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강등 하루 만에 ‘막무가내’ 신청 시장 신뢰 추락…MBK “안정적 운영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

홈플러스가 3월 4일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가 지난 2월 28일 홈플러스의 기업어음 및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하향한 지 영업일 기준 하루 만이다. 홈플러스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향후 잠재적 단기 자금 부담을 선제적으로 경감해 홈플러스의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라고 밝혔다.
법원은 11시간 만에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서 현 경영진이 오는 6월 3일까지 회생계획안을 제출하도록 했다. 회생 개시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3월 5일 홈플러스의 기업어음 및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다시 ‘D’로 강등했다. 최하위 등급인 신용등급 ‘D’는 상환 불능 상태를 의미한다. 홈플러스는 영업을 지속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회생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 모든 금융 채무는 동결된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홈플러스의 총차입금은 5조 4620억 원으로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이 중 21%가 1년 내 만기가 도래한다. 홈플러스의 현금성 자산은 1500억 원, 영업현금창출력(EBITDA)은 회계연도 2023~2024년 기준(2023년 3월~2024년 2월) 2721억 원이다. 여기에 실적 개선 여력도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신용등급이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회생 절차 개시와 함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매각 추진도 중단됐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홈플러스가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지난해 6월 시장에 매물로 나왔으나 원매자를 찾지 못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매각이 지체되면서 홈플러스의 유동성 확보에도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대형마트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 홈플러스의 협력업체 대금 지급 기일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왔다. 자금 경색이 워낙 심각한 상황이어서 신용등급까지 떨어지자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임직원들은 갑작스러운 회생 개시에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의 교섭노조인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는 “2월 24일 임급협약에 잠정 합의하고 이제 막 조합원들한테 설명하고 있는 단계였다. 회사는 회사대로 창립기념일에 맞춰 지난 2월 말부터 대규모 세일 행사인 ‘홈플런’을 진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회생을 한다니 황당하다”라며 “대우조선해양이나 쌍용차 때처럼 회생 절차가 개시되면서 노동자들이 대규모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우려가 크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티몬과 위메프(티메프)가 회생 개시 절차에 돌입한 지 반년 만에 대형마트업계 2위 사업자인 홈플러스마저 회생을 택하면서 유통업계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앞서의 대형마트업계 관계자는 “유통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만 유지되고 있는 점이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배경 중 하나라고 본다”라며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 강제 휴업을 해야 하고 새벽 배송도 제한되며, 점포를 하나 내려면 지역 상권과 복잡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런 규제들이 업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었고 업계 2위인 홈플러스마저 위기에 빠뜨렸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홈플러스 관계자는 “2월 28일에 갑작스러운 신용등급 하락 통지를 받았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고심 끝에 사전 예방 차원에서 회생 개시 신청 결정을 내렸다”라며 “기업회생이지 법정관리가 아니다. 금융 채권에 대한 상환 부분만 유예가 되는 것이고 현재 협력사와의 정상적인 상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며 임금도 정상 지급되기 때문에 영업도 지장 없이 이어질 방침”이라고 밝혔다.

홈플러스가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시기는 10년 전인 2015년이다. 당시 MBK파트너스는 영국의 테스코로부터 7조 2000억 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했는데 당시 국내 인수 합병 거래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때 MBK파트너스는 차입매수(LBO) 방식을 활용해 2조 2000억 원의 자기 자본만으로 거래를 성사시켰다. 인수 대상인 홈플러스의 자산을 담보로 인수금융을 일으켜 4조 3000억 원의 선순위 대출과 7000억 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끼고 홈플러스를 매입했다.
MBK파트너스의 인수 이후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지출된 이자비용 합계는 약 2조 9329억 원으로 해당 기간 영업이익 합계인 4713억 원보다 2조 5000억 원이 많다. 앞서의 마트노조 관계자는 “영업이익은 모두 이자비용으로 지급됐고 그것도 모자라 자산까지 유동화해 처분하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여력이 계속 줄었다. 지금 홈플러스의 재무구조 악화는 마트산업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인수비용을 홈플러스에 떠넘긴 MBK파트너스 탓에 빚어졌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회생 신청이 이뤄진 배경이 MBK파트너스의 ‘도덕적 해이’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대형마트 업황에 위기가 계속되면서 10년간 엑시트에 성공하지 못한 MBK파트너스가 채무 상환을 너무 ‘손쉽게’ 포기해버렸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용이 많이 들 것 같고 앞으로 계속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되자 전략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 지원을 유도하거나 채권자들의 손실을 감수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며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채권자들은 돈을 받지 못하는 동안 MBK파트너스는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을 슬림화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매각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높은 가격에 회사를 처분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렇게 막무가내로 회생신청을 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영업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신용등급이 강등되자마자 ‘나 몰라라’식으로 드러누운 것”이라며 “홈플러스의 기업어음(CP)에 투자한 개인들도 손실을 볼 수밖에 없고 향후 회생절차에 돌입해 채무관계가 다 동결되면 상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들도 다 너무 큰 피해를 본다. 임직원과 협력사, 채권단 모두에게 피해를 주면서 본인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영업을 지속한다는 게 무책임한 행보”라고 비판했다.
MBK파트너스가 손실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신뢰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이번 사태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보다는 단기적 이윤을 추구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평가다. 앞서의 증권사 관계자는 “분명 고려아연도 전략자산으로 키우겠다고 했는데 이번 사태로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신용등급이 낮아졌다고 해서 디폴트를 시켜버리는데 어떻게 믿고 고려아연을 맡기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에 전혀 책임감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에 확실히 드러난 것 같다. 손해 볼 거 같으니까 쏙 빠지는 건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너무 당황스러운 상황이지 않나”라며 “회생 신청한 기업들은 소유주들이 사재를 털어넣어서라도 소생시키려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안 좋은 선례를 남겨버렸다”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