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와 동해 투트랙 건조가 패착으로 작용 가능성…소식통 “김정은, 가상자산 해킹으로 번 돈 날린 셈”

사고 발생 직후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선체 우현이 긁히고 선미 부분 구조 통로로 일정한 양의 해수가 침수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중대사고이며 범죄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책임자에 대한 문책 국면이 이어졌다. 5월 25일 조선중앙통신은 “청진조선소에서 발생한 구축함 진수 사고와 관련한 조사 사업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강정철 청진조선소 기사장, 한경학 선체총조립직장 직장장, 김용학 행정부지배인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구축함 진수 실패에 책임이 있는 실무자들이 줄구속되며, 책임론이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입장에선 자신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낸 두 번째 구축함을 빠르게 원상복구하며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업적을 바로세우고 싶을 것”이라면서도 “청진조선소 실무자들 입장에선 구축함 진수가 ‘최고 지도자 자존심’과 직결된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담스러운 입장에 놓인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원양 함대 플랜’을 신속하게 이행하기 위해 서해와 동해에서 투 트랙 군함 건조를 한 것이 패착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의 소식통은 “서해와 동해에서 같은 군함을 띄우는 것 같아 보여도, 실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바다의 특성도 다를뿐더러 조선소의 역량 차이도 분명한 까닭”이라며 “우선 한쪽 바다에 먼저 집중하고, 다른 쪽 바다에서 시간을 두며 구축함을 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원하는 것처럼 6월 말까지 ‘쓰러진 구축함’을 바로 세우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 해군분석센터(CNA) 데커 에벌레스 연구원은 “인양 작업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배가 반쯤 물에 잠기고 반쯤 물 밖에 있는 것은 사실상 최악의 상황”이라며 “침몰한 반쪽을 빼내려고 하면 용골이 뒤틀리고 부러질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배 전체가 폐기물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닉 차일즈 수석연구원은 “북한이 좌초한 구축함을 분해해야 할 수도 있다. 배의 일부라도 해체한 뒤 남은 부분을 바로잡고 견인한 뒤 재건할지 해체할지 결정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며 “이미 배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위에서 들어올리면 그 스트레스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6월 2일 포착된 위성사진에서도 선수가 진수시설 위에 걸쳐 있어, 배가 정상적으로 뭍으로 올라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선수에 장착된 소나(음파탐지기) 등 고가 장비의 손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부품 등을 수리하려면 선박을 꺼내는 작업이 우선인데, 청진조선소엔 대형 드라이도크 등 장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구축함 상태가 양호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침수된 선체 구획 해수를 2~3일 안에 배출하고 10일 정도 시간이 주어지면, 배를 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여러 가지 주변 상황에 따르면 북한이 구축함을 복구시키는 작업은 상당한 난이도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이 구축함 원상복구를 바라는 이유는 간단하다. 5000톤급 신형 구축함을 제조하는 데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드는 까닭이다. 한 방산 전문가는 “국내외에서 5000톤급 구축함을 제조하는 데에는 3000억 원에서 6000억 원 정도 비용이 소요된다”면서 “상황에 따라 그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텄다 해도, 자금줄 다양화가 제한되는 북한 입장에선 신형 구축함에 들어간 돈 자체가 소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복구하는 데 쓰는 돈을 아끼려면, 그만큼 단순한 복구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복구 작업에서 원시적 방식이 유효할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소식통은 “2024년 북한 암호화폐 해킹 탈취 규모가 10억 달러(약 1조 3716억 원)로 추정되고 있는데, 산술적으로만 봐도 구축함을 두세 척 건조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렵게 불법적으로 취득한 돈을 바다에 빠뜨려버린 셈”이라며 “김정은이 야심차게 뭉칫돈을 투입한 사업이 말 그대로 좌초됐다. 쓰러진 구축함을 ‘세울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리긴 어려운 상황이다. 현장 실무자들도 어떻게든 구축함을 돌려내야 하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