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압박·대여 투쟁은 다른 지도부가 나서…‘이재명 포비아’ 여전, 외연 확장 물음표

지난 3월 26일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6-2부(재판장 최은정)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내렸다. 사법리스크 족쇄를 푼 이 대표는 대권 가도에 날개를 달았고, 당내 입지는 강화됐다. 비명계는 모두 환영 논평을 내며 한발 물러섰다. 민주당은 정당보조금 등 약 434억 반환 문제에서 벗어나게 됐다(관련기사 큰 시름 덜었지만…‘선거법 2심 무죄’ 기사회생한 이재명의 앞날).
판결 직후 이 대표는 산불 현장으로 향했다. 3월 27일엔 경상북도 영양군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한 남성이 휘두른 외투에 맞았다. 그러나 이 대표 측은 곧바로 “외투를 사용한 분은 이재민으로 파악됐다”며 “아픔에 공감하면서 경찰에도 선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에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을 하던 과거 모습과는 상반된 행보다.
우클릭 행보도 이어갔다. 3월 28일 이 대표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리는 제10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2022년 8월 민주당 대표 취임 이후 처음 기념식에 참석했다.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등 북한의 서해 도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모두 보수 진영이 민주당의 안보관을 공격할 때 근거로 사용되는 사건들이다.
이 대표는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안보정책을 두고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입장에 이견 있을 수는 없다”며 “조국 지킨 용사들 헌신에 응답하고 우리 서해를 굳건한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내는 일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일부 천안함 피격 사건 전사자 유가족들은 이 대표를 향해 “천안함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그동안의 만행에 대한 사과 성명을 내고 행사장에 들어오라”며 반발했다.

민주당은 산불 피해 지원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여야정 협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복귀한 한덕수 국무총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강경한 태도에서 한발 물러선 셈이다. 당내에서는 산불로 인한 국가 재난 상황에서 강경 투쟁 기조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안정감 있는 대선후보 그리고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강온 양면 전술
이 대표를 제외한 당 지도부는 헌재와 정부 압박에 목소리를 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이 늦어지면서 민주당 내부에선 헌재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과 최상목 부총리에 대한 ‘쌍탄핵’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당내 기류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한 관계자는 “본회의가 미뤄져서 보고 일정을 못 잡는 거다. 본회의 잡히면 당연히 (탄핵) 절차 이어진다”고 잘라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국회의장이랑 해서 (본회의) 일정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며 “(최상목 부총리 탄핵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3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 민주당은 결의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대신 국회 전원위원회를 열어 토론에 부칠 계획이다.
이는 헌재 압박과 최 부총리 탄핵 소추를 동시에 추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전원위가 개최되면 국회를 계속 열어둘 수 있다. 그 사이 본회의 소집 요구서를 제출해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찬성하면 본회의 소집을 요구할 수 있다. 3월 27일 마지막 본회의는 연기된 상태다.
민주당이 차일피일 일정을 미뤄 최 부총리 탄핵 소추안을 자동 폐기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앞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최 부총리 탄핵 소추를 두고 이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탄핵 남발’ 프레임과 ‘탄핵소추 기각·각하 후폭풍’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 무죄 판결 직후 지도부 내부에선 굳이 최 부총리 탄핵을 밀어붙여야 하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3월 28일 박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재판관들 눈에는 나라가 시시각각 망해가는 게 보이지 않는가”라며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직 헌법과 상식에 따라 판결하면 될 문제다. 오늘 바로 선고기일부터 지정하라”라고 촉구했다. 전현희 최고위원과 김병주 최고위원도 조속한 탄핵심판 선고와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상임위 소속 의원별로 조를 짜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기자회견은 오전과 오후에 하루 두 차례씩 열린다. 광화문 천막당사를 중심으로 한 장외집회 강화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파면 전까지 철야 농성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채진원 경희대학교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민주당이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거법 위반 관련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난 이 대표는 중도 확장에 나서고 지도부는 강경 투쟁으로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강온 양면 전술인 셈이다.
3월 28일 한국 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 지지율 34%를 기록했다. 여권 잠룡들 지지율을 합한 것보다 높은 수치다. 그러나 민주당(41%)보다 낮은 지지율이었다. 민주당 지지율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질문에 대한 무응답률도 37%에 달했다. 중도층 표심이 표류하고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채진원 교수는 “이재명 대표는 과거에 잦은 말 바꿈, 줄 탄핵, 여러 가지 독선적인 모습, 독선적인 리더십에서 나오는 불신을 받고 있다. 이것은 믿음 체계다. 중도층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이러한 ‘이재명 포비아’ 때문에 ‘입법부도 장악했고, 사법부도 장악할 예정이고 행정부까지 장악한다’는 두려움이 (중도에서) 가시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