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물 5억·유세차량 45억·TV 광고 100억…정당보조금 520억, 무소속은 사비로 “현실정치 벽 높아”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에 출연한 서갑원 전 의원이 소개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말이다. 서 전 의원은 대통령이 되기 전 노 전 대통령이 이 말을 꺼내며 울었다고 전했다. 정치인에게 돈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명임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정치자금 대부분은 선거비용으로 사용된다. 선거를 ‘쩐의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노무현 캠프는 2002년 치러진 16대 대선에서 전국의 지지자들에게 ‘희망돼지 저금통’ 20만 개를 나눠줬다. 원시적인 선거 펀드였다. 약 350억 원의 선거비용제한액 중 50억 원을 모금한다는 계획이었다.
대선이 끝난 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차떼기 사건’이 터졌다. 대선 때 LG그룹, 현대차그룹 등은 트럭이나 승합차를 이용해 고액의 불법 선거자금을 한나라당에 전달했다. 삼성은 고액채권을 책으로 포장해 전달했다. 이렇게 전달된 돈이 약 823억 원에 달했다. 노 전 대통령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민주당은 113억 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대선자금 논란이 확산됐고, 이때 선거비용 총액보전제가 도입됐다. 돈이 없는 후보도 선거에 나올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이 제도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 때마다 선거비용제한액을 발표한다. 후보자가 돌려받을 수 있는 선거비용 상한액이다. 15% 이상 득표한 후보자는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 받는다. 10% 이상 15% 미만 득표한 경우 절반만 보전 받을 수 있다. 10% 미만 득표율을 올린 후보는 선거비용을 돌려받지 못한다.

19대 대선 선거비용제한액은 약 510억 원이었다. 20대 대선 제한액은 약 513억 원으로 책정됐다. 역대 대통령 선거들을 살펴보면 거대 양당 후보들은 제한액에 근접하는 돈을 사용했다.
21대 대선도 ‘쩐의 전쟁’은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경선 예비후보들은 기탁금을 내야 한다. 국민의힘은 각 경선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1억 원이었다. 3차까지 올라간 후보는 3억 원을 납부하게 되는 셈이다. 민주당의 경우 예비 후보자 등록 기탁금은 1억 원이다. 본경선 후보자 등록은 3억 원이다.
후보들은 후원금을 모집할 수 있다. 후원금을 모집한 정치인은 이재명 민주당 후보, 한동훈 국민의힘 경선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등이다. 이재명 후보는 하루 만에 모금액 상한선인 29억 4000만 원을 모금했다. 한동훈 예비후보도 약 11시간 만에 모금을 끝냈다. 이준석 후보는 ‘펭귄밥주기’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후원금을 받고 있다. 다른 후보들의 모금 여부와 모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후원금은 임대료 등 선관위가 정한 선거 관련 활동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사무실 임대료는 예비후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선이 시작되면 예비후보들은 캠프 사무실을 꾸린다. 보통 당 경선은 3개월 동안 진행된다. 후보들은 3개월 동안 캠프 유지비를 감당해야 한다.
21대 대선에서는 ‘그나마 견딜 만하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경선 기간이 짧아서 (다른 대선보다) 돈을 쓸 일이 적어졌다. 그나마 돈을 아낄 수 있는 셈”이라고 귀띔했다.
#대선 펀드 변천사
문제는 본선이다. 이때부터 돈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각 캠프는 전국에 선거 공보물을 배포한다. 여기에 5억 원 이상이 들어간다. 유세차량 대여비용은 최소 2000만 원 이상이다. 이 유세차량을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에 배치해야 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45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TV 광고는 1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라인 홍보비용도 억대다. 여기에 선거 운동원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도 감당해야 한다.
18~20대 대선을 보면 거대 양당의 경우 각각 400억 원대 선거비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약 479억 원, 문재인 후보가 약 484억 원을 썼다.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약 413억 원, 홍준표 후보 약 424억 원, 안철수 후보 약 403억 원, 유승민 후보 약 330억 원, 심상정 후보 약 228억 원 등을 지출했다. 20대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 약 487억 원, 윤석열 후보 약 425억 원, 안철수 후보 약 70억 원, 허경영 후보 약 73억 원 등의 선거비용이 사용됐다.

그러나 선거를 치르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를 마련할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선거자금 펀드다. 이 펀드는 지지자들로부터 일정액을 투자받는 형태로 이뤄진다. 선거가 끝나면 일정 수준 이자를 붙여 지지자들에게 돌려준다. 지지자들은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지원하면서 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 단기간에 거액을 모으는 데 성공하면 지지세를 과시할 수도 있다. 일석이조 선거 전략인 셈이다.
선거 펀드를 시작한 인물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유 전 장관은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 때 ‘유시민 펀드’를 만들었다. 유시민 펀드는 출시 3일 만에 41억 원을 모았다. 돌풍이었다. 선관위는 선거를 활성화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해 선거 펀드를 인정해 줬다. 이후 선거 펀드는 대부분의 선거 때마다 등장했다.
20대 대선 때 이재명 캠프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당시 인기를 끌던 가상자산인 대체불가토큰(NFT)와 결합한 선거 펀드를 선보였다. 펀드를 설계한 인물은 이연희 민주당 의원실에 있는 홍성일 보좌관이다. 그는 이 펀드를 만들기 위해 3개 회사를 끌어들였다고 했다. 펀드, 가상자산, 플랫폼 등이 필요한데, 이를 동시에 하는 회사가 없어서였다.
몇 달 동안 3명으로 꾸려진 팀이 펀드 조성에 매진했다. 선거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선관위와 끊임없이 소통했다. 선관위도 새로운 시도라며 긍정적인 반응이었다고 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시간 49분 만에 목표액 350억 원을 달성했다. 나중에는 2만 명이 총 약 770억 원을 보냈다.
홍 보좌관은 당시 큰손들이 움직일 정도로 가상자산 업계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최초의 대선후보 NFT기 때문이다. 투자금액 1~10위까지는 11억 1111만 1111원 등 의미 있는 숫자의 투자금을 넣었다고 전했다. 다만 목표액을 제외한 420억 원은 환급됐다. 당이 정한 상한선인 220만 원을 초과한 금액 중 30%를 제외한 금액을 전액 환급했다.

이준석 후보 측은 지지율 추이를 보는 상황이라고 했다. 득표율 10% 이상을 기록해야 선거비를 보전 받을 수 있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선거비를 돌려받지 못하면 펀드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주기가 힘들 수 있다.
후보 내면 망한다? 군소 정당들의 서러움
대선 ‘쩐의 전쟁’이 끝날 때마다 정당 간 양극화가 커지는 모습이다. 일부 군소 정당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을 치를 때마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재산 규모는 커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민주당 중앙당은 2017년 약 58억 원에서 2024년 약 657억 원으로 급증했다. 국민의힘은 약 424억 원에서 약 1199억 원으로 불어났다.
정부 지원이 거대 양당 재산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두 당은 대선과 총선에서 선거비 100% 보전 기준인 득표율 15% 이상을 충족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두 당은 선거비용 대부분을 돌려받았다.
동시에 선거보조금이라는 추가 수익도 생긴다. 선관위는 의석수에 따라 선거보조금을 지급한다. 21대 대선에는 총 524억 원이 지급된다. 선거비를 보전 받으면, 양당에 지급된 선거보조금은 고스란히 재산으로 편입된다.
여기에 경상보조금도 지급된다. 1980년 도입된 제도다. 인건비와 조직활동비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정치활동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의석수에 따라 분배된다. 2024년 4분기 경상보조금 약 123억 원 가운데 약 54억 원이 민주당으로, 약 52억 원이 국민의힘으로 지급됐다.
이처럼 선거를 치를수록 거대 양당은 부유해지지만, 군소 정당은 존폐의 기로에 설 가능성이 커진다. 역대 대선에서 군소 정당 후보가 선거비 보전을 받을 정도로 득표율을 기록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국가보조금 제도가 거대 양당제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원내 3당인 조국혁신당조차 후보를 내야 한다는 당위파와 돈을 아껴야 한다는 실리파의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혁신당은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