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습에 성장보다는 생존에 방점…자금 조달 추진 한편 ESS 집중, 대규모 투자는 숨고르기

다행히 2차전지 기업들은 2분기 양호한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큰 틀의 추세 전환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중 무역 전쟁에다 관세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선주문한 물량이 많을 뿐,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국면은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영업이익이 발생하더라도 순이익 부문은 적자인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대부분 2차전지 기업은 이익을 낸 것 이상으로 투자를 집행해야 해 자금 사정이 빡빡하다.
#중국 공습에 자금 조달 어려움까지
최근 2차전지 업계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업계 불황에다 중국의 기술 발전이 맞물린 여파다. 과거 우리나라 기업은 중국 기업에 가격 경쟁력은 밀리더라도 기술은 우위였는데, 이제는 기술마저 뒤처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앞서 중국 CATL은 5분 충전으로 520km를 달리고, 추운 날씨에도 5분 만에 80%까지 충전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을 발표했다. 이뿐 아니다. CATL은 연내 나트륨이온배터리(SIB)를 양산할 계획이다. SIB는 값비싼 리튬 대신 소금(나트륨)을 재료로 써 LFP 배터리보다 30~40%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LG에너지솔루션 정도만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SIB 개발에 착수했고, 삼성SDI와 SK온 등은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국내 한 2차전지 대기업에서 일하는 박사급 직원은 “우리끼리는 ‘한국 2차전지 기업의 미래는 중국 기업들이 얼마나 많이 거짓말을 했는지에 달렸다’고 농담하곤 한다”면서 “중국 기업이 발표한 내용이 팩트라면, 우리에겐 더 이상 미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최근 2차전지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2차전지 기업이라고 하면 묻지마 청약에 나서는 분위기였는데, 올해는 보다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상황이다. SK온은 대규모 회사채 발행 계획을 세웠다가 시장 반응이 시원치 않아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LNG발전소를 유동화해 그 자금으로 SK온을 지원하는 구조를 짰다. 현재 SK온은 SK엔무브와 합병 절차를 밟고 있기도 하다.
에코프로비엠은 당초 최대 3조 원의 자금 조달을 추진했지만, 사실상 좌절됐다. 이 때문에 최근 만기를 맞는 회사채를 기보유하고 있던 현금으로 상환 중이다. 포스코퓨처엠과 엘엔에프는 외부 자금 조달이 막히자 주주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결정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주가가 부진해 이미 발행한 전환사채(CB)의 주식 전환 가능성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환사채는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더 큰 차익을 낼 수 있는 회사채다. 반대로 얘기하면, 주가가 부진하면 원금을 고스란히 갚아줘야 한다.
전해질 업체 엔켐의 경우 지난 6월 말 이후 전환사채 엔켐14CB의 가격이 7000원대에 머물고 있다. 2500억 원 규모의 이 상품은 투자자들이 2026년 11월이면 되사달라고 요구(풋옵션 행사)할 수 있는데, 이때 정상 상환되면 연 수익률이 25%에 이른다. 그만큼 투자자들이 엔켐의 자금 사정을 좋지 않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엔켐뿐 아니라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2차전지 기업은 투자 심리가 대체로 비슷하다. 주가가 오르지 않는 이상 새로 채권을 발행해 투자금을 갚아줘야 하는데, 잘될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ESS 집중하는 업계…“정부 지원 필요하다” 호소
자금 조달 능력에 물음표가 붙는 상황이다 보니 2차전지 기업들은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펴고 있다. 2023년까지만 해도 당장의 이익보다 시장점유율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였는데 지난해를 기점으로 이익 창출 능력이 중요해졌다.
각 사는 무엇보다 ESS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ESS 배터리는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기에 방출하는 시스템이다. 태양광 등 친환경 발전소나 송배전 시설, 공장, 일부 가정에서 쓰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초부터 미국 미시간 공장과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중국 난징 공장 전기차 전용 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5월부터 순차적으로 가동에 들어갔고, 일부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엔 2027년 8월부터 2030년 7월까지 43억 1000만 달러(약 6조 원) 규모의 배터리 셀을 공급한다는 계약을 발표했는데, 업계에서는 주문자가 테슬라일 것으로 추정한다.
유럽에서도 조 단위 계약이 무르익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해외 거래처들이 중국 외의 ESS 공급 업체를 찾고 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이와 별개로 정부 지원책 수립을 호소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원래 국가 전략 산업은 재무 지원 정책도 마련하곤 한다”면서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등판해 저리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정 안 되면 2차전지 기업의 회사채를 편입하면 각종 혜택을 주는 펀드 조성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새 정부 출범 후 주식시장의 첫 번째 관심은 상법 개정안 등 자본시장 정책이었는데, 7월 중하순 주요 부처의 장관이 임명되면서 산업 및 기술 정책이 본격화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됐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1990년대 초반부터 2차전지 사업을 시작해 관련 원천 기술에 대한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이런 부분은 향후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데)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SK온 관계자는 “기존 주력 제품인 파우치 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전성 측면에서 액침냉각 기술이 접목된 열 폭주 방지 솔루션과 반고체 배터리를 선제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면서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자 셀투팩(CTP) 및 건식 공정 연구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연내 시제품 개발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로, 배터리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