPU에 들어가는 HBM3E(5세대)칩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1월 31일 전 거래일 대비 9.86%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3E(5세대) 공급 승인을 얻었다는 소식으로 상승 기대감이 형성됐지만 딥시크 영향을 받으면서 전일 대비 2.42% 하락했다.
정부는 딥시크가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1월 30일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딥시크와 같은 저비용 AI의 출현으로 미국 빅테크 주가 고평가 우려 등에 따라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AI 산업구조에도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관련 동향을 면밀히 점검해달라”고 당부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