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훈련 축소·연기 시사, 개성공단 재가동 검토…‘주민 접촉 북으로 가는 돈줄 다각화’ 우려도

김여정은 “북한 확성기 방송 중단, 삐라 살포 중지, 개별적 한국인들의 북한 관광 허용 등 이재명 정부가 우리(북한)와의 관계 개선 희망을 갖고 집권 직후부터 나름대로 기울이고 있는 ‘성의 있는 노력’들이 있다”면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강대강 시간을 끝내고, 화해와 협력의 시간을 열어갈 것을 제안했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 대북정책을 나열하면서, 나름의 긍정적 평가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후 김여정은 더 이상 ‘조한관계(남북관계)’를 되돌릴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여정은 “이재명 정부가 우리 관심을 끌고 국제적 각광을 받아보기 위해 아무리 동족 흉내를 피우며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 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적 대적 인식엔 변화가 있을 수 없으며, 역사의 초침을 되돌릴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재명 정부가 대북 방송을 중단한 조치와 관련해 김여정은 “한국이 스스로 초래한 문젯거리로서 진작에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되돌려 세운 데 불과해 평가받을 일이 못 된다”면서 “일방적으로 우리 국가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극단의 대결 분위기를 고취해오던 한국이 이제 와 스스로 자초한 모든 결과를 감상적인 말 몇 마디로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엄청난 오산’”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취지로 관계 개선 의지가 없다는 점을 명백하게 표현한 김여정이다. 그러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여정의 마음을 돌리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모습이다.

보름 정도 남은 한미연합훈련 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에 대해 정 장관은 “이재명 정부 정책 기조가 윤석열 정부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한미합동군사훈련 기조도 윤석열 정부를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하겠다”고 했다.
정 장관은 “8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이재명 정부 대북정책) 가늠자가 될 것”이라면서 “김여정 부부장 담화문에도 적시돼 있다”고 했다. 이날 정 장관은 “통일부에 민간 대북 교류를 위한 접촉을 전면 허용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여정이 발표한 담화문에 신속 반응한 정 장관 일련 행보와 관련해 “북한 당국도, 한국 국민들도 원하지 않는 남북 평화 무드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상황이 의아한 구석이 있다”고 했다. 그는 “김여정이 담화문을 통해 가장 강조한 키워드는 ‘조한관계’”라면서 “이제 북한은 한국을 통일 대상인 남북관계가 아니라 조선과 한국 별개 국가로 인식하겠다는 점을 또다시 공식화했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그동안 북한이 통일과 관련된 북한 헌법 조항을 삭제하고, ‘삼천리’라는 단어가 포함된 국가까지 개사했다”면서 “선대 지우기라는 모순 속에서도 ‘조국통일 노선’을 삭제하려 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통일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대화 필요성도 못 느낀다는 점을 지속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 장관이 대북 관련 이슈에서 알아서 기고 알아서 다 주는 양상 행보를 전개하고 있다”면서 “안 해줘도 될 걸 알아서 해줌과 동시에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고 있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여정은 7월 29일에도 담화문을 내놨다. 두 번째 담화문 제목은 ‘조미 사이 접촉은 미국의 희망일 뿐이다’였다. 담화에서 김여정은 “우리 국가수반(김정은)과 현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사이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면서 “조미 수뇌들 사이 개인적 관계가 비핵화 실현 목적과 한 선상에 놓이게 된다면, 그것은 우롱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여정은 “핵을 보유한 두 국가가 대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결코 서로에게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최소한의 판단력은 있어야 한다”면서 “새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접촉 출로를 모색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북미 대화 재개 조건에 대한 힌트를 준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7월 30일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 브리핑에 따르면 국정원은 정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를 통해 “북한이 유리한 전략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대남, 대미 담화를 연이어 내놨다”고 해석했다.
국정원은 북한 자신감의 배경을 ‘핵 능력 강화’ ‘러시아 파병’ 등을 꼽았다. 국정원은 “북한 스스로 핵 능력이 강화됐고, 또 러시아가 뒷배로 작용하면서 지금까지 훨씬 유리한 전략적 환경이 조성됐다고 판단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핵 보유를 한 국가와만 대화한다’는 북한 기존 입장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7월 31일 브리핑을 통해 “우리 정부는 북한 고위당국자 담화에 굉장히 유의하고 주목하고 있다”면서 “일단 김 부부장이 이틀 연속 입장을 낸 것이 굉장히 이례적인 것 아니냐”고 했다. 강 대변인은 “싸우지 않는 것보다 싸울 필요조차 없는 평화 상태가 가장 유익한 것”이라면서 “적대감도 전쟁도 없는 안전한 한반도를 만들겠다는 게 이재명 정부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7월 31일 출근길 취재진과 만나 “어제(7월 30일) 북한 주민 접촉 신고 처리 지침 폐기안에 결재했다”면서 “정부가 접촉 신고 수리 거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침을 폐기하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국민의 자유로운 접촉이 상호 이해를 낳고, 상호 이해가 상호 공존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서 “그러한 국민주권 정부(이재명 정부) 철학이 반영된 조처”라고 부연했다. 한미연합훈련 조정 가능성에 대해 정 장관은 “점검이 이뤄질 것”이라고 답했다.
7월 31일 정 장관은 개성공단 재가동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단을 만난 정 장관은 “2004년 12월 5일 개성공단을 열고 딱 20년 8개월이 지났는데, 그때 만든 공단조차 물거품으로 만든 것은 못난 정치, 어리석은 정치였다”면서 “개성이 닫히면서 평화의 혈관이 닫혔다”고 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권에 따라 남북관계에 대한 콘셉트는 달랐지만, 북한 내부에서 통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환경도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면서 “북한이 통일 필요성을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 맞춰 대북정책이 이뤄져야지, 무조건적으로 저자세로 다가가는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 주민과의 접촉을 전면 허용한 조치는 향후 국제사회에서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줄’을 다각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사람이 접촉하면 소통과 재화가 오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기 때문”이라며 “남북 주민 접촉이 재개되면 우리나라는 민간인이, 북한에선 정보당국 관계자나 핵심 당국자가 전면에 나설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정보활동의 통로도 열릴 수 있게 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